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한라산에서 이어져 바다로 들었다가 솟아나”

제주한라병원 2021. 12. 7. 13:43

오조리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41> 성산일출봉

 

‘탐라순력도’에 ‘성산관일(城山觀日)’로 당시 상황 유추

한 가닥 연꽃이 용궁에서 솟아 나와 만상을 다 비추어

 

 

얼마 전 나온 뉴스를 이야기하며 시작해볼까 한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성산일출봉과 관련되어 있다. 성산일출봉은 떠오르는 해를 보는 장소로서 상징성을 지닌 유산인데, 밤에 성산일출봉을 활용해서 야간관광을 해보겠다는 발상이 전해졌다.

다름 아니라 성산일출봉의 거대한 벽면에 강렬한 빛을 쏘아서 관광객을 유입하자는 이야기였다. 빛의 강도는 3만7000루멘이란다. 촛불 1개가 1루멘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감은 잡힌다. 성산일출봉 한쪽 암벽에 3만7000개의 촛불을 밝힌다고 생각해보자. 성산일출봉이 멀리서도 아주 밝게 보일텐데, 아무 문제는 없을까. 문화재청은 동식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고 하는데, 제주도는 아직도 사업 의지를 꺾지 않은 모양이다.

성산일출봉에 빛을 쏘는 사업이 진행되고, 혹시나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등재 ‘삭제(delete)’를 당하면 어떻게 될까. 세계유산위원회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유산은 ‘삭제’하곤 하기 때문이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길 바란다.

성산일출봉 이야기를 꺼냈으니, 과거로 한번 가보자. 제주도 날씨는 동서가 다르고, 남북이 다르기에 해 뜨는 장관을 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이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제주목사로 내려왔던 인물 중에 이형상(1653~1733)이라는 분이 있다. 그는 평생 3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고, 제주목사로 부임하며 <탐라순력도>를 제작했다. 제주목사로 일하면서 제주도내 곳곳을 발로 훑고 다닌 흔적을 <남환박물>이라는 책으로도 남겼다.

특히 그는 <남환박물>에서 제주도내 가볼만한 15곳을 소개하는데, 성산일출봉에 대한 서술이 가장 많다. 물론 <탐라순력도>에도 성산일출봉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성산관일(城山觀日)’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통해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형상 목사가 성산일출봉에 오른 이야기는 <남환박물>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그 내용을 잠시 소개한다. 그가 표현한 성산일출봉은 살아 움직일 듯하다. 그는 성산일출봉이 한라산과 함께 세계자연유산이 될지를 알았는지, 성산일출봉을 ‘한라산의 한 지엽’이라고 표현했다. 한라산에서 동북쪽으로 해변에 이르기까지 작은 산등성이가 꿈틀꿈틀 이어지다가 바다로 들어가서 5리쯤에서 무더기로 솟아났다고 표현했다. 너무 멋진 표현 아닌가.

몇 시에 올랐을까. 이형상 목사는 오경(五更)이라고 <남환박물>에서 이야기한다.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는데, 오경은 밤의 마지막 시각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가 된다.

“나무를 걸어 사닥다리 길을 만들고 빙빙 돌면서 수백 보를 가니 비로소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이때가 오경(五更)이었다. 달은 서쪽 바다로 지고, 오직 땅이 희미하게 보이며 그 파도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갑자기 동쪽에 점점 빛이 있더니 바다 빛이 차츰 밝아졌다. 한 가닥 연꽃이 용궁에서 솟아 나와 바다를 뛰어올라 공중에 걸리더니 만상을 다 비추어 세상에 언제 어두인 일이 있었냐는 듯싶었다.” - <남환박물> ‘경승’ 중에서

단번에 성공했을까? 아주 맑은 날을 택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아마 몇 차례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이형상 목사는 육지부에 살면서 동해와 부산 일대에서도 숱하게 해돋이에 도전을 해봤지만 매번 안개에 가려 성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성산일출봉에 몇 차례 올랐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수차례 도전 끝에 성산일출봉에서 해돋이를 만끽하지 않았을까. 해를 만나면 감복하게 되는가? 이형상 목사는 유독 감탄을 쏟아낸다.

그는 해를 만난 기쁨을 ‘흉용(洶湧)’이라고 표현했다. 물결이 세차게 일어나 힘차게 솟아난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해를 보니 마음이 상쾌해지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어도 좋다고 말했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표현이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예전엔 ‘성산일출봉’이라고 부르지 않고, ‘성산’이라고 했다. 하나의 오름이 아니라, 동쪽을 지탱하는 거대한 산으로 ‘성산’이라고 했다. 어쨌든 우리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이형상의 표현처럼 한라산에서 이어진 산등성이가 잠시 바다로 들어가서 솟아난 곳이기에.

 

 

 

탐라순력도 중 성산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