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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보고 제주

제주한라병원 2019. 1. 24. 13:32

지역의 고유성을 문화산업으로

인문학의 보고 제주

수년 전부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제주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이에 따른 강좌나 콘텐츠의 전단계인 스토리텔링도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주지역 안에서 고유의 인문적 소재를 콘텐츠화 하는 시도는 많지 않다. 문화콘텐츠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특성을 갖고 있다. 영화가 뜨면 뮤지컬로, 다시 캐릭터로, 또 관광 테마파크로도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그래서 문화콘텐츠는 꼬리에 꼬리를 잇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원자재는 인문학적 스토리이다. 제주는 문화산업 원자재의 보고다. 제주의 신화와 역사, 그리고 마을마다 숨어 있는 이야기는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산업의 동력이다. 제주에서의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문화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시도는 미약해 보인다. 오히려 외부지역의 작가들과 제작자들이 제주의 신화나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콘텐츠 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 인기를 끈 콘텐츠 ‘신과 함께’는 제주의 천지왕본풀이이가 중심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드라마로 방송됐던 ‘도깨비’도 제주와 친숙한 소재다.

도깨비의 고향 제주

도깨비는 영화나 뮤지컬은 물론이지만 특정마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마을 만들기에 활용하거나 제주적 관광테마파크로 만들기에 아주 적합한 소재다. 한국의 도깨비는 제주를 떠나서 설명할 수 없다. 일본의 요괴, 중국의 강시, 서양의 유령이 있다면 제주는 도깨비가 있다. 제주에는 한국 도깨비의 우두머리격 신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제주의 무속 속에는 제주사람들이 그려온 도깨비의 정체가 잘 녹아 있다. 제주의 대표적 놀이인 영감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영감놀이는 제주의 도깨비가 전국 팔도의 도깨비를 청해 한바탕 축제를 펼치며, 병을 치유하고 가정의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깨비들이 창호지로 만든 탈을 쓰고, 흰 누더기 옷을 걸치고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펼치는 연희는 해학의 극치다. 또한 제주에는 제주가 도깨비의 본고장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도깨비당이 여러 군데 있다. 한경면 낙천리의 본향당을 비롯해서 한림읍 비양도의 송 씨 영감당, 제주시 도두동의 쇠촐래미당 등은 도깨비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과거 제주의 도깨비 신앙은 뱀신앙처럼 집안의 조상으로 모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 대접하지 않으면 무서운 보복을 하는 신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비밀스럽게 모시는 집이 많았다. 낙천리 도깨비당의 신은 송 씨다. 낙천리는 이 송 씨가 설촌했다고 전해진다. 송 씨의 생업은 대장장이였는데 후에 안덕면 덕수리로 이주하게 된다. 이 송 씨들이 안덕면 덕수리에 정착하고 풀무질을 하며 도깨비를 신앙으로 모시게 된다. 이곳에 사는 송 씨들을 가리켜 도채비(도깨비) 송 씨로 불리어 왔던 것도 우연이 아닌듯하다. 새마을 운동이 펼쳐지고 또 세태의 변화와 함께 제주 고유의 풍속들이 미신으로 치부돼 왔다. 한때 도깨비를 신앙으로 모셨던 사람들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심정도 있었을 법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이러한 흔적들은 내일을 열어가는 떳떳하고 당당한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도 있겠다. 결국 도깨비란 테마는 안덕면 덕수리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상표라 여겨진다. 도깨비를 마을 만들기에 활용하고 테마파크로 키워나간다면 덕수리는 물론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산업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도깨비를 글로벌 콘텐츠로

한 연출가가 제주시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생각하는 도깨비를 도화지에 그려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그려내는 도깨비는 모두 달랐다. 무서운 도깨비, 화를 내는 도깨비, 호탕하게 웃는 도깨비, 울상짓는 도깨비, 뿔이 달린 도깨비, 베트맨을 연상케하는 도깨비 등 각양각색이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또는 장년, 노인들에게 똑같이 주문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의 도깨비들이 나왔을까? 이 또한 재미있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도깨비는 요괴나 강시, 유령처럼 공포스럽거나 기피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것이 콘텐츠의 소재로서 갖는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도깨비는 우리들과 매우 친숙한 테마로 테마공원의 보편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소재다. 월트디즈니의 동화적 요소나 그리스신화가 제주나 한국을 대표하는 테마파크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서 위에 잉태된 도깨비와 같은 소재야말로 가장 제주적이고 세계적인 것이다. 제주 무속신앙의 대표적 연희인 영감놀이에 등장하는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도깨비들의 잔치, 안덕면 덕수리의 도깨비 신앙, 이것은 분명코 제주라는 지역, 덕수라는 마을만이 해 낼 수 있는 소중한 컨셉인 동시에 제주관광이 지향해 나가야 할 이정표다. 외국에도 있고, 부산에 있어도, 서울에 있어도 그만인 개성 없는 접근은 결코 세계 관광시장에서 승부할 수 없다.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역사와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소재만이 특화된 문화산업의 콘텐츠로서 또 관광자원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송정일 전 JIBS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