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40> 육군 제1훈련소 정문
한국전쟁에 참전하러 오고 간 젊은이를 기억한다
한국전쟁의 상흔으로서 상징성과 희소성 커
‘평화’의 물결이 모슬포에 살아 숨쉬길 기대
사람을 죽고 죽이는 행위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였다. 작은 형태의 싸움이 집단 내의 싸움으로, 그게 좀 더 조직적인 형태의 싸움으로 진화하곤 했다. 우린 그걸 ‘전쟁’이라 부른다. 전쟁은 분쟁을 폭력으로 처리하는 수단이기도 했고, 특정 집단을 말살시키는 행위이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은 쉼 없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이라고 이름이 붙은 사건도 적지 않다. 가장 최근의 전쟁은 ‘한국전쟁’ 혹은 ‘6·25전쟁’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1950년 발발한 전쟁으로, 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이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 볼 때 전쟁의 경험이 가장 적었던 시기는 조선초기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200년간 평온한 삶을 사람들은 영위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을 사는 우리는 조선초 사람들보다 격한 죽임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은 제주에도 곳곳에 남겨 있다. 제주도라는 땅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쟁에 참전하는 이들을 길러냈던 땅이 바로 제주도였다. 바로 육군 제1훈련소가 있던 땅이 제주도였다. 필자는 제주도 출신이다. 그럼에도 젊은 때는 제주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1986년 ‘군인’이라는 신분이 되려고 첫발을 디딘 곳은 논산에 있던 제2훈련소였다. 군 복무를 하는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은 논산을 거치게 마련인데, 논산훈련소가 ‘제1훈련소’가 아니라 ‘제2훈련소’인지는 당시에도 궁금했다. 제주에 제1훈련소가 있다는 사실은 제대를 하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제1훈련소는 한국전쟁이라는 무거움은 있으나, 죽음의 땅은 아니었다. 제1훈련소가 있던 대정읍 일원, 특히 모슬포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다. 훈련소를 찾는 사람들, 훈련소와 인연을 맺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슬포라는 마을이 생긴 이후에 가장 사람들의 소리가 많이 들리던 때였다.
바삐 오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지금은 기억에만 남았다. 그들이 살던 흔적은 건축물이 대신 말한다. 제1훈련소 일대는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건축물이 꽤 된다. 강병대교회가 2002년 등록문화재로, 2006년엔 제1훈련소 탄약고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2008년엔 제1훈련소 지휘소가 문화재로 등록되고, 2017년엔 현재 대정여고 실습관인 육군 98병원이 등록문화재가 된다. 얼마 전에는 제1훈련소 정문이 등록 예고됐다. 조만간 제1훈련소 정문도 등록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을 전망이다.
당시 육군 제1훈련소 부대 이름은 ‘강병대’(强兵隊)였다. 훈련소 밖에 있던 ‘강병대교회’라는 이름도 훈련소 이름에서 따왔다. 이름에서 보듯 강한 병사를 길러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정문은 사각 기둥 2기가 버티고 있다. 대정고 남쪽에 있는 상모2교차로에 2개의 기둥이 있다. 두 기둥 사이 간격은 17m로, 정문에서 동쪽에 훈련소가 있었다. 정문 서쪽으로 강병대교회와 98병원 등 교회 부속 시설물이 위치했다.
문화재청에서 제1훈련소 정문을 등록 예고한 이유는 모슬포 일대에 전쟁 유적이 많이 분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제1훈련소 정문은 강병대부대로 진입하는 입구로서 상징성을 지녔다. 아울러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정문은 훈련소의 위치가 어디 존재했는지를 알려주는 장소적 의미도 매우 크다.
제1훈련소 정문은 상징성과 아울러 희소성도 크다. 육군98병원 병동 역시 정문을 두고 있었지만 2008년 사라짐으로써, 제1훈련소 정문은 당시 기억을 지닌 유일한 문으로 남아 있다는 희소성의 가치가 있다. 훈련소 정문 설계는 당시 훈련병으로 입소한 평양철도전문학교 토목과 졸업생이던 이영식씨가 설계를 맡아서 진행했다고 한다. 정문 기둥엔 현무암이 사용됐고, 인조석 물씻기 기법이 활용됐다. 제1훈련소 정문은 현재 육군본부 소유로 돼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해 문화재청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신청했다.
훈련소 정문으로, 당대를 기억하는 유일한 정문이라는 상징성과 희소성. 하지만 정문으로만 등록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단독 등록보다는 현재 문화재로 등록된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와 연계하는 방안이 어울린다. 이럴 경우 모슬포는 새로운 문화재를 더 갖게 된다. 유달리 군사 유적이 많은 곳이 모슬포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군사화의 길을 걸었다. 비행장이 건설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모슬포는 또 다른 대규모 군사시설을 담게 됐다. 이젠 ‘군사’가 아닌, 군사를 뛰어넘는 ‘평화’의 물결이 모슬포에 살아 숨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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