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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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 빛 하늘과 오체투지로 하루를 열다

제주한라병원 2022. 6. 3. 14:40

해발 3,000m가 넘는 라싸 중심에 자리한 조캉 사원

 

티베트 조캉사원

 

조용히 움츠린 영혼과 만나거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어

부처님 손바닥 연상시킬 만큼 여행자와 순례자들로 북적

 

티베트에서 사원을 헤매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불자나 승려가 되어 성지순례를 하는 기분이 든다. 현대식 빌딩이나 세련된 건물은 거의 없고, 어딜 가든 여행의 중심은 사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티베트에서 단순히 볼거리만 찾을 양이면, 금단의 땅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만약 내면 깊은 곳에서 조용히 움츠리고 있는 자신의 영혼과 만나고 싶거나,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인생을 한 번쯤 되돌아보고 싶다면 티베트 여행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해 줄 것이다.

윤회와 환생,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끝없는 수행 등 형이상학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 바로 티베트이다. 바람과 구름도 잠시 쉬어가는 사원 한가운데에 서 있노라면 “모든 것을 버려야 모든 것이 다 내게로 돌아온다”라는 명언이 생각나고, 텅 빈 영혼 속에 티베트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 몇 조각만이라도 담아올 수 있다면 티베트 여행은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어디를 가도 온통 붉은 벽과 흰 벽이고, 향 연기와 옴마니밧메훔 등 이 모든 것이 눈을 떠서 눈을 감는 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곳 티베트. ‘불교’라는 큰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종교적 삶이 이루어지는 티베트. 그 중심에는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조캉 사원이 있다. 왕실의 직영 사찰이자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조캉 사원은 티베트 사람들에게 최고 성지로 손꼽힌다.

사원 앞 드넓은 바코르 광장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체투지와 코라 순례를 하는 티베탄과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여기만큼 활기차고 동적인 느낌을 받는 곳은 없다. 사원 입구에서 머리, 양 팔꿈치, 양 무릎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납작 엎드린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면 종교의 신성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한 사원의 문고리와 바닥에는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에 의해 덧입은 세월의 깊이가 알알이 박혀 있다. 그래서인지 오체투지는 사람이 가장 낮은 자세로 부처에게 다가서는 모습이다. 한없이 평온하고 아낌없이 주는 부처이지만, 그 전에 예를 갖추고 종교적 의식을 통해야만 조금 다가설 수 있는 부처님 손바닥이다.

티베트어로 조캉은 ‘부처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 사원은 7세기 중엽(647년)에 창건된 티베트 최초의 목조건축물로, 본전에는 당나라의 문성 공주가 시집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모셔져 있다. 거기에다 티베트를 통일하고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송첸감포 왕과 그의 부인들인 중국의 문성 공주와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의 조각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오목하게 들어간 정문은 순례자들이 오체투지를 하는 장소로, 해가 영원히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동안 티베탄들의 불심으로 가득 메워진다. 티베탄들의 성지순례의 마지막 여정이 바로 조캉에서 마무리된다. 광활한 티베트 땅 곳곳에서 몇 년에 걸쳐 오체투지로 찾아온 순례자들이 사원 앞을 끝없이 바닷물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이른 새벽부터 조캉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사람들.

 

또한, 조캉 사원 안에는 100여 개의 경통(經筒)이 설치돼 있어 사원 밖과 똑같이 시계 방향으로 경내를 도는 사람들이 마치 묵묵히 흘러가는 알룽창포 강물처럼 쉴 새 없이 흐른다. 지붕 위에는 조캉의 상징인 노란색 법륜을 받들고 있는 두 마리 사슴 상이 하얀 만년설을 향해 늠름하게 버티고 있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높고 푸른 히말라야 산봉우리와 라싸의 상징인 포탈라궁전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3층 옥상에서 내려다본 조캉 사원 입구와 바코르 광장은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을 연상시킬 만큼 여행자들과 순례자들로 북적거린다. 특히 사원을 향해 일어섰다, 구부렸다, 눕기를 반복하는 순례자들의 검은 그림자를 보면 종교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처럼 티베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꼭 한번 가고 싶어 하는 순례지가 바로 조캉 사원이다. 성산 카일라스와 성호 마나사로와르가 너무나 멀고 험해 섣불리 갈 수 없는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라면, 조캉 사원은 마음만 굳게 먹으면 다가설 수 있는 성지이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사원 앞 광장은 역광으로 검은 그림자들에 의해 신비스럽고 신성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디오니소스처럼 사원 앞 광장에 앉아 히말라야의 산 햇빛을 받으며 코라 순례를 하는 티베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복장부터 표정까지 모든 것이 다르지만 부처를 향한 불심만큼은 다 똑같다.

조캉 사원의 큰 매력은 세상의 만물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새벽과 늦은 밤 풍경이다. 이른 새벽, 사원 앞에 있는 큰 하얀 굴뚝에서 향이 피어올라 도시는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새로운 세계를 연다. 처음엔 ‘안개가 이렇게 자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티베트에 며칠 머무르면 안개를 만드는 주범이 자연이 아니라 바로 활발한 게으름뱅이들임을 알게 된다. 티베트 사람들은 해가 밝기 전부터 집마다 향을 피워 도시를 자욱한 연기로 가득 메운다. 하늘이 코발트 빛으로 여물기 시작하면 불자들은 소리 없이 오체투지로 새로운 하루를 연다. 여행자들은 그들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엄두를 못 내고 그저 바라만 본다. 오늘도 어제처럼 부처 앞에서 오체투지를 시작하며 묵묵히 자신들만의 순례길을 걸어간다.

 

 

불심을 가득 담은 야크 램프.
조캉 사원 앞에 있는 바코르 광장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영원히 파란 하늘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조캉 사원의 지붕들.
자욱한 향기에 휩싸인 조캉 사원의 사슴 조각상과 법륜.
오색의 룽다 앞에서 간절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티베트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