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음, 예술, 철학, 지성, 꿈과 낭만 그리고 애틋한 사랑, 이 모든 단어가 함축된 도시, 하이텔베르크! 이 작은 마을이 세계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조그만 나라의 왕자이자 대학생인 프란츠와 하숙집 딸 캐티가 하이델베르크를 무대로 펼치는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때문이다. 물론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그의 연인 마리아네 폰 빌레머의 사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1824년 빌레머는 괴테와 나눈 사랑의 감정을 ‘하이델베르크 성’이라는 시를 통해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나는 이곳에서 행복했노라”라고 노래하면서 하이델베르크는 ‘사랑의 도시’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한 편의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스며있는 하이델베르크는 1142년 쇠나우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형성된 보름스 성곽 주변의 작은 촌락으로 시작해 138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와 함께 성장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영국의 옥스퍼드·캠브리지, 프랑스의 그르노블, 이탈리아의 파노바 등과 함께 유럽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손꼽히며 독일 대학 역사의 초석이 되었다. 괴테, 헤겔, 헤세, 야스퍼스, 베버, 슈만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 최고의 철학가, 문학가, 예술가들이 이 대학을 거쳐 갔을 만큼 빛나는 역사를 오롯이 품은 곳이 바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다. 또한, 하이델베르크는 유유히 흐르는 네카어강과 폐허가 된 고성을 곁에 두고 독일의 문화와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괴테, 마크 트웨인, 빅토르 위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많은 문학가와 철학자들이 인생의 고뇌를 극복하고 영감을 얻고자 이 도시를 찾았다. 이 중에서도 하이델베르크를 유난히 사랑하고 이 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가 바로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Samuel Langhorne Clemens)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우리에게 아동작가로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의 명성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 '미국의 대문호'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든 미국의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나왔고, 그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 후로도 없을 것이다"라며 마크 트웨인을 추앙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결정적으로 완성하는데 영감을 준 도시는 미국이 아닌 독일 하이델베르크이다. 미주리주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시간 동안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조용히 살면서 <톰 소여의 모험>과 <미시시피강의 추억> 등의 작품을 써왔던 그는 책상에 앉아 온종일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은 언제나 세계를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마침내 1878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그해 가족과 함께 하이델베르크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즐겁게 지냈다. 물론 그의 머릿속은 온통 집필 중이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유럽 여행에 관한 새 책인 <해외 유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녹음이 싱그러운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마크 트웨인은 '슈라이더 호텔(현재 크라운 프라자 호텔)'에 먼저 짐을 풀고,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고성과 네카어강으로 한걸음에 달렸다. 그러나 호텔에서 성까지는 걸어서 30여 분 걸리자, 며칠 후 고성 바로 아래에 있는 슐로스 호텔(현재 고급 호텔과 콘도)로 옮겼다. 슐로스 호텔에서는 고성과 하이델베르크 대학 그리고 네카어강까지 모두 10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다. 마크 트웨인이 머물렀던 호텔들은 모두 바뀌었지만, 하이델베르크 대학, 고성, 네카어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마크 트웨인이 즐겨 찾았던 양고기 전문 레스토랑인 '줌 굴데넨 샤프(Zum Güldenen Schaf)'는 현재에도 성업 중이다.

유서 깊은 역사와 대학의 도시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에서 마크 트웨인이 영감을 받은 곳은 과연 어디일까? 미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쓰고 있었지만, 글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잠을 자도, 밥을 먹을 때도, 담배를 피울 때도 뭔가 안갯속을 걷은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하이델베르크 도시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네카어강 근처를 산책하던 중 강에서 뗏목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쳤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뗏목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1880년 출간된 <해외 유랑기>에서 "네카어강을 따라 내려가는 뗏목을 타며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라고 했다. 그 결과 마크 트웨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이델베르크를 그의 '창조적 원류'가 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물론 마크 트웨인이 네카어강만 유난히 좋아한 것은 아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멋지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하이델베르크 고성도 빼놓을 수 없는 영감의 장소이기도 하다. <해외 유랑기>에는 “폐허가 된 고성은 높은 언덕에 우뚝 솟아 있고, 푸른 숲속에 묻혀 있고, 주변에 평지가 없지만, 반대로 나무가 우거진 테라스가 있으며, 빛나는 나뭇잎을 통해 황혼이 지배하는 깊은 구렁과 심연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리고 태양이 침입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다”라고 표현돼 있다.
하이델베르크 역사의 산 증인인 고성은 마크 트웨인 말고도 이 도시를 찾은 수많은 예술가가 예외없이 방문하는 장소이다. 프랑스 출신의 빅토르 위고는 1838년 고성을 찾아와 폐허가 된 고성 안을 수없이 산책하였는데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500년 동안 유럽을 뒤흔든 모든 것의 희생물이 되었고 이제는 그 무게로 무너졌다”라고 썼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의 괴테,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미국의 마크 트웨인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유럽과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매혹시킨 예술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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