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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의 또 다른 감동, 휴먼웨어

제주한라병원 2019. 5. 28. 16:37


겉핥기식 급조된 지식 말고 감동 주는 스토리 필요

관광의 또 다른 감동, 휴먼웨어



관광은 영화나 연극처럼 고객에게 감동을 파는 상품이다. 영화나 연극은 제공하는 내용의 질에 따라서 감동의 정도가 달라지지만, 관광은 한 가지 요소에 의해 그 질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바로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한 지역이나 국가의 관광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어김없이 서비스가 들어간다. 우리 주변에서도 거금을 택시에 두고 내린 관광객을 찾아 돌려준 기사의 이야기, 민박집 주인의 친절한 손님맞이 이야기가 미담으로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비스 정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반영하고 있는 사례라 하겠다. 관광지의 경우 역사나 경관, 그리고 빼어난 시설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베푸는 친절, 청결, 솔직함 등으로 나타나는 휴먼웨어는 더욱 소중하다. 휴먼웨어는 이제 관광지의 주요 구성요소인 관광 상품이나 시설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요 인자임을 깊게 인식해야 관광지로서의 경쟁력을 지켜나갈 수 있다.


전통적으로 제주 사람들은 인정이 많고 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말투가 다소 거칠고 투박해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억지춘향식의 친절은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친절과 배려는 습관적이어야 하고 익숙해야 품격이 있다. 몸에 저절로 배인 습관적인 친절로 제주의 품격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직간접적으로 관광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제주를 대표한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손님을 맞을 때 제주관광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일본 미나미따 민박집 할머니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했던 필자에게 지금까지 가장 특이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구마모토현의 한 어촌마을 미나미따에 있는 민박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민박집이 있는 마을은 바다를 끼고 5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런데 관광지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적한 분위기에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마을이었다. 날씨마저 춥고 온천 빼고는 뭐 하나 제대로 볼 것이 없는 곳이라 손님이 전혀 없었다.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민박집의 주인은 70세가 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주인 할머니가 손님을 맞는 정성은 친절을 넘어서 매우 품위 있어 보였다. 주인 할머니는 온천목욕실로 가는 우리 일행들에게 머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보기 좋게 접은 목욕가운을 일일이 나눠줬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 때는 우리 일행들에게 깨끗하게 손질한 일본식 가운을 입게 했다. 주인 할머니 역시 기모노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식탁 한켠에 무릎 끓고 앉아 식사가 끝날 때까지 서빙을 했다. 식사는 그 지역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바닷고기를 요리한 정갈한 일본요리였다.


민박집의 정성과 친절은 다음날 아침 일찍 민박집을 나서는 배웅의 시간까지 이어졌다. 가족 모두가 기모노를 차려입고 나와 우리 일행이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연신 손을 흔들어댔다.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친절과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대였음을 절로 느끼게 했다. 그래서인지 다시 한 번 꼭 방문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래저래 미루다가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친절이라는 것은 교육수준이나 연령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별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을 듯한 촌부나, 취재할 때 만났던 동경대학 노교수의 품격과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졌던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환대정신이야 말로 관광지의 소중한 자산이다.



일본 오크아이즈 ‘전설의 고개’

일본 오크아이즈에 ‘전설의 고개라는 이름의 펜션이 있다. 그 펜션에 묵는 손님들은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 주인집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주인집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그곳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관광콘텐츠다. 주인 할머니는 결코 그 분야의 교육을 받거나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태어나 긴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곳 사정을 잘 아는 것뿐이다. 비록 말솜씨가 매끄럽지는 못하지만 구김살 없는 이야기에 손님들은 대부분 만족해한다.


우리의 경우 운 좋게 해설사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관광객 특히 단체관광객들은 안내원을 통해서 관광지의 내력을 듣게 된다. 그러나 특정 판매점이나 특정식당 찾기에 연연하는 우리의 풍토 속에서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제대로 전하는 안내원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수박 겉핥기식의 급조된 지식으로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내뱉는 이야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태는 오히려 우리의 역사나 문화를 왜곡되게 할 수 있으며, 제주의 이미지를 흐려놓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제주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적인 해설사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부족한 점이다. 한라산과 오름을 비롯한 제주의 자연에 대한 해설 또한 그렇다. 생태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함께 전달해 줄 수 있는 원로 산악인들이나 향토사 연구가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분들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에 초빙해서 지역적 가치가 싱싱하게 살아 숨 쉬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준 높은 관광 안내는 관광지의 매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또 하나의 휴먼웨어로서 관광 안내는 지역을 올바르게 알리는 살아 있는 관광콘텐츠다.



<송정일 전 JIBS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