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없는 대한민국’ 답은 역지사지다
대한민국 최대 병폐 ‘갑질’ 행태에 국민적 공분
직원·운전기사 폭행·폭언 등 ‘재벌형’ 갑질 빈발
최근 ‘직장갑질’ 하루 70건 제보 등 일반화 양상
갑질 분노하는 우리도 갑질 당사자 개연성 상존
돌고 도는 처지 상대방 대한 존중과 배려 필요
모두가 을이 되면 ‘갑질 실종’ 모두가 갑인 사회
대한민국이 ‘갑질’로 시끄럽다. 일단 부(富)를 거머쥔 자들의 ‘재벌형’ 갑질이다. 재벌가들의 기발하고 고약한 갑질에 사회적 지탄이 쏟아진다.
최근 버전은 이른바 ‘갑질폭행’으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전 회장이다. 지난 3일 4차 공판에선 2016년에 물이 끓는 상태에서 우려낸 보이차를 20잔 가량 마시게 한 혐의를 추궁받았다. 이에 앞서 그는 퇴사한 직원을 회사로 불러 공개적으로 뺨을 때리며 영상을 촬영하고, 직원들에게 도검으로 동물을 죽이도록 강요한 영상 등 ‘엽기적’ 행각이 공개돼 사회적 공분을 샀었다.
2010년 10월 물류회사인 M&M 최철원 대표(당시 41세)는 막가파식 행태로 국민적 분노를 샀다. SK그룹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화물연대소속 운전기사 유씨(당시 52세)를 “엎드려, 한 대에 100만원”하며 야구방망이로 10여대 폭행하곤 ‘매 값’이라며 2000만원을 건넨 것이다.
갑질 ‘운전기사 편’은 시리즈 수준이다. 이장한(66) 종근당 회장은 2013년 6월부터 4년간 기사 4명에게 해고 암시 발언 등 폭언과 협박을 하고 불법운전을 강요한 혐의로 올해 1월 징역 6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손자인 정일선 현대 비앤지스틸 사장은 2016년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3년간 운전기사를 61명이나 갈아치운 사실이 드러났다. 정 사장은 이들 가운데 1명을 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의 딸에게 여론이 쏠렸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이 50대 후반 운전기사에게 “아저씨는 해고야” “일단은 잘못된 게 네 엄마, 아빠가 널 교육을 잘못시키고 이상했던 거야” “돈 벌거면 똑바로 벌어”라는 음성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갑질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이 소녀에겐 비난보다 안타까움이 컸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2016년 3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기, 끼어들지 못하게 차량 간격 최소화, 물 가득 담긴 컵 넘치지 않는 부드러운 출발과 정지 등 자신의 요구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운전기사를 수시로 폭언과 함께 폭행해 왔던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갑질이라면 한진그룹이 아닐까 한다. “그 어머니에 그 딸들”이라고 할 정도로 한진 일가(一家)는 갑질에서도 일가(一家)를 이뤘다. 한진그룹 1남2녀의 둘째 딸인 조현민 전무는 지난해 4월 ‘물컵 갑질’ 사건으로 특수폭행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최종 결과는 공소권 없음이었지만 최초 폭로 당시는 사회적 파장이 너무 컸다. 녹음파일 속의 조 전무의 목소리는 괴성 그 자체였다. 분을 삭이지 못해 쏟아내는 욕설에는 논리는 물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조 전무의 ‘물컵 갑질’은 2014년 12월 있었던 언니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에 이은 것이어서 “그 집 딸들은 왜 그러나”하는 비난까지 나왔다. 조 부사장은 대한항공 승무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행기를 돌리고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가 구속됐었다. 더욱이 조 전무의 갑질 이후 공공연한 비밀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의 어머니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운전기사나 경비원·가사도우미 등에게 폭언과 욕설을 일삼았던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공개된 녹음파일에서 이 이사장의 괴성을 들으면 “그 집 딸들은 그럴 수밖에”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갑질이 ‘재벌형’에서 ‘직장형’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갑질이 특정 계층에서 직장 동료 등 사회 전반으로 일반화되는 양상이다. 노동 전문가와 노무사·변호사들이 설립한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하루 평균 직장갑질 제보가 7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제보 사례에 따르면 한 직장인은 개인병원 근무 중에 갑자기 달려온 상사의 주먹에 얼굴을 맞았다. 다른 제보자는 사람들 앞에서 직장상사로부터 “너희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야”라며 모욕과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한 여성 노동자는 송년회 때 ‘장기자랑’을 강요받았고, 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는 회사 공장설립 업무에 배치 받아 지방 현장에서 건설 노동을 해야 했다. 이 밖에도 ‘후래자 삼배’라며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 마시라고 강요한 사례는 물론 본인의 업무를 전가하는 상사도 있었다.
결국 2019년 6월에도 대한민국 사회의 최대 병폐 가운데 하나가 ‘갑질’인 셈이다. 가진 자들의 금권 또는 권력의 오용과 남용이 원인이다. 그렇지 않아도 심화되는 양극화로 갖지 못한 사람들의 박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갑질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갑질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가진 자’들의 자성을 촉구한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갑질에 공분하는 우리도 갑질의 당사자인 ‘가진 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늦은 서빙에 짜증을 낸 적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편의점 알바생이 자식이나 조카처럼 어리다고 막 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을’의 서러움을 토로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겐 큰 소리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돌아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직장에선 상사에게, 조직에선 선배에게, 아니면 택시손님이었다가 식당 주인이 되어 을이 된다. 용돈이라도 벌겠다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내 아들·딸이 다른 손님의 갑질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의 큰 힘을 가졌더라도 병원을 찾으면 의사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을의 신세다.
결국은 돌고 도는 처지, 답은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갑이면서 을이고, 을이면서 갑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것은 을의 모습이다. 그래서 모두가 을(乙)인 사회, 그것은 모두가 존중받는 모두가 갑(甲)인 사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김철웅 전 제주매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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