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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콘텐츠임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워

제주한라병원 2020. 9. 10. 14:47

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27> 산지천갤러리

 


좋은 콘텐츠임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워

 

 


산지천. 우여곡절이 많은 곳이다. 일제 때 개발의 시작점이던 이곳.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쇠락해갔다. ‘슬럼’이라는 단어와도 어울리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 탐라문화광장이라는 거대 개발이 진행되면서 ‘슬럼’을 아예 밀어버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탐라문화광장은 사실 그랬다. 과거의 모든 걸 쓸어서 없애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고씨주택이 보존됐고, 바로 이웃한 건물들이 살아났다.


개인적으로도 이곳은 기자와도 인연이 깊다. 고씨주택을 보존하자고 첫 기사를 썼고, 후속으로 이웃한 금호장 등의 건물 보존을 외쳤다. 다행히 행정도 응답을 했다. 지방선거 이후 행정의 수장이 바뀌어서인지 모르지만 없애는 방식의 개발이 아니라, 기존 주택을 살리는 방식의 재생을 선택한 결과였다.


그런 결과물이 산지천갤러리다. 산지천 일대 건물을 없애고 있던 행정에 변화가 일어난 건 지난 2015년이다. 지금의 산지천갤러리는 2016년부터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2017년 12월 문을 열었다.


쉽지 않았다. 현재 산지천갤러리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이 개관 기획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산지천갤리러가 문을 열 때의 상황으로 돌아가본다. 2017년 12월 5일이었다. 당시 제주문화예술재단 박경훈 이사장은 개관을 앞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동안의 어려운 과정을 설명했다.


“새로 짓는 것보다 어려웠어요. 공사중에 뭐가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제주도내 건축붐 때문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3~4개월간 공사를 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그의 말을 빌리면 기존 건물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덜어내고 붙이고 했다고 한다. 서로 떨어졌던 두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이웃한 건물로 탄생했다. 목욕탕 겸 여관이던 건물은 아기자기한 갤러리로 변신했다. 더 놀라운 건 이 건물 내부에서 예전 목욕탕 굴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산지천갤러리는 특화된 갤러리이다. 제주출신 고(故) 김수남 작가를 테마로한 기획전이 상시 열린다. 아시아의 대표적 다큐멘터리 작가인 김수남을 통해 산지천갤러리를 알리고 있다. 바로 사진 전문 갤러리로의 방향성이다.


그러나 산지천갤러리는 시작은 원대했으나 그 이름을 제대로 알리는 일은 너무 취약하다. 산지천갤러리는 도시재생을 꿈꾸는 기획으로 만들어졌는지, 단순한 갤러리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너무 불분명하다. 겉으로만 도시재생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산지천갤러리라는 이름은 그 순간 반짝하더니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게 됐다. 산지천갤러리를 지원해줄 주변 자원은 풍부한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문시장이 곁에 있다. 주차할 공간도 많다. 인근 지하에 공영주차장 두 곳이 있다. 게다가 제주시 원도심이라는 끌릴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다. 더더욱 산지천갤러리는 ‘사진 전문’을 내세운 곳 아니던가.


더 있다. 산지천갤러리는 예전 숙박시설을 활용한 곳이다. 높은 굴뚝이 말해준다. 요즘 도심에서 굴뚝을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건물을 싹 밀어버리지 않고,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 태어났다는 점은 눈길을 끌 만한 충분한 요소가 된다.


산지천갤러리를, 갤러리가 아닌 ‘건축’이라는 틀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다. 갤러리 내부엔 굴뚝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강철 디딤 손잡이가 있다. 예전 누군가가 그 디딤 손잡이를 잡고 굴뚝까지 올라갔으리라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어떤 이들은 실제 굴뚝을 현장에서 보고 싶은 욕망도 생기리라. 그런데 그런 욕망은 채우지 못한다. 4층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은 단단한 문으로 잠겨 있다. ‘굴뚝’이라는 멋진 포인트를 활용하지 못하는 현장이다. 솔직히 말하면 산지천갤러리 옥상은 탐라문화광장 일대를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이다. 왜 그런 포인트를 썩히는지 알 수 없다.

 

산지천갤러리 옥상에 있는 굴뚝과, 산지천갤러리 내부 굴뚝으로 올라가던 손잡이


단지 작품만 늘어놓으면 사람들이 오겠지라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혹시 그 시간에 원도심을 찾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닐까. 그 때문에 사람들이 산지천갤러리를 오가지 않는가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진 않다. 산지천갤러리 주변에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은 많다.


산지천갤러리는 제주도의 공유재산이면서, 제주문화예술재단이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산치전갤러리는 파리를 날리고 있을까. 이에 대한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제주도의 재산은 사실, 주민의 재산이다. 주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자산이다. 산지천갤러리가 그렇다. 내가 낸 돈으로 산지천갤러리가 만들어졌다라는 사실을 안다면 확 달라진다.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갤러리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나.


개인이 투자한 건물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적극 홍보를 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든가, 아니면 요즘 인기가 높은 SNS를 활용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활성화시키려 할 게 당연하다.


산지천갤러리라는 공간을 만들 당시부터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부족했다. 공공건축은 사실 공공기관이 발주해서 만드는 공간이라는 발상이 문제이다. 지역 사람과 도민들이 직접 산지천갤러리 변화과정에 참여를 하지 못한 점이 지금의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