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29> 탐라문화광장
수백억원의 세금을 들였으니 제대로 만들어보라
도심은 바뀌기 마련이다. 인구증가, 산업구조의 변화는 도심을 바꿔놓는다. 그러면서 도심의 핵도 옮겨간다. 제주시내 중심이던 제주성내 일대를 원도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도심의 핵이 이동했기 때문에 근원을 말하는 ‘원(原)’을 집어넣어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의 도심은 어디인가. 제주시내의 중심지를 콕 집는다면 관공서가 몰려 있는 신제주 일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청, 제주도교육청, 제주지방경찰청, 제주도의회 등 제주도의 핵심 관청이 신제주 일원에 자리를 틀고 있다. 그렇다고 신제주가 제주시를 대표하진 않는다. 관공서가 옮겨가긴 했으나, 도심은 중간중간 핵심을 두고 있다. 어느 한 지역만 특정 지어서 “여기가 핵심이다”고 표현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제주시 동지역만 놓고 보면 예전 관청들이 즐비했던 원도심이 여전히 핵심 중 하나이다. 제주시청이 자리한 일대 역시 핵심으로 봐야 한다. 최근엔 아라동이 개발되면서 이 지역 역시 새로운 핵심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쪽으로는 삼화지구가 핵심지역의 하나로 급부상했다.
도심은 이렇듯 다양한 핵을 여럿 가지고 있다.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의 기능이 맞물리면서 도심을 구성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도심의 핵심을 억지로 만들려는 행태들이다. 특히 제주시 원도심은 예산만 투입되고,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도심의 탐라문화광장이 그렇다.
탐라문화광장은 제주시 동문로터리에서 산지천을 따라 제주항의 입구까지 이어지는 지역이다. 산지천의 옛 가옥을 헐고, 여기에 광장을 들여놓는다는 발상으로 시작됐다. 민선 5기(지금은 민선 7기이다)에 시작된 거대 사업이다. 당초엔 867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민간투자를 끌어들여 뭔가를 해보겠다는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민간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애초 계획보다 줄어든 565억원이 여기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565억원이 적다는 건 아니다. 엄청난 예산이다.
탐라문화광장은 제주시 일도1동과 건입동에 걸쳐 있다. 산지천을 중심으로 5만515㎡나 된다. 이들 가운데 탐라광장이 3953㎡, 북수구광장 3270㎡, 산포광장 1514㎡, 산짓물공원이 7226㎡이다. 나머지는 수변공간과 산책로 등이 있다. 다 만들고 나면 뭔가가 될 줄 알았는데, 돈만 뿌린 곳이 됐다. 사람이 몰려들게 만들겠다며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이것저것을 해보지만 탐라문화과장에 활력이 들진 않는다.
예전 이곳은 주취자들의 놀이터였다. 탐라문화광장이 조성되고 나서도 주취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없이 지적을 해서인가, 지난 2018년 11월에 들어서야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 고시를 했다. 여기서 궁금한 건 왜 ‘탐라문화광장’이라는 이름을 달았을까이다. 광장의 기본 요건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고가는 곳이 광장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 텅 빈 공간이 광장일 순 없다. 그러나 탐라문화광장은 조용하다. 사람이 오가는 광장이 아니라, 단순한 글자 의미 그대로 ‘넓은 곳’을 지칭하는 광장에 그치고 있다.
아무래도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유럽의 광장 이미지만 그린 것 같다. 유럽의 광장은 사람이 숨쉴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광장 주변은 행정기관이 있고, 교회가 있다. 사람이 오고가야 하는 역할이 자연스레 만들어져 있다. 그런 유럽의 광장을, 이름만 빌려서 탐라문화광장으로 만든다는 발상이 어쩌면 돈을 뿌린 원인이 아니었을까.
탐라문화광장은 충분한 여력을 지녔다. 가진 것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산지천 주변을 살펴보자. 탐라문화광장 북쪽엔 김만덕기념관이 있다. 차츰 남쪽으로 이동하면 산지천갤러리와 고씨주택, 그 건너편엔 아라리오미술관이 자리를 틀고 있다. 특히 이 일대는 3개의 서로 다른 성격의 시장이 있다. 동문시장, 칠성로상가, 지하상가. 이 정도만 놓고 보면 활성화를 시키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 제주도 역사적 인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김만덕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없을까? 김만덕을 기념관에 머물게 하지 말고,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서 숨쉬게 해줘야 한다.
산지천갤러리와 아라리오미술관은 성격이 다른 갤러리이다. 하나는 사진 위주이며, 하나는 현대미술을 보여준다. 산지천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두 갤러리가 호흡하면 독특한 움직임은 언제든 만들 수 있다. 시장은 또 어떤가. 시장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코로나19라는 악재 때문에 어렵기는 하지만 갤러리를 오가는 사람, 김만덕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한 사람들이 시장에서 충분히 호흡 가능하다.
그것 말고도 더 많다. 탐라문화광장이라는 터만 만들기 급했다면, 이젠 그 터를 잘 활용하는 머리를 굴릴 일이다. 수백억원은 행정의 돈이 아니라, 시민들이 낸 혈세에서 나왔다. 세금이 투입됐기에, 탐라문화광장을 제대로 굴릴 여건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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