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현안의 심판인가 감독인가
단순 사실 전달 수준의 환경감시기능이면 ‘심판’
지역 위해 대중 향도하면 상관조정기능의 ‘감독’
문제는 지역 ‘최고의 선’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1990년대 제주 7~8년새 ‘보전’에서 ‘개발’로 전환
해군기지·제주공항에 확신 찬 논조 전개 힘들어
날아올 게 뻔한 돌 맞기 싫은 것도 ‘소극적’ 원인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환경감시기능과 상관조정기능, 사회유산전수기능, 오락기능 등으로 분류한다.
환경감시기능은 보도매체가 다루는 뉴스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각종 이슈와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 정리하고 전달하며 사회제도의 일상적인 운영에 도움을 준다. 상관조정기능은 사실보도의 차원을 넘어서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고 처방을 통해 사회를 설득한다. 해설이나 칼럼 등을 통한 정책 비판이나 대안 제시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유산의 전수기능은 사회의 가치·규범, 그리고 그 사회의 각종 정보를 다음 세대로, 혹은 그 사회에 편입된 새로운 사회 구성원들에게 전수하는 기능을 말한다. 매스미디어가 전달하는 뉴스나 논평 외의 흥미를 위한 내용이나 프로그램 등은 오락적 기능을 수행한다.
언론의 고민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환경감시기능과 상관조정기능 사이에서 ‘위치 잡기’의 문제다. 사회 현안의 사실 전달에만 충실해야 하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지 판단이 힘들 때가 없지 않다. 스포츠에 비유한다면 심판만 봐야 할지, 아니면 감독으로 경기를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이다. 사실(fact)만 전달해 수용자들인 공중(公衆)이 스스로 ‘최고의 선(善)’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언론은 환경감시기능을 수행하는 지역 현안에 대한 ‘심판’일 수 있다. 언론이 나아가 ‘최고의 선’을 달성하기 위해 공중을 이끌어 향도(嚮導)하려 한다면 상관조정기능을 수행하는 ‘감독’이 된다.
무엇보다 ‘최고의 선’에 문제가 있다. 스포츠의 경우 최고의 선은 쉽다. 이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역 현안의 관점에선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사회현상에서 ‘최고의 선’이 무엇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상황도 바뀐다. 어제의 적(敵)이 오늘의 적이 아닐 수 있고, 오늘의 선(善)이 내일엔 선(善)이 아닐 수 있다.
1990년대 전후 개발의 바람 속에서 제주지역의 최고의 선은 ‘보존’이었다. 제주 땅 지키기를 외치는 사람은 일제시대 애국자처럼 진정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가됐다. 1990년대 초, 모 골프장 건설 당시 반대시위를 벌이던 지역 주민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사회면 톱기사로 ‘불의에 맞선 의인들’처럼 보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불과 7~8년 뒤 IMF사태가 터지면서 지역사회의 ‘최고의 선’이 달라졌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외지자본에 대한 시각이 확연히 바뀌었다. 관광객이 줄고 농업이 어려워지니까 들리는 소리가 “외지자본 유입을 통해서라도 개발을 해야 한다”였다. 행정은 중국 자본 유치 등의 보도 자료를 자랑스레 냈고, 지역신문 등 언론들도 거부감 없이 보도했다. 주민들은 “왜 우리 지역에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느냐”는 식으로 행정에 따질 정도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도 못 된 시간에 제주 사회가 지향하는 최고의 선, 아니면 다수의 선이 그렇게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 얘기하는 최고의 선이 10년도 지나지 않아 최고의 선이 아닐 개연성이 없지 않아 언론을 우물쭈물하게 한다.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그랬다. 지역 언론이나 행정이 과정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사이, 지역주민 등 상당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은 준공됐다. 과연 10년 뒤 어떤 평가가 나올까. “이왕 들어설 거 그냥 놔둘 걸. 해군들이 들어오니 마을도 활기차고 경기도 좋아진 것 같다. 반대하며 지역역량만 낭비했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거봐, 인구는 유입됐지만 지역사회가 군바리문화로 바뀌어버렸네. 콘크리트를 쳐 발라 강정 앞바다 경관을 망쳐놓은 것은 어떻고. 좀 더 치열하게 반대했어야 했는데”라는 탄식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지역 언론은 “해군기지를 허용하자”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 있게 논조를 펼치지 못했다.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제2공항도 비슷하다. 국제관광지에 걸맞은 접근성 확보 차원과 도민들의 편안한 연륙 나들이를 위해 제2공항이 필요하다는 행정의 주장이 맞아 보인다.
하지만 관광객 1500만명 시대부터 나타나는 오버 투어리즘(over-tourism)의 부작용인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과 환경용량 등의 문제를 감안하면 관광객이 더 이상 다다익선(多多益善)만은 아니다. 그러면 지금 공항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는 반대 측의 논리에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양측의 주장에 대한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IMF를 전후해 7~8년 사이 지역의 최고의 선이 바뀌었듯 공항의 문제도 그럴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언론은 상관조정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행정의 발표와 NGO 등의 반발을 중계하면서 기본적인 환경감시기능에 머물곤 한다.
지역 언론이 우유부단한 또 다른 이유는 날아올 게 뻔한 돌을 맞기 싫다는 것이다. 기사 내용이 최고의 선을 위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대다수 도민, 축소해서 각각의 이해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상반되는 보도가 나가는 순간 그 언론사를 ‘원수’ 취급한다. 전화 항의는 기본이며 신문사를 찾아오고 생난리를 친다. “너 죽을래. 아님 우리 죽는 꼴 보려고 작정했구나” 수준이다.이러다보니 언론도 ‘침묵의 나선효과’에 묻어가려는 소극적 태도가 나타난다. 목소리 큰 쪽에 더 신경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렵고 복잡하게 가지 말자는 것이다. 소신은 사라지고 보신만 남는 셈이다.
가끔은 돌을 맞더라도 자신감 있게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해단체는 물론 NGO와도 맞장을 뜨는 자세로 ‘아니다’ 또는 ‘맞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가 않다. 이것이 지역 언론, 아니 대한민국 언론계 전체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김철웅 전 제주매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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