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티베리우스 황제가 사랑한 이탈리아 카프리

제주한라병원 2023. 7. 3. 13:06

 

티베리우스 황제가 사랑한 이탈리아 카프리

  

 

  나폴리 산타루치아 항구에서 뱃길을 따라 40여 분 달려가면 ‘죄악의 섬(Island of Sin)’이라고 불리는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589m의 몬테 솔라로 산이 섬의 중심을 이루고 가파른 비탈을 따라 형성된 2개의 작은 마을이 - 신석기 시대부터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신비의 섬 - ‘카프리(Capri)’이다.

 

  신이 이 섬을 만들고도 그 아름다움에 놀라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하늘로 올

라갔다는 전설이 스며있는 카프리는, 하늘보다 더 푸른 코발트빛의 바다와 신비한 푸른 동굴로 세상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기원전 8세기부터 페니키인과 그리스인들이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Siren)의 섬’으로 부르며 차례대로 들어와 정착했다. 또한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BC27년~AD14년)는 이스키아섬을 이곳과 바꿨을 만큼 사랑했고, 카프리에 호화로운 별장과 정원을 지어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한 후 그의 양아들이자 2대 황제에 오른 티베리우스도 12채의 별장을 짓고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이 섬에서 보냈다고 한다. 이때 티베리우스는 로마의 정치적 책략과 암살에 대한 두려움으로 섬 북동쪽 가파른 절벽 가장자리에 보완과 치안이 완벽한 저택, ‘빌라 조비스(Villa Jovis)’를 건축하였다. 하지만 황제 계승의 정통성 때문에 성격이 난폭해진 티베리우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나 불순종하는 하인들을 334m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던 그 자리를 ‘티베리우스의 도약’이라고 부른다.

 

  티베리우스의 악행 때문일까? 다른 황제들은 거의 방문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을 외면할 수 없었던 로마 제국의 귀족들은 해변에서 일광욕과 최고급 요리를 즐기며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보냈다. 하지만 476년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카프리도 역사적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면서 해적들이 이 섬을 장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리품들을 숨기고, 나폴리항구로 들어가는 많은 무역선을 상대로 노략질을 일삼았다고 한다. 해적들이 떠난 후 남녀 동성애자들의 유토피아로 알려지면서 숨 막히는 절경과 달리 섬의 이미지가 쇠락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나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햇볕이 잘 드는 카프리섬을 로마의 부유층과 예술가들이 가만 놓아 두었을 리 없었다. 20세기 들어서자마자 영국, 미국, 독일 등 유럽 전역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대거 섬으로 몰려왔고, 그중에서 러시아 출신의 막심 고리키와 레닌, 1950년대에 칠레의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포함하여 수 년 동안 카프리는 예술가들의 파라다이스이자 정치인들의 망명지로 새롭게 떠올랐다. 유럽의 귀족과 예술가들에게 다시 사랑을 받으며 카프리에 하나둘씩 관광 시설이 늘어났고, 지금은 이탈리아 남부를 대표하는 섬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세상과 유일한 연결 통로인 마리나 그란데 항구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카프리섬의 여행은 시작된다. 이 항구는 인근에 있는 포지타노, 소렌토, 이스키아, 살레르노 등 여러 지역에서 오는 배들로 인해 성수기인 봄부터 가을까지 하루에 20만여 명의 여행자가 이 작은 섬을 찾는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 주변으로 가면 손님을 기다리며 낮잠을 자는 오렌지색의 버스, 해진 그물을 꿰매는 늙은 어부의 모습, 커피 향이 그윽한 카푸치노 한 잔으로 카프리를 만끽하는 여행자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장난감같이 생긴 삼륜차를 타고 비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현지인들 의 모습 등에서 이 섬이 가진 낭만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지금은 부두 근처에 많은 레스토랑, 카페, 호텔 등이 자리하고 있지만, 과거 해적의 근거지였을 때는 마을 주민들이 이들을 피해 모두 산비탈로 올라가 마을을 이뤘다. 그로 인해 섬에는 위치에 따라 두 개의 마을로 형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이 섬의 이름을 나타내는 ‘카프리(Capri)’이고, 다른 하나는 스웨덴 소설가 산 미켈레의 별장이 있는 ‘아나카프리(Anacapri)’이다. 이 중에서도 그리스어로 ‘위(Ana)’라는 뜻을 가진 아나카프리는 말 그대로 높은 고지대에 있지만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깎아지른 절벽과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몬테 솔라노 산 정상에서 바라다본 아나카프리

 

  두 개의 마을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번거롭지만 버스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산비탈을 따라 아나카프리에 오르면 이 섬에서 최고로 높은 몬테 솔라로 산 정상까지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리프트를 이용해 천천히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발아래로 하얀 아나카프리 마을과 파란 하늘 그리고 하늘보다 더 푸른 바다가 이국적인 정취를 만들어내면서 여행자들에게 카프리섬의 비경을 조끔씩 뽐낸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면 카프리의 또 다른 절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왜 이스키아섬과 이곳을 바꿨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또한 올라온 반대편으로 발을 옮기면 담쟁이덩굴 앞에 서 있는 티베리우스 황제 동상이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아 주고 그 아래로 아름다운 카프리 마을이 고운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카프리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입을 쫙 벌리고 있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우체통 두 개가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카프리의 느낌들을 한 장의 엽서나 편지에 실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주라는 이유다. 작은 골목길과 성당, 광장, 카페 등을 기웃거리다 보면 태양은 어느새 성큼 수평선 위로 바짝 다가선다.

 

  이 섬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눈과 귀속에 정신없이 구겨 넣고 나면 마음은 잔잔한 파도만큼의 여유를 갖게 된다. 그래서일까? 화가는 붓을 통해, 음악가는 노래를 통해, 사진가는 카메라를 통해,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통해 카프리를 각양각색으로 표현하며 신의 축복을 마음껏 즐긴다. 카프리가 가진 많은 숨은 매력을 가져갈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된다.

 

 

섬의 인구 12,000여 명, 성수기 하루 관광객 20만 명이 찾는 카프리

 

‘카프리’는 라틴어로 ‘야생의 숫산양’이라는 뜻이다.
이 섬을 너무나도 사랑한 티베리우스와 그의 동상.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
세상과 유일한 통로인 마리나 그란데 항구
좁은 골목길을 마구 누비는 오렌지색의 버스.
안개로 휩싸인 카프리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