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분쟁 없이 나눔 미덕으로 삼는 공동체 유지
왜 평화의 섬인가
<송정일 전 JIBS부회장>
평화의 바람 부는 제주
과거 제주에서 세계 정상들의 회담이 열린 이후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불리길 바라는 도민들이 많다. 최근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제주에 평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두 정상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서 펼친 평화의 염원이 어머니 같은 산 한라산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불어 제주도민들은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평화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제주가 확실한 평화바람의 진원지로 자리매김하길 고대하고 있다.
한반도는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그 갈등과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다. 이러한 이념적 대립과 국민적 통일의 염원을 잘 녹여낸다면 평화의 섬 이미지는 더욱 공고하게 고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세계 정상들이 회담을 하고 또 북한의 지도자가 한라산을 찾았다고 해서 평화의 섬으로 각인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제주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제주는 평화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그 근거를 찾아내고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즉 대내외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주 자체의 평화에 대한 철학이 뒷받침돼야만 하는 것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최남단에 있는 한라산과 최북단에 있는 백두산은 공간적으로 볼 때 극과 극을 의미한다. 결국 이 두산의 만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극한 대립의 상태에 놓여있는 남과 북의 화해와 화합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정상이 한라산 백록담에서 천지의 물과 백록담의 물을 섞는 합수행사를 하고 온 겨레의 염원을 담아 통일을 논의한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평화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이후 제주를 중심으로 회담을 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확대된다면 제주야말로 평화의 메카가 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의 젊은이들이 백두산을 찾아 민족의 정기를 확인하고 어머니 같은 한라산에서 화합을 도모하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면 평화에 대한 제주의 상징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어떤 이미지가 고착되기 까지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대내외적 공감대의 지속적 확산이 절대적이다.
한때 평화의 섬이라는 명분을 확산시키기 위해 대형 평화의 종을 만들거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평화 랜드마크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제주가 확실한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란 고유한 이미지를 달고 끊임없이 교류를 이어나가고 상징성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도 발굴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남북 화합을 통한 평화의 이미지는 제주도만이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이 흉내 낼 수 없는 제주만이 갖고 있는 평화 논리와 철학을 다지는 작업이 더 시급한 과제다.
제주신화 속의 평화
인류는 전쟁의 역사다. 인간의 배후에서 분쟁을 조장하고 조정하는 신들의 이야기 역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영토분쟁, 권력다툼, 애정문제 등등 그 갈등의 끝은 전쟁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나 흥미진진한 그리스신화의 내용도 결국은 전쟁 이야기다. 그러나 제주신화 가운데는 놀랍게도 평화공존의 의미를 강조한 경우도 있다.
고량부 삼성의 신화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고량부 삼성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보다는 타협을 선택했다. 각자가 차지하고자 하는 영토를 향해 화살을 날려 그 것을 영역으로 정하는 슬기로운 공존의 방법을 택했다.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이하는 과정도 그렇다. 나이 차례로 여인들을 맞아들임으로써 순리와 합리라는 지극히 단순한 방법을 선택했다. 땅을 차지하거나 여자를 맞아들이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쟁탈적 방법과는 다른 평화적 방법을 쓰고 있다.
특히 권력다툼을 둘러싼 암투와 모사는 처절하다 못해 피비린내 난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도 없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자 신화적 묘사다. 그러나 제주의 신화 설문대할망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의미의 권력이 승계된다. 설문대할망이 500명이나 되는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솥에 빠져 죽었고 아들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죽을 맛있게 먹는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설문대할망이 자연스럽게 권력을 아들들에게 이양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렇듯 제주의 역사와 신화에는 대립적 위치에 있는 주인공들이 타협과 희생 또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지혜와 교훈이 담겨 있다. 결국 제주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제주는 다툼과 분쟁의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공동체다. 이웃을 존중하고 신뢰하기에 대문은 아예 만들 필요가 없었고 나눔의 미덕을 알았기에 거지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서로 돕고 협동하며 어려움을 이겨낸 수눌음의 미학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제주 전래의 아름다운 미풍과 역사와 신화가 주는 교훈이야 말로 제주가 진정 아름다운 평화의 섬이라는 것을 공고하게 해주는 철학이요 가치임 틀림없다.
'병원매거진 > 언론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학의 보고 제주 (0) | 2019.01.24 |
---|---|
한반도 비핵화 전략 플랜B도 필요하다 (0) | 2019.01.02 |
“제주개발 ‘자원’ 아니라 ‘상상력’의 부재가 문제” (0) | 2018.10.29 |
당,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문화적 자원 인식해야 (0) | 2018.10.08 |
제주관광 인프라의 역설 ‘너무 많고 넓은 도로’ (0) | 2018.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