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 수도 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 그라츠(Graz)는 알프스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스티리아(Styria)州의 주도(州都)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천년고도이다. 그라츠는 유럽 내륙 깊숙이 자리한 탓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도 아주 ‘비밀스러운 도시’로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2003년에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될 만큼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이곳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묵직한 세월의 향기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마디로 중세의 미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스트리아에서도 아주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다.
한 걸음 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도시의 기반은 800년경에 시작했지만, ‘그라츠’라는 이름은 1128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문헌적 자료에 등장했다. 도시의 이름, 그라츠는 슬라브어로 ‘작은 성’을 뜻하는 ‘그라덱(Slavic Gradec)’에서 유래하였다.
10세기부터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합스부르크 왕가가 전성기일 때 왕가의 휴양도시로 주목받으면서 성장한 그라츠! 녹지와 숲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그라체 평야’라고 알려진 비옥한 분지로 흘러 들어가는 무르(Mur)강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353m 높이에 있는 구시가지 한 가운데로 낭만적인 전차가 가로지르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마다 중세의 멋스러움이 넘쳐나는 그라츠! 수도 빈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의 역사는 트라운가우(Traungau) 가문과 바벤베르크(Babenberg) 가문의 지배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1233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 지역을 접수했고 1281년 루돌프 1세 때 자치구가 되면서 경제와 상업의 중심 도시로 급성장하였다. 그 후 15∼17세기 때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민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게 되었고, 덕분에 수차례에 걸친 오스만튀르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으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치세기가 1918년에 막을 내릴 즈음 그라츠도 역사 속에서 잠시 잊혀 갔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때 도시가 심한 타격을 받았으나 전쟁 후 구시가지는 거의 복구되었다.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그라츠 여행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 슐로츠베르크(Schlossberg)에서 시작한다. 구시가지의 배경이 되어주는 슐로츠베르크 산(473m)은 도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들르게 된다. 500m도 채 안되지만, 이곳에 서면 발아래로 울긋불긋한 지붕들과 바로크·고딕양식의 중세 건축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슐로츠베르크에서 내려와 구시가지 중심지인 헤렌가세(Herrengasse)로 들어서면 도로 양쪽으로 중세풍의 건물들이 여행자들의 눈을 압도한다. 거리 한가운데로 마구 달리는 전차, 길옆으로 들어선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상가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배로 증가시킨다. 이 중에서도 17세기에 지어진 중세 무기고에는 오스만튀르크와 전쟁할 때 사용된 28,000명의 갑옷, 투구,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1565년 도메니코 델 알리오가 설계한 르네상스 양식의 란트 하우스는 그라츠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원래 이곳은 스티리아 위원회의 회의장으로 쓰였으나 현재에는 스티리아州 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전면에는 둥근 창문들이 나 있고 기둥이 길게 줄지은 복도와 주랑이 아주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기둥들이 둘러싼 안마당에는 3층짜리 정자와 르네상스풍의 분수가 있으며 ‘기사의 방’에는 1746년에 제작된 화려한 천장화가 남아있다.
그라츠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곳은 단연 그라츠 대성당이다.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는 도시 곳곳에 수많은 성당이 들어서 있는데, 그라츠의 대성당도 이들의 독실한 신심을 대변해주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1438∼1462년 프리드리히 3세 때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대성당은 성 자일스(Saint Giles)에게 헌정돼 ‘성 자일스 성당’이라고도 부른다. 프리드리히 3세의 문장이 장식된 출입구가 특히 아름답고, 1485년에 제작된 후기 고딕풍의 프레스코화 ‘저주의 그림’도 남아있다. 이 그림은 세 번에 걸친 메뚜기의 습격으로 고통에 빠진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성당 내부 장식은 주로 웅장한 바로크 양식을 따르고 있다. 넓은 회중석과 성가대석 사이에는 좁은 개선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양옆에는 1477년에 만들어진 두 개의 호화로운 성 유물 함이 있다. 성가대석 중앙에는 1730년에서 1733년 사이에 제작된 아름다운 색깔의 대리석 제단이 놓여있고, 제단 뒤쪽에는 ‘성 자일스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다.
이처럼 그라츠는 아스라한 옛 영광을 가진 합스부르크 왕가와 주요 귀족 가문의 문화적, 예술적 유산들이 가득한 도시이다. 이 중에서도 중세부터 18세기까지 지어진 다양한 건축물들은 중부 및 지중해의 도시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축 양식과 서로 다른 예술성의 조화를 보여준다. 그 결과 수도 빈과 비교해 많이 알려지진 않지만 그라츠 구 시가지를 걷다 보면 왜 이 도시가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됐는지 그 이유를 금세 깨닫게 된다.
'병원매거진 > 이태훈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베리우스 황제가 사랑한 이탈리아 카프리 (0) | 2023.07.03 |
---|---|
카우보이와 예술의 도시, 텍사스 포트워스 (0) | 2023.05.31 |
스페인 카탈루냐의 진정한 보석, 지로나 (0) | 2023.03.30 |
한국 최고의 한옥 ‘강릉 선교장’ (0) | 2023.03.06 |
마크 트웨인이 사랑한 도시, 독일 하이델베르크 (0) | 2023.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