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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건축 해야”

제주한라병원 2022. 4. 28. 10:51

[나는 제주건축가다] <4> 홍건축 홍광택

 

제주가 가진 것에 대한 지속가능한 건축을 자주 이야기해

농산물 창고를 짓겠다고 찾아온 할머니 보면서 보람 느껴

    

건축가 홍광택은...
 
움푹 꺼진 땅.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은 그의 고향이다. 몽골군이 터를 잡고 말을 훈련시켰다는 역사적 이야기가 있는 땅이다. 서쪽 언덕은 거센 북서풍을 막아주는 보호막이다. 그는 거기서 건축을 봤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목수였다. 고등학교 때 집을 짓게 되는 데 삼촌이 시공을 했다. 건축가의 길은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몽골군도 말을 훈련시키며 집을 지었을텐데, 역사가 흐르듯 가문동의 건축 이야기도 끝맺음은 없다.
건축가는 머리로 건축을 하기도, 가슴으로 건축을 하기도 한다. 머리로 하는 건축은 ‘패러다임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으로 하는 건축은 ‘삶의 건축’이다. 건축은 어떤 맥락이 필요할 듯 보이지만 그렇게 잣대를 들이밀면 우리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에겐 작은 창고를 지어달라며 얼마들지 않은 하얀 봉투를 내민 할머니를 잊지 못한다.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집을 짓는 건축주가 내미는 돈다발은 작업에 대한 당연치라면, 할머니의 봉투는 ‘삶의 건축’을 말한다. 그는 할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 우리는 땅 위에서 산다. 땅과 뗄 수 없는데, 건축가로서 ‘내가 꼽는 땅’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 싶다.

해안과 중산간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출신이라 그 이야기를 해보겠다. 애월 해안도로를 진입하는 가문동이 고향이다. 멀리 도두봉이 보이고 해안도로보다 낮고, 또한 높은 지형도 있다. 수산유원지를 포함하면 폭은 더 넓다. 어릴 때의 추억과 과거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은 경관적으로 많이 망가져서 마음이 아프다. 현재 공공건축가로서 서부 지역 을 맡았으며 이 지역 공간들을 만지고 싶다.

 

- 지역성 얘기를 해보자. 제주에 맞는 건축이라든지, 제주에 맞는 건축활동은 뭘까. 어떤 게 지역성일까.

건축 설계 구현의 첫 번째 단계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지형과 경관을 고려한 건축물의 자리매김이다. 자연을 닮은 외피형태, 즉 제주 내에서도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자연의 모습, 형태를 닮은 건축을 추구한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내 외부적·기능적인 동선을 계획한다.

건물이 자리매김했을 때 해당 지역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배치계획과 대지계획이 중요하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적어도 비도시 지역은 제주의 지형과 제주의 경관에 어울려야 제주에 맞는 건축이 아닐까.

 

- 어떻게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됐나.

적성에 맞는 직업이다. 할아버지가 목수였다. 고등학교 때 우리집을 짓는데 삼촌이 시공을 했다. 그때 도면과 청사진도 들여다봤다. 기초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건축이 재밌는 분야임을 느꼈다.

 

- 개인적으로 영향을 많이 준 건축가는 누구인가.

담건축의 김상언 소장이다. 설계작업에서 디자인과 계획 및 도면 작도 능력이 출중한 분이다. 내가 생각한 설계사무소였다. 설계 디자인 및 도면 작성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중간에 육지에서도 올라오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김상언 소장은 성품도 워낙 뛰어나다.

 

- 지금까지의 작품 가운데 공들인 게 있다면.

공용건축물로는 남원읍사무소가 있다. 건축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해준 건 한 할머니의 창고 건물이다. 농산물 창고를 짓겠다고 찾아온 할머니가 있다. 블록구조로 2천만 원으로 짓겠다고 찾아왔다. 할머니는 사무소에 들어올 때부터 미안해했다. 준공날 때까지 돈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는 하얀 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내놓지도 못했다. 여느 설계비 못지않게 큰돈이다. 할머니의 봉투 얘기만 하면 짠하다. 울컥한다.

 

- 건축가의 역할을 정리해 본다면.

제주가 가진 것에 대한, 지속가능한 건축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걸 얘기하는 그룹이 있고, 얘기하지 않는 그룹도 있다.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건축을 못 하는 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리그가 있는데, 좀 더 이런 얘기를 하면서 지역성을 파고들며 건축적 이야기를 하는 그룹이 있고, 창고와 같은 불법건축 양성화, 이런 걸 해결하는 것도 건축의 모습이다. 법적인 제도를 해소하는 것도 건축가의 능력이다. 외관형태 풍경을 형성해 나가는 것도 건축가의 역할이다. 결국은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을 하고, 색깔을 내게 된다.

 

- 현재 부산대 이동언 교수의 <삶의 건축과 패러다임 건축>을 읽을만한 책으로 추천했는데, 비평이라서인지 술술 넘어가질 않는다.

이 책을 접한 건 현장실무를 하던 2000년 7월이다. 당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내용은 어찌 보면 주관적일 수 있는데,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건축을 할 때 패러다임보다는 삶에 대한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축은 사람과 밀접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다. (책 49쪽을 펼치며)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서구 건축이나 건축이론은 머리에 의한 건축(패러다임의 건축)에 의해 지배되어 왔으며, 가슴으로의 건축(삶의 건축)은 백안시되어 왔다는 점이다.”

먹고 사는 경제적 부분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건축을 해야 한다. 건축가가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머리로만 하게 된다면 건축주들은 어떨까. 의뢰인을 배제한 상태에서 제주에만 너무 어울리는 디자인, 건축가가 추구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디자인만 고수하면 막상 그 집에 들어가서 살 건축주는 어떻게 생각할까.

 

- 건축주의 생각을 구현하는 게 삶의 건축인가.

농산물 창고를 짓겠다고 찾아온 할머니 얘기를 했는데, 건축의 보람은 거기서 느끼고 싶다. 건축을 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