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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물리적 확장이 아닌, 가치의 개발 방식은 어떨까

제주한라병원 2022. 10. 27. 14:45

김영수도서관

 

[나는 제주건축가다] <10> 탐라지예건축 권정우

 

건축가 권정우는...
 
제주시 원도심이 뜨고 있다. 얼마 되진 않았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원도심을 빠져나가는 게 일이었다. 그런 시기에 탐라지예건축은 제주시 원도심에 둥지를 튼다. 건축가 권정우는 서귀포 출신임에도 제주시 원도심을 목표지점으로 삼았다. 그는 제주시 원도심을 ‘보물’이라고 부른다. 원체 호기심이 많고, 기웃기웃하는 일도 많다. 원도심도 그는 그렇게 둘러봤다.
원도심을 탐색하며 사라질 위기였던 적산가옥도 핫플레이스로 바꾸어놓았다. 제주북초등학교에 있는 ‘김영수도서관’도 뜯지 않고, 덧붙여서 세상에 내놓았다. 김영수도서관은 ‘2020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가만 보면 그는 제주의 옛것, 우리의 옛것을 탐닉한다. 우리가 지닌 건축자산은 낡고 쓸모없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늘 자각한다.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쓴 <음예공간>을 닮은 공간은 우리 할머니의 집에서 봐왔다며, 그런 상상을 하며 디자인을 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어딘가를 헤집고 다닌다.

 

 

- 풍토성이 살아 있는 공간, 스스로에게 끌리는 공간 이야기를 해봤으면 한다.

제주에서 풍토성을 이어가는 공간과 장소가 아직도 마을별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터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중산간, 해안가 마을이 있다. 서귀포에만 105개의 마을이 있어서 ‘노지문 화’를 화두로 문광부에서 추진하는 문화도시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마을별 특색이 남아 있고 지역별 자연환경 여건에 따른 예전 마을 구성의 모습과 현재의 변화 모습을 분석해 보면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길의 확장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해안도로나 구시가지를 배제한 신작로 확장으로 예전 마을이 기형화된 모습의 근원을 살펴보면 그간 제주에서 무엇이 풍토성을 해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안의 집들은 현대의 모습으로는 누추하고 낡고 허름해 보이지만, 아직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내가 기억하는 비슷한 풍토와 풍경이 있는 공간이 내게는 더욱 끌린다.

 

- 제주에 어울리는 지역성이란 무엇일까.

제주에서는 분명 좋아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유가 있다. 가령 감귤밭 돌창고는 원주민인 우리에게는 흔해 빠진 익숙한 창고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 제주로 내려온 이주민들의 눈에는 돌창고의 의미와 미적인 가치가 돋보여 매입하여 고치거나 쓰기를 원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제는 쉽게 구하기 힘든 돌창고가 되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무언가 좋아 보이는 이유가 뭘까? 최근 읽고 있는 <영원의 건축>(크리 스토퍼 알렉산더 지음)에서 그 이유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각 지역이나 도시, 건물에는 그곳의 지배적인 문화에 따른 특유의 사건 패턴이 있다.”

이 같은 저자의 견해를 개인적인 해석과 생각을 덧붙이자면 지배적인 문화의 요인에 따른 어떤 패턴이란 단어를 지역성 혹은 좋아 보이게 하는 이유로 해석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의 지배적인 문화가 물리적 공간에 상호 연관성을 준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제주만큼 독특한 지배적인 문화가 이어지고 있는 곳은 한반도에서 분명 많지 않다. 제주는 섬이란 지형적 특성과 한반도의 위도에 따른 물리적 입지의 영향이 단연 크게 작용한다.

우리 스스로 제주의 그 지배적인 문화를 점점 사라지게 하고 있는데, 지역성을 이야기하는 게 순서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처절하게 반성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부분은 지역성이 아니라 그 지배적인 문화 요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다.

 

- 건축가의 사명과 지역 건축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지역에 대한 철저한 공부와 이해가 뒷받침된 상태에서 지역 건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 명맥과 담론이 지금은 전무한 상태이다. 이제라도 그런 이야기의 가치와 논의를 이끌 사회적 분위기와 건축문화를 이끌어갈 지역 건축가들이 생겨나야 한다.

 

- 제주도라는 땅의 가치와 제주 개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묻고 싶다.

섬의 특성과 특별한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문화가 제주도라는 땅의 가치를 만든다. 이 고유의 특성과 가치를 우린 너무 간과하고 터부시했다.

척박한 섬의 환경은 개발이라는 관점으로 낡고 안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데, 그것을 바꿔야 한다는 시대적 발상과 잘 먹고 잘 사는 명분이 정책적 과제이고 시대적 목표였던 때가 있다. 그 과도기를 지나 지금은 달라졌다. 그리고 분명 달라져야 할 때이다.

건축으로 해결하기에는 건축의 태생적인 힘과 문화 저변이 너무 미약하다. 그래서 건축을 이야기하기보단 점점 건축 외적인 것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 해답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전해주고 본보기로 보여줄 만한 건축을 만들고 싶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 원도심에 무척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도시재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으면 한다.

도시재생은 우리 도시가 계속 이어져 나갈수록 앞으로도 계속 생겨나는 사회적 문제이다.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계속 발생할 것이며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행정 중심 정책 위주의 사업진행은 도시재생사업 초반 한계를 드러낸 게 분명해 보인다. 도시재생 사업 중 ‘집 고치기 사업’으로 동네에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시는 낡은 집, 벽지나 창문 실리콘 작업하는데 내역 산출하여 입찰하고 공사업체 계약하는 데 두 달 걸리는 현실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러한 도시재생사업은 실제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응을 주지 못할 뿐더러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정책 내용의 결정이 탑다운 방식에서 바톰업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