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와 예술의 도시, 텍사스 포트워스
전통적인 미국의 상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말을 타고 소를 모는 ‘카우보이’일 것이다. 서부 영화에서 창이 있는 모자에 박차가 달린 가죽 부츠를 신고 말안장 위에 오른 존 웨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게리 쿠퍼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19세기 개척 시대와 카우보이는 미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인데, 이런 옛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텍사스 포트워스로 가야 한다.
한 편의 서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개척 시대의 건물과 로데오, 청바지에 가죽 부츠를 신은 카우보이를 만날 수 있는 ‘축산의 도시’로 유명한 포트워스. 트리니티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인근에 군대 전초 기지를 지으며 시작한 포트워스는 텍사스 주에서 5번째, 미국에서 13번째로 큰 도시이자,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의 도시로 해마다 1,0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1846년 텍사스 공화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싸울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포트워스는 요새를 의미하는 ‘포트(Fort)’와 텍사스 육군 사령관 ‘윌리엄 젠킨스 워스(William Jenkins Worth)’에서 유래하였다. 처음에는 군사도시로 출발하였지만 1870년대 철도가 생기면서 소의 집산지이자 고기를 가공하는 ‘축산도시’로 발전하면서 ‘카우보이의 도시’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고도화된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현대적 빌딩들이 들어섰고, 동서양의 예술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하나둘씩 문을 열면서 이제는 ‘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가장 미국다운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포트워스의 ‘스톡 야즈(Stock Yards)’이다. 1976년 국립 역사 지구로 지정된 스톡 야즈는 우리의 민속촌처럼 미국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부 카우보이의 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텍사스 깃발과 함께 큰 글씨로 ‘Forth Worth Stock Yards’라고 쓰여 있는 입구에서 기차역까지 불과 500m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따라 정통 카우보이의 문화와 음식 등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이스트 익스체인지 에비뉴(East Exchange Avenue)’라고 불리는 중심 거리에는 지금도 가축이 거래되는 ‘라이브 스톡 익스체인지(Live Stock Exchange)’와 연중 로데오 경기가 펼쳐지는 콜리세움(The Coliseum) 등이 있다. 콜리세움 앞에는 텍사스 출신 가수이자 배우인 ‘레드 스티갈’ 동상이 있는데, 카우보이 문화를 전 세계에 많이 알린 공헌으로 2007년 포트워스 시에서 카우보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고, 해마다 10월이면 레드 스티칼과 함께 하는 카우보이 축제를 개최한다.
멋진 모자와 부츠는 없지만 마음만은 카우보이가 된 것처럼 스톡 야즈를 배회하고 싶어진다. 이때 갑자기 5명의 카우보이가 20여 마리의 소를 몰고 도로에 등장하는데, 스톡 야즈에서 가장 유명한 소몰이 퍼레이드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루에 두 차례(오전 11시 30분, 오후 4시 30분) 카우보이들이 소들을 끌고 나와 소몰이를 재현하는 이벤트이다.
200여 년 전 텍사스의 카우보이들은 수천 마리의 소를 몰고 700마일(960km) 떨어진 캔자스까지 이동했다. 이 험난한 여정에는 인디언의 공격도 있었지만 포트워스보다 10배가 넘는 솟값이 카우보이들의 보상이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작은 규모로 그때 시절의 모습을 소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로를 따라 질주하는 ‘롱혼(Long Horn)’은 일반 소보다 뿔이 아주 길고 날카롭지만, 생김새가 아주 독특해 현재 포트워스시의 로고로도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토종 소인 버펄로보다 생명력이 더욱 강한 롱혼은 원래 유럽이 원산지이다. 과거 유럽에서 처음으로 텍사스로 이주한 스페인 사람들이 더운 날씨에도 적응력이 뛰어난 롱혼을 들여와 기르기 시작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뿔 길이가 가장 길었던 소는 3.29m나 됐다고 한다.
미국 서부의 전통문화를 스톡 야즈에서 어느 정도 체험했다면 포트워스가 자랑하는 예술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미켈란젤로 작품을 소장한 킴벨 아트 미술관과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그리고 미국 작가들의 작품만을 전시한 아몬 카터 미술관 등이 포트워스를 ‘축산의 도시’에서 ‘문화예술의 도시’로 이미지를 바꿔놓고 있다. 이 중에서도 미국의 작은 루브르 미술관이라도 불리는 ‘킴벨 아트 미술관’은 전시 작품이 350여 점밖에는 안되지만 이집트 조각상, 간다라 불상, 일본 토기, 멕시코 마야 조각상 등 다양한 조각상과 토기를 비롯해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 카라바조, 루벤스와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프랑수아 부셰, 폴 세잔, 폴 고갱, 마네, 마티스, 피카소, 호안 미로, 몬드리안 등 이름만으로 서양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 미술관을 설립한 사람은 텍사스 출신의 케이 킴벨과 그의 아내 벨마 킴벨이다.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케이 킴벨은 밀가루, 사료, 석유, 식료품 체인, 보험, 제분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이다. 그는 1920년대부터 아내와 함께 예술작품을 수집해 온 미술 애호가로서, 자신들의 수집품들을 포트워스 시립 도서관과 교회에 꾸준히 전시했다. 이를 계기로 설립자 킴벨은 1935년에 ‘킴벨 예술 재단’을 설립했고, 30년 지난 1964년 4월 13일, “최고의 걸작이 될 미술관 건물을 지으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미망인이 된 벨마 킴벨은 남편의 뜻에 따라 ‘킴벨 아트 미술관’을 세우고, LA 카운티 미술관 관장 출신의 리처드 브라운을 초대 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 후 킴벨 재단은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에게 미술관 건립을 맡겼고, 공사 기간 3년만인 1972년 10월에 높이 6m, 넓이 7m, 길이 30.5m의 16개의 아치형 지붕이 인상적인 ‘킴벨 아트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특별전을 제외하고는 입장료가 무료인 킴벨 아트 미술관 입구에는 호안 미로의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여성’이라는 조각상이 서 있고, 깔끔하고 세련된 건축물 안으로 들어서면 멋진 예술세계가 펼쳐진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과 주식 거래소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전향하면서 그린 폴 고갱의 ‘자화상’, 벨라스케스의 ‘돈 페드로 데 바르베라나의 초상화’, 카라바조의 ‘카드 사기꾼’, 모네의 ‘수련’ 등 주옥같은 명화들이 작은 미술관 안을 가득 메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은 12세의 미켈란젤로가 최초로 패널에 그린 ‘성 안토니오의 고통’이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과 위대함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미술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최소한 한 점씩 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킴벨 아트 미술관’의 명성은 대단하다. 이름 그대로 군사의 도시에서 축산의 도시로 100여 년 동안 이름을 떨쳤던 포트워스는 ‘킴벨 아트 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의 도시로서 큰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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