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기억이 중첩되고 남겨지고 보여야 도시는 재미있다”

제주한라병원 2023. 3. 6. 15:39

 

건입동 근린생활시설 리모델링_문랩 문영하

 

“기억이 중첩되고 남겨지고 보여야 도시는 재미있다”

[나는 제주건축가다] <13> 도시건축연구소 문랩 문영하

 

 

 

[건축가 문영하]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출신인 그는 고향을 떠나 제주시에 정착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발을 디딘 곳은 제주시 건입동. 제주시에 온 이유는 이른바 ‘유학’이었다. 예전엔 제주 도내 읍면 지역에서 제주시내로 유학을 오는 일은 아주 흔했다. 그러다 시간은 흐르고, 이젠 일과리가 아닌 건입동이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외삼촌의 혼이 담겼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지은 빌딩인데, 그는 허물어서 새로운 건물을 올리지 않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빌딩의 기억을 온전히 남겼다. 건축이 지닌 순간의 기억과 사람의 삶이 이곳에 오면 느껴진다.
기억을 가지려는 의지는 정(情)과 통한다. 정은 어울림도 있어야 가능하다. 어울리려면 남을 허용하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도시는 사람이 호흡하는 곳이며, 결국 도시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도시’가 삶을 움직인다. 그의 생각은 그렇다.

 

■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는 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학교 3학년 때 제주시에 왔다. 제주시로 유학 온 셈이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건입동의 적산가옥을 사서 집을 새로 지었다. 나는 대성학원과 우당도서관을 오갔다. 대성학원을 가기 위해 매일 동문시장과 동문로터리, 중앙로를 거쳤다. 인생의 3분의 2를 이 동네에서 살았다. 여기 처음 살 때는 말 그대로 외지인과 뱃사람이 많았다. 막일하는 사람도 많았고, 판잣집도 많았다.

살다 보니 동네도 변하더라. 동사무소도 생겼고, 어울려 살며 정도 든다. 지금은 신제주보다는 여기가 훨씬 좋다. 신제주는 좀 삭막하달까! 여기는 물이 흐르는 산지천이 있고 오현단과 사라봉도 있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건물을 철거하지 않은 것은) 기억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될까?

도시의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그게 중첩되고 남겨지고 보여야 도시가 재미있고, 이야깃거리를 지닌 도시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 건물은 골조와 외장만 남겨두고 바꿨다. 기억이 중첩되고 남겨지고 보여야 도시는 재미있다.

 

■ 제주도는 도심지와 읍면이 차이가 있다.

두 곳의 건축행위는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할까?

본질은 같다. 도심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건이고, 외곽은 한가한 분위기이다. 외곽에서 건축 활동을 할 때는 그 땅과 그 동네 분위기를 감안해서 작업을 한다. 도심지도 그렇다. 도심지와 외곽에서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도시는 옆에 들어선 건물의 층고를 보고, 재료가 뭔지 파악한다. 시골은 밭 한가운데 집이 들어설 수도 있고, 소나무밭에 들어설 수도 있기에 역시 주변을 본다.

 

■ 제주도는 세계유산이며 남다른 땅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제주도만의 땅의 가치는 뭘까?

존중하고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땅이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승효상이 “이 건물은 당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우리가 하듯이 땅을 함부로 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우리 땅이 아니다. 후손들의 땅이다. 우리 아들, 딸들의 땅이다.

 

■ 건축가는 어떤 활동을 하는 사람일까.

주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라면 어떤 생각을 지니면서 활동을 해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잘 해야겠지만 자본에 굴하지 말고, 소신껏 공공의 가치를 담아 좋은 설계를 하자고 마음먹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생각은 늘 가져야 한다.

 

■ 승효상은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라는 책에서 예전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픔도 기억하는 침묵의 공간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살아 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서 침묵을 찾는다.’는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의 명구가 참 좋다.

 

승효상 선생님은 피카르트를 좋아하시더라. 묘지 여행과 관련해서 침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유럽은 도시 내에 묘지가 있거나 아니면 근교에 있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집에 조상의 사당도 모셨고, 밭에 묘가 있었다. 승효상 선생님은 죽은 자들이 아닌, 죽은 이들과 산 사람들이 교감을 하고 성찰을 한다는 의미에서 침묵을 쓴 듯하다.

 

■ 그런 공간은 우리 도심에 없다.

마스터플랜이란 걸 하면서 깡그리 없앴다. 승효상 선생님은 사람이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 또한 우리를 만든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우리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야 의뢰를 받고 설계를 해주지만, 승효상 선생님은 건축주는 그 건물의 사용자일 뿐 소유는 사회가 갖는다고 한다.

 

우도면청사계획안
제주클랭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