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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한옥 ‘강릉 선교장’

제주한라병원 2023. 3. 6. 15:25

300여 년 넘은 소나무로 둘러싸인 선교장의 겨울 풍경.

 

·여름·가을 그리고 겨울,

한국 최고의 한옥 ‘강릉 선교장’

 

 

구절양장 대관령 옛길을 따라 동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강릉으로 달려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한국 최고의 한옥, 선교장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1703년 충주에 살다가 외갓집인 강릉 경포대에 와서 터를 잡았고, 10대에 걸쳐 증·개축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예전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다.”하여 집의 이름을 ‘선교장(船橋莊)’이라 명명하였다.

 

조선시대 한옥은 보통 99칸이지만, 선교장은 120칸의 대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양반 가옥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1967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0년에 KBS에서 ‘20세기 한옥 TOP10’을 선정할 때 전통가옥 분야 ‘한국 최고의 한옥’에 자리매김 했다.

 

3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선교장이 큰 규모로 지어진 이유는, 주인이 당대의 예술가들과 문화·예술에 대한 담론을 즐기는 것을 즐겨하여 많은 사람이 선교장을 찾았고 경포대 주변의 설악산, 금강산 등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전국에 많은 선비가 찾아와 지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120칸의 한옥이 건축된 것이다. 말하자면 선교장은 개인 살림집이자 관동에서 가장 시설이 좋고 많은 예술가가 머문 당대 최고의 문화 살롱이었던 셈이다.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선교장에서 눈여겨볼 곳이 세 군데 있다. 하나는 당대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이 묵었던 큰 사랑채, 열화당(悅話堂)이다. 이곳은 방이 3개에다 대청마루가 6칸이나 된다. 사랑채라고 하기엔 다소 큰 규모다. 열화당은 이내번의 손자인 이후가 1815년에 지은 건물인데 사랑채 이름인 열화당은 보통 양반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편액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대개 유교의 충효(忠孝) 사상을 바탕으로 사랑채 이름을 지었는데 반해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한 구절인 “친척과 즐겁게 정담을 나누며(悅親戚之情話) 기쁨을 누리고, 거문고 타고 글을 읽으니 근심이 사라지네!”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집, 열화당은 엄숙함과 긴장감 대신에 지극히 인간적인 정감이 전해오는 사랑채 이름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입신양명과 출세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만나 즐겁게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사는 데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당호이다. 무엇보다 이 집의 흥미로운 요소는 손님을 대하는 것이다. 가장 고급 손님은 사랑채이자 응접실인 열화당을, 중급 손님은 중사랑을, 그리고 하급 손님은 행랑채에 모신다. 지나가는 과객의 학문과 사람 됨됨이를 시험해서 아주 고명한 선비는 열화당에, 식견이 높은 사람은 중사랑에, 평범한 과객은 행랑채에 모신 것이다. 열화당에 묵은 선비는 몇 달간 유숙하면서 집주인과 문화예술에 대해 담론을 나눴고, 떠날 때는 옷 한 벌과 노잣돈을 받았다. 방이 10개인 중사랑에 묵은 선비는 열화당의 손님보다 머무는 날짜와 대접이 조금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행랑채에서 지낸 과객은 보통 2~3일 정도 대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손님이 눈치 없이 오래 머물게 되면 선교장의 집주인은 손님의 밥상에 국과 밥그릇을 바꿔 놓거나 반찬의 위치 등을 엇갈리게 놓아 손님이 떠나야 함을 알려 줬다고 한다. 몇 달 동안 융성한 대접을 받은 과객은 주인의 표시에 당연히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정처 없이 또 다른 길을 떠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선비들의 격조 높은 풍류와 사람을 대접하는 세련된 멋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랑채 열화당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곳은 선교장 입구에 조성된 ‘활래정(活來亭)’이라는 아담한 정자와 네모반듯한 연못이다. 성리학 이념인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을 담은 작은 연못에는 여름철이면 붉은 연꽃이 속내를 드러내고, 활래정 주변에는 또 다른 붉은 꽃, 백일홍이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춘다. 바람도 잠시 쉬었다가 가는 활래정은 창덕궁의 부용정처럼 연못에 두 다리를 담근 채 서 있다.

 

그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선교장을 어느 때 가면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 년 내내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 가도 좋다. 봄이면 벚꽃과 진달래로 물들고, 여름철이면 붉은 연꽃과 백일홍이 선교장의 운치를 증폭시킨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에는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이 어우러지고 겨울철이면 강원도답게 선교장 전체가 하얀 눈으로 덮여 마치 선계(仙界)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선교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에 따라 방문하면 되며 언제나 아름다운 자연과 한옥이 어우러진 소나타를 감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선교장에서 빼놓지 말고 꼭 봐야 할 곳이 있는데 선교장을 둘러싸고 있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다. 보통 선교장 내부만을 둘러보는데 선교장을 둘러싼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산책로 주변에는 300여 년 된 금강송이 오래 묵은 한옥, 선교장을 마치 수호신처럼 지키고 서 있다. 선교장과 삶의 궤적을 함께 한 금강송은 선교장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벽송(壁松)’이라고 부른다.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선교장의 겨울 풍경은 너무나 소담스럽다.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선교장.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옥의 참모습이자 봄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언제 가도 한국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양반 가옥이다.

 

 

 

백일홍과 연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활래정
바람에도 길을 내어주는 활래정의 여름
노란 은행나무와 단풍으로 물든 선교장의 가을 풍경

 

한국 최고의 한옥으로 선정 선교장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장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