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에 따라 애처로운 울음소리 유별나
많은 종류의 새들 중 사계절 내내 흔히 볼 수 있는 새가 직박구리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몸길이 약 28cm쯤 되는 새이다. 몸 전체가 잿빛을 띤 어두운 갈색이고 머리는 파란빛이 도는 회색에 귀 근처의 밤색 얼룩무늬가 두드러진다. 무리를 지어 시끄럽게 지저귀는데, 울음소리가 아주 음악적이다. 제주에서는 울음소리에 따라서 ‘비츄’라고도 하며 한겨울 나무열매가 거의 없어질 무렵이면 멀구슬나무 열매가 익어 가는데 이 노란색의 열매를 먹는 것을 보고 ‘목코실생이’ 라고도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새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 멀구슬 열매를 먹고 있는 직박구리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에서 흔히 번식하는 텃새이며 제주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겨울에는 보통 평지로 내려와 마을 부근 나무에서 3∼6마리씩 무리를 지어 지낸다. 여름철에는 암수 함께 살고 둥지는 상록활엽수나 잡목림에 지으며 보통 4-5마리의 새끼를 키운다. 어린 새끼를 키울 때는 동물성 먹이인 애벌레와 곤충을 잡아다 먹이고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식성이 식물성으로 변하게 된다. 보통 나무열매를 좋아하며 각종 꽃의 꿀을 먹는데 특히 동백꽃의 꿀을 좋아한다.
직박구리는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게 아니라 동남아를 비롯해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서식하는데 먹이를 찾아 이동할 때는 40∼50마리에서 수백 마리에 이르는 큰 무리를 지을 때가 있다. 주로 나무 위에서 살고 땅에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다. 날 때는 날개를 퍼덕여 날아오른 뒤 날개를 몸 옆에 붙이고 곡선을 그리면서 날아간다. 날 때에도 잘 울며 1마리가 울면 다른 개체가 모여들어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다.
제주에서는 참새만큼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다. 야외 어디를 나가든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새이기도 한데 제주 시내 주변에서는 한라수목원에 가면 가장 먼저 반기는 새가 아마 직박구리가 아닐까 한다. 여기에 가면 직박구리를 비롯해 참새, 박새, 딱새, 멧새, 흰배찌바귀 등 많은 종류의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직박구리는 2마리가 짝을 이루어 다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으며 특히 직박구리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바로 그 소리 때문이다. 길게 끄는 직박구리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한 번만 들어도 까먹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독특하다.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건 다른 새소리들도 마찬가지지만 직박구리는 유별나다. 아침과 낮과 석양이 비낄 때가 다르고, 흐릴 때와 바람이 불 때와 바람이 몹시 불 때가 다르고, 바람에 물이 섞여 있을 때와 비가 올 때가 다르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 때와 쌓인 눈 위로 적막할 때가 다르고, 까치들 옆을 지날 때와 까마귀들이 동네를 점령했을 때가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느낌의 소리를 내는 새는 아마 직박구리 뿐이지 않을까 한다.
조선시대 어휘사전인 물보(物譜)에는 제호로(堤葫蘆), 제호(堤壺), 직죽(稷粥), 호로록(葫蘆漉)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모두 울음소리를 나타냈으며 조선 중기 장유는 한시(漢詩)에 직죽(稷粥)이라고 쓰고 ‘피죽’으로 읽었다고 한다. 춘궁기에 우는 울음소리를 의성한 것인데 피죽피죽 새가 운다고 표현한 것 같다. 내용은 ‘춘궁기에 온 식구가 먹을 큰 솥에 한 움큼의 쌀을 넣고 물을 가득 부어 넣어 죽을 끓이니 멀건 죽이 잘 풀어지지 않는다. 가뭄 끝에 홍수 난다더니 먹고 살 길이 캄캄해진 농부들은 그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통곡밖에 할 일이 없다. 그나마 죽이라도 있어 굶어 죽기는 면하지 않느냐며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피죽새는 계속 피죽피죽 하며 운다고 노래했다.
한시로서의 표현이라 듣는 사람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숲에 나가게 되거든 직접 귀를 기울여 보시기를 바란다. 아니 숲에 나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유심히 들어보시기를 바란다.
<지남준 조류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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