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건축가다 <2> 건축사사무소 더현 현혜경
‘튀는 건축’은 처음에 좋아도 나중에는 ‘경관 공해’ 될 수 있어
건축가는 공간을 이용하는 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건축가 현혜경은…
건축사사무소 ‘더현’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어진 능력(賢)을 더한다”로 읽기겠지만 아니다. 그의 명함을 받아보면 ‘THE;玄’이라고 나온다. 건축은 하모니가 무척 중요하다. ‘THE;玄’은 서로 다른 것의 조합이다. 대명사 ‘더(THE)’와 새미콜론(;), 거기에다 한자 ‘검을 현(玄)’ 서로 다른 물상을 어떻게 하나로 녹여낼까. 건축에서만 보이는 안과 밖, 빛과 그림자. 그걸 하나로 만드는 건 건축가의 몫이다.
바다는 육지와 다르다고 봐야 할까. 육지엔 사람이 살고, 바다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기에 다르다고 해야 하나. 제주도 환경은 그래서는 안된다. 그는 제주어로 불리는 ‘바당’을 건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면이 드러나는 그곳도 건축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자고 말한다. 왜냐하면 바당을 할퀴는 순간, 제주의 바다는 물론 제주의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THE;玄’에서 보듯, 육지와 바다의 조합이 있어야 한다. 대신 ‘튀는 건축’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왜 고향으로 내려왔나.
제주에 내려오기 5년부터 제주에 자주 오간 것 같다. 내려올 때마다 올레길을 걷고 오름도 올랐다. ‘왜 이처럼 좋은 제주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고향에 내려와서 건축을 한다면 좀 더 내 색깔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건물이 들어선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의 설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제주에서 오히려 생각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서울에서는 지목이 대지인 곳, 또 주변에 이미 건물들이 많이 들어선 곳에서 주로 설계를 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주변 과수원이나 임야가 있는 곳에서 설계를 할 경우가 많다. 행정적인 문제해결의 복잡함을 떠나서 막막하다. 지역에 담긴 맥락이나 표현을 읽어야 하는 게 어렵다. 말 그대로 땅을 읽는 게 쉽지 않다. 서울처럼 주변에 건물이 있으면 모티브가 되고, 높이에서부터 스케일이나 재료가 무엇인지 파악되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 그런 면에서 제주도는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나
튀는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건물은 10년 있다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처음엔 반짝하다가 10년, 20년 지나면 건물로 인해 ‘경관 공해’가 되곤 한다. 오래가는 건축물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관심을 두는 땅이 있다면.
땅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 건축을 하는 이들은 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집이 서귀포시 남원이다.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동네이다. 집 마당은 바당이었다.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였다. 그야말로 ‘엣지(경계)’에 해당되는 곳에 살았다. 어릴 때만 해도 마당이 있고, 돌담 너머는 바다였다. 밀물 때는 수영하면서 놀고, 썰물 때는 물 빠진 진흙바닥에서 동네 오빠들과 야구를 하기도 했다. 즉 경계영역이 나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바다와 뭍이 만나는 경계면, 밀물 때 물이 들어 있다가 썰물 때 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곳, 그 영역도 땅이다. 땅으로 읽고 들여다보며 건축가로서 보다 나은 대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제주도 건축가들은 지역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지역성, 육지 살 때 지역성, 내려와서 느끼고 있는 지역성에 대한 견해는.
다시 제주로 내려와서 느낀 지역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제주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와 다르다. 도농복합지역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촌은 아니지만 조금만 가면 도시적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환경과 여건 그리고 그에 맞는 경관. 이런 특징이 있는 곳에 어떤 건축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지역성에 대한 생각은 시작된다고 본다.
- 제주라는 땅은 귀중하다고 한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어떤 면에서 가치가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자연환경이다. 타지에 있다 보면 제주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보존론자는 아니다.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의 문제를 다룰 때 자연환경을 빼놓고서는 얘기할 수 없다. 특히 바다와 한라산이라는 포인트가 있다. 거기에 맞게 건축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느끼는 게 있었다. 도로만 늘어난다는 점이다. 읍면 단위 바닷가에서 보면 50m나 100m 사이로 도로가 계속 생긴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데 도로는 계속 만들어진다.
- 공간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공간을 보면 뭔가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곤 한다. 공간이 주는 개인적인 감응이 있다면.
제주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옛 제주대 본관이 학교 다닐 때 있었다. 1층엔 도서관이 있었고, 특별음악실과 가사실. 옥상은 학생회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그 건축물을 이용하면서 좋은 공간의 느낌을 받았다. 옛 제주대 본관은 재미있는 공간이 많았다. 형태를 떠나서 깊이와 높이와 뚫림, 그곳에서 했던 행동들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잔흔이라고 해야 할까,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느끼는 대표적 건물이다. 나중에 건물이 철거되고, 간이건물이 들어섰을 때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제주대 본관이 누구의 작품인가보다는 건물이 내게 준 추억과 기억들이 좋다. 건축가는 설계를 하고 공간을 만지는 사람으로서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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