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퀸스타운
서던알프스산맥과 수많은 호수, 밀퍼드 사운드까지 연결돼
봅스봉 정상에 서면 퀸스타운과 와카티푸 호수가 한 눈에
인구 1만 5,000여 명의 소박한 사람들이 자연을 벗 삼아 사는 퀸스타운(Queenstown)은 뉴질랜드에서 스물일곱 번째로 작은 도시지만, 한 해 300만 명이 넘는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삶의 자양분을 몇 줌 얻으려고 한다. ‘여왕의 도시’라는 명칭답게 퀸스타운은 뉴질랜드 여행의 중심지로, 남섬 최고의 도시 크라이스트 처치와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3,724m의 마운트 쿡을 바로 인근에 두고 있다. 또한, 남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던알프스산맥과 수많은 호수 그리고 피오르 해안으로 유명한 밀퍼드 사운드까지 연결돼 남섬 최고의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다. 이처럼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때문에 퀸스타운은 다양한 스포츠가 발달했고, 공항에서 자동차로 20여 분만 달리면 번지 점프가 탄생한 카와라우 협곡에 이른다. 하늘, 산, 호수, 계곡 등 여러 곳에서 일 년 내내 스포츠를 즐기려고 세계인들이 퀸스타운을 찾는 또 다른 이유이다.
원래 이 땅에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살았고, 1853년 유럽 탐험가 니콜라스 폰 툰젤만과 윌리엄 길버트 리스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862년 에로우강 인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수많은 유럽인이 퀸스타운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만 해도 도시의 이름은 ‘캠프(The Camp)’였는데, 1863년 북아일랜드에서 온 광부들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기 위해 도시 이름을 ‘퀸스타운’으로 개칭하였다. 그 이유는 퀸스타운을 둘러싼 해발 2,343m의 리마커블산, 카와라우강, 와카티푸호수 등 빅토리아 여왕이 살아도 될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신이 내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퀸스타운은 튼튼한 두 발로 어디든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시내 여행은 1877년에 지어진 ‘올드 스톤 도서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부터 나무들이 우거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캠프 거리가 나오고, 오래된 성 베드로 교회도 보인다. 교회 앞의 처치 스트리트를 따라가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호숫가에 다다르게 된다.
청정지역으로 소문난 이 도시는 사시사철 맑은 공기 덕분에 부둣가의 아침은 산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바다와 달리 호숫가라서 물결도 잔잔하고, 일교차가 큰 봄가을이면 안개에 휩싸여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의 비경을 만나게 된다. 퀸스타운에서 가장 번잡스러운 부둣가는 아침과 저녁으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브런치를 먹을 때쯤 부둣가는 호수에서 증기선을 타려는 사람들 이외에는 한산하지만, 저녁이 되면 도시 곳곳에 숨어 있던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쏟아져 나온다. 부둣가 주변에는 레스토랑, 클럽, 카페, 선술집 등이 있어, 조용하고 한적한 퀸스타운이 밤늦도록 시끌벅적한 도시로 변신한다.
퀸스타운 시민들과 삶의 궤적을 함께 한 와카티푸 호수는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크다. 빙하가 파 놓은 웅덩이에 물이 차올라 형성된 빙하호수로,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 마오리어로 ‘비취’를 뜻하는 ‘와카티푸(Wakatipu)’란 이름이 붙었다. Z자 모양의 와카티푸 호수는 길이가 80km, 가장 넓은 곳의 폭은 5km, 가장 깊은 곳은 378m에 달한다. 그런데 이 호수에서는 15분마다 수위가 8cm가량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수십 분만에 호수의 수위가 급격하게 변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마오리족들은 호수 밑바닥에 전설 속에 등장하는 거인 괴물 ‘마타우’가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인 마타우가 숨을 쉴 때마다 호수의 수면이 몇 cm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전설이 오롯이 스며 있는 호수에는 19세기 중엽부터 40여 척의 증기선이 호수를 가로지르며 지역주민들을 이동시키거나 물품을 운반하였다. 과거 교통수단이었던 증기선은 거의 다 사라지고, 언쇼(Earnshow), TSS 언슬로 등 몇 척의 배들이 여행자를 태우고 전설의 괴물 ‘마타우’를 찾거나, 에메랄드빛의 호수를 마구 누비며 다닌다.
호수와 어우러진 퀸스타운의 멋진 풍경을 감상했다면 본격적으로 퀸스타운에서 제트 보트, 급류타기,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스카이다이빙, 스키,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차례이다. 이 중에서 퀸스타운을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번지 펌프를 하려고 카와라우 다리로 향한다. 협곡 사이에 건설된 카와라우 다리에는 높이 43m와 134m 점프대 2개가 있는데, 자신의 담력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만약 심장이 약하다면 그저 다리 아래에서 쏜살같이 떨어지는 사람을 바라만 봐도 좋다. 실제로 이곳은 번지 점프를 하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관광객이 훨씬 더 많다.
카와라우 다리에 세계 최초로 번지 점프대를 설치한 사람은 A.J. 해킷(Hackett)이다. 그는 1980년대 초 우연히 남태평양 바누아투 펜테코스트 섬에서 소년들이 성인식 때 ‘번지’라는 열대 넝쿨을 다리에 묶고 큰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는 넝쿨 대신 탄성이 좋은 수천 가닥의 라텍스로 밧줄을 만들어 번지 점프를 고안해냈다. 그리고 1987년 프랑스 파리로 간 해킷은 에펠탑에서 번지 점프를 시도해 세계인들에게 알렸고, 1988년 11월에 카와라우 협곡의 다리에서 번지 점프대를 설치하고 상업화하였다. 해마다 약 4만여 명이 이곳에서 직접 번지 점프를 체험한다고 하니, 어쩌면 퀸스타운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일등 공신이 바로 번지 점프이다.
만약 카와라우 다리에서 번지 점프를 할 용기가 없거나 좀 더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퀸스타운의 광활한 자연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높이 446m의 봅스 봉(Bob’s Peak)에 오르는 것도 좋다. 물론 등산도 가능하지만,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도록 케이블카가 준비돼 있다. 봅스 봉 정상에 서면 발아래로 산기슭 한쪽에 똬리를 튼 퀸스타운 전경과 환상적인 와카티푸 호수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뒤로 솟은 리마커블 봉우리들이 호수와 어우러져 퀸스타운에서 가장 멋진 인생 사진을 촬영할 수가 있다. 아마 이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면 평생 잊히지 않는 퀸스타운의 추억이 될 것이다.
<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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