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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의 작품 속에 살아 숨쉬는 도시

제주한라병원 2022. 6. 30. 13:25

 

튀니지 함마메트

 

고풍스런 디자인과 단순하면서 여백의 미 돋보이는 건축 줄지어

아랍식 재래시장인 수크 따라가다 보면 생활상 간접적으로 느껴

 

 

1914년 4월 3일, 스위스 베른 출신의 추상화가 파울 클레는 독일 표현주의 작가그룹인 청기사파를 이끈 대표적인 미술가 아우구스트 마케와 고향 친구인 루이 무아예와 함께 2주간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다. 3명은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운하를 따라 해안 도시, 함마메트에 도착하였다. 클레는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만큼이나 이국적인 함마메트에 금세 매혹되었다. 북아프리카의 강령한 햇볕, 열정에 휩싸인 도시 분위기, 역동적이면서 순수한 마음을 지닌 함마메트 사람들. 물론 클레도 매혹되지만, 아우구스트 마케도 이 도시가 가진 화려한 색조와 동양적인 이국적 정취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붓을 통해 이국적인 풍경을 하얀 캔버스에 담기 시작했다. 선과 면 그리고 강력한 색으로 표현된 이들의 작품은 100여 년 지난 지금도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클레가 그린 ‘모스크가 있는 함마메트’와 ‘함마메트 항구를 향해’ 아우구스트 마케가 그린 ‘튀니스의 시장’ 등을 보면 함마메트가 가진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클레는 2주 동안 35개의 수채화와 13개의 유화를 그렸고, 마케도 35개의 유화와 70여 점의 드로잉을 그렸다. 특히 클레는 튀니지를 다녀온 후로 1930년까지 튀니지를 주제로 20개 이상의 그림을 완성했을 만큼 그에게 튀니지는 인생 최고의 여행지였다.

우리에게 생경한 함마메트는 지중해를 품고 있어 낭만적인 도시의 풍경을 자랑한다. 케이프본 반도 끝에 있는 함마메트는 튀니지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리조트가 있을 만큼 튀니지 사람들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사랑받는 휴양지이다. 고운 모래가 수십 킬로미터나 이어진 해변과 아름다운 지중해 그리고 현대식 호텔이 많아 여행지로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편의성을 제공한다.

이 도시에는 실제로 중심지가 2개 있다. 하나는 유구한 역사를 품은 구시가지 ‘메디나’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식 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한 ‘메디나 야스민’이다. 보통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구시가지 메디나를 먼저 보고, 나중에 새롭게 단장한 메디나 야스민을 찾는다. 우선 198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메디나로 가면 아랍식 이슬람 문화를 볼 수 있다. 이곳은 12~16세기경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번영을 누렸던 도시 중 하나였다. 이슬람의 술탄들이 머물던 궁전, 이슬람교도에게 가장 사랑받는 모스크 등 700여 개에 이르는 유적과 유물들이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로움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중에서도 916년에 건축된 거대한 성벽과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성벽의 길이만 해도 무려 10km나 된다. 과거에 도시 전체를 감싸던 성벽은 1601년과 1605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그 후 1660년에는 몰타의 기사단이 쳐들어왔고, 1673년에는 튀니지에서 최초로 발생한 내전 때 중심지였고, 1881년에는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됐다. 이처럼 함마메트의 성벽은 1,000여 년 동안 이민족의 침입과 내란으로 슬픔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지금은 지중해를 따라 난 성벽이 아름답지만, 성벽을 사수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과거의 시민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이 밀물처럼 스며든다.

성벽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길과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건물들이 한 편의 영화 세트장처럼 보인다. 집마다 아랍풍의 고풍스러운 디자인과 단순하면서 여백의 미를 충분히 살린 벽과 대문 등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된 것처럼 황홀함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함마메트의 매력이다.

 

함마메트의 이슬람 전통시장 ‘수크’

구시가지 메디나를 헤매다 보면 아랍식 스타일의 재래시장인 수크를 만나게 된다. 메디나 남동쪽에 있는 수크에 들어서면 좁은 길을 따라 채소, 생선, 고기, 향신료 등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눈만으로도 이곳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사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수크이다. 재래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아우구스트 마케가 그린 ‘튀니지의 시장’이 눈에 그려지고, 모스크를 보면 클레의 ‘모스크가 있는 함마메트’의 그림이 생각난다.

재래시장 수크를 이리저리 배회하다 보면 파울 클레와 마케 작품에 등장하는 이슬람 특유의 색채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카페이든 창문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예술가에게 전해줄 영감이 곳곳에 있다. 아마 클레는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함마메트를 비롯해 튀니지안의 블루로 유명한 휴양도시, 시드 부 사이드, 이슬람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카이로우완 등 튀니지의 유서 깊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화가로서의 영감을 마음껏 누렸을 것이다. 실제로 1914년 4월 16일, 그는 일기에 “색채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항상 나를 지배할 것이다. 지금 행복한 시간을 누리는 것은 바로 색채와 내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일기장 마지막에 “색과 나는 하나이다. 지금부터 나는 화가이다”라고 적었다. 이 말은 튀니지 여행을 계기로 새로운 색채에 눈을 떴고, 음악가가 아닌 화가가 돼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함마메트를 비롯해 튀니지는 클레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색과 선 그리고 면을 통해 그림을 압축하는 추상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는 클레. 이 도시에서 받은 수많은 예술적 영감은 튀니지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그의 캔버스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바로 함마메트는 영원히 클레의 그림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그런 예술의 도시로 승화된 것이다. 튀니지 여행을 다녀온 후 추상화가로서 성공한 클레. 그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기이한 형태, 그리고 환상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그의 그림은 붓으로 연주한 음악이고, 그림으로 쓴 한 편의 시와 같다.

 

 

 

 

파을 클레가 그린 ‘모스크가 있는 함마메트(1914)’.
아우구스트 마케가 그린 ‘튀니지의 시장(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