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37> 도대불②
바다는 망망대해로 부르기도 하는데, ‘망망대해’라는 네 글자엔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막막함도 담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렇게 항해를 하다가 육지가 보이면 기쁨에 환호를 지를만하다. 물론 육지로 가기까지 걸림돌은 없어야 한다. 육지 근해의 암초를 만나면 오랜 항해의 기쁨도 사라질 수밖엔 없다. 이때 안내를 해주는 도구가 바로 ‘항로표지’이다.
우리나라 항로표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함께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1년 일제가 만든 <일본항로표지편람표>에 조선 관련 부분도 등장한다. 그 자료를 보면 항로표지로는 등대와 함께 ‘등간(燈竿)’, ‘등선(燈船)’, ‘도등(導燈)’ 등이 있다고 나와 있다. ‘등간’은 방파제 따위의 돌출한 부분에 밤중에 항해하는 배의 안전을 위한 표지로 설치한 걸 말한다. ‘등선’은 항로를 알려주는 배이다. ‘도등’은 항구나 좁은 수로에서 안전한 항로를 표시하는 등대를 일컫는다. 등간, 등선, 도등은 모두 등대에 포함된다. 제주에 있는 도대불을 들여다보면 등대, 등간, 등선, 도등 등으로 일컫는 등대 가운데 ‘등간’의 역할도 했고, ‘도등’의 역할도 충분히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도대불’이 당시 축조됐을 때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현재 남아 있는 도대불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제주돌로 만들어졌고, 일제강점기 때 유산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북촌리 등에 관련 기념비가 있는데, 거기 새긴 내용을 잘 들여다보자.
御卽位記念 燈明臺 大正四年 十貳月 建設 |
기념비에 새긴 내용은 위와 같다. 기념비는 등명대를 세운 이유를 일왕 즉위 기념이라고 나와 있다. 즉위한 사람은 누구일까. ‘메이지’로 알고 있는 일왕 무쓰히토(그가 쓴 연호는 ‘메이지’) 다음으로 자리를 이은 인물은 요시히토였다. 그가 재위 중에 쓴 연호는 다이쇼(大正)이다. 요시히토가 즉위한 때는 1912년이다. 다이쇼 4년이면 1915년이 된다. 요시히토는 일왕 자리에 오르면서 곧바로 즉위식을 갖지 않았다. 무쓰히토 사망 3년 후인 1915년에 일왕 즉위식을 갖는데, 제주에서 만나는 등명대 기념비의 내용과 일치한다.
기념비 문구에 등장하는 ‘등명대’는 일본에서 일찍이 사용했다. ‘일본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에 있는 자료 가운데 ‘등명대’를 확인할 수 있다.
1869년 10월 22일 외무성으로부터 등명대 업무가 이관되었으며, 명칭도 등명대국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실제 사무는 여전히 가나가와현이 맡고 있었다. 등명대국은 1870년 8월 9일 민부성으로 이관되었다가 1870년 12월 12일 신설된 내각부성으로 옮긴다. |
‘등명대’ 키워드 검색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1869년까지 일본 외무성에 등명대를 관할하는 부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중에 ‘등명대청’은 ‘등명대국’으로 명칭이 바뀌고, 내각부로 관리가 옮겨졌다는 내용이다.
등명대 관할 업무는 도쿠가와 막부가 외국에 문을 개방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1866년 도쿠가와 막부와 열강 사이에서 조인된 협정에 따라 선박 안전을 위한 장치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등대였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기 위해 등대에 눈독을 들인 것과 같다. 그래서 등대 관련 업무를 담당할 부서가 필요했는데 그 부서 이름에 ‘등명대’가 붙여졌고, 등대 제작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된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도대불도 등명대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등대와는 개념이 달라 보이지만, 그건 우리의 관념일 뿐이다. 등대는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커다란 규모의 등대도 있지만 포구에서 불을 밝히는 작은 규모의 건축물도 등대였다.
이쯤에서 ‘도대불’이라는 용어가 궁금해진다. 거기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한자어인 ‘등대’는 일본어로 ‘도오다이’라로 한다. ‘도오다이’와 ‘도대’엔 다름보다는 같음이 더 풍긴다. 도대불이 ‘도오다이’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렇게 시작된 도대불은 차츰 제주도민들의 삶에 파고들고, 도민 스스로가 만든 등대로 발전했다는 유추도 해본다.
'병원매거진 > 제주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 온주밀감의 시작을 알린 ‘식물 학자’ 신부 (0) | 2021.09.29 |
---|---|
왕벚나무 자생지는 ‘일본’ 아니라 ‘제주’ 밝혀 (0) | 2021.08.27 |
우리나라 등대의 시작은 ‘외부의 요청’이었다 (0) | 2021.06.28 |
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35> 사라지는 원도심 건물들 (0) | 2021.05.25 |
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34> ‘관보’로 보는 근대교육 (0) | 2021.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