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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 단순함과 절제미 곁들인 돌조각

제주한라병원 2011. 6. 2. 09:57

동자석, 단순함과 절제미 곁들인 돌조각의 으뜸

 

2009년/12월

 

 

돌은 사람을 닮고, 사람은 돌을 닮는다. 돌에서 태어나고 돌과 함께 죽는 제주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는 ‘산담’으로 시작했다. ‘산담’은 사후 제주인들이 돌과 함께 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제주의 돌 이야기를 ‘산담’으로 끝낸다는 건 너무 아쉬웠다. 몇 차례 더 제주의 돌 이야기를 싣는다.

 

돌과 인간을 얘기하려니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운주사를 처음본 건 정확히 25년전이다. 당시엔 초라한 대웅전을 가진 절이었으나 필자를 맞은 건 듣기만 하던 ‘천불천탑’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 발에 걸리는 것 모두가 탑이었고, 불상이었다. 지금껏 잘 깎은 불상과 탑신만을 보아왔던 필자에겐 잘 다듬어지지 않은 그들의 못생긴 얼굴은 새로운 문화를 일깨운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자석의 모습에 홀린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에 홀린 사람이라면 제주의 동자석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동자석은 ‘천불천탑’에서 만나는 단순미의 극치를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선. 대담한 생략. 모든 것의 표현은 얼굴과 손에 집중된다. 그러면서도 동자석은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한다. 더구나 개개의 사람들처럼 같은 표정, 같은 몸짓이 없다. 그러니 동자석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을 닮았기에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잘생긴 얼굴을 한 동자석은 없다. 반면 미운 얼굴을 찾기도 힘들다. 곁에 다정히 앉아 보고 싶고, 껴안고 싶은 그런 모습들이다. 동자석이 사람을 닮은 이유는 있다. 무덤 주위의 한 자리를 차지한 동자석은 무덤 주인을 표현한 작품이기에 그렇다.

 

무덤에 피어난 예술작품

그리스․로마시대가 사실적인 구상미술의 극치라면, 제주의 동자석은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로 넘어가는 절제와 단순미의 최고봉이다. 비너스상에 비교한다면 동자석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밀로의 비너스보다는, 단순하면서 힘있는 표현이 뛰어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았다.


동자석은 석인(돌사람)이다. 석인은 동자석을 비롯, 문인석․망부석․장승 등으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뭍지역에도 동자석을 빼닮은 석상들이 있으나 제주에서처럼 대규모로 흩어져 나타나지는 않는다. 봉분 주위에 박혀 있는 동자석은 조상을 숭배한다는 의미에서, 혹은 무덤수호자로의 기능을 하기도 하며, 주술 또는 장식적인 기능으로 무덤과 어울려 있다.


어쨌든 무덤의 주인과 함께 하는 동자석은 대부분 묘를 향해 서 있거나 마주보고 있다. 동자석은 잘 다듬어진 석인들과 달리 대담한 생략이 돋보인다. 디테일한 멋은 없으나 소박한 멋이 일품인 무덤에서 피어난 예술작품이다.

 

대담한 ‘천의 얼굴’

 

 

동자석은 채 1m가 되지 않지만 130㎝에 이르는 큰 것들도 있다. 그러나 공통된 점은 얼굴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닮은 얼굴은 없으며, 머리와 손의 표현도 동자석마다 서로 다르다.


관모를 쓴 동자석이 있는가 하면, 어린애 얼굴을 한 것들도 있다. 불룩 튀어나온 눈, 동전만한 크기의 눈, 한 줄로 얇게 처리한 눈, 눈썹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두 겹으로 눈을 도드라지게 만든 동자석도 있다. 그야말로 석공의 손놀림에 따라 동자석은 천의 얼굴로 변신한다.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꽃을 들고 있거나 두 손에 술잔을 부여잡은 손. 거울을 든 뭉툭한 손도 있다. 그러나 손마저 생략하고 얼굴만을 드러내는 동자석도 간혹 눈에 들어온다.

 

후세에 남겨야 할 문화유산

동자석은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제주도 곳곳의 무덤가 주변을 지켰으나 이젠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자석을 만든 이들은 예술가의 대접조차 받지 못했다. 그들은 돌을 깎는 일을 목숨처럼 여겼으나 그들이 만든 수천개에 이르는 동자석은 이젠 손으로 셀 수 있을만큼 줄어들었다.


제주돌문화공원의 총괄기획을 맡고 있는 백운철씨는 동자석을 일컬어 ‘보석처럼 귀한 것’이라 했다. 무덤가에 있으면서 풍상의 세월을 견뎌낸 동자석이야말로 제주사람들의 정신을 말함이 아닐까.


‘내가 만일 동자석을 세운다면’ 이런 질문도 던져본다. 제주 돌이 사람을 닮고, 제주 사람 역시 돌을 닮을 수밖에 없다면 내가 세우는 동자석도 분명 나를 닮을테니까.


어쨌거나 제주사람들은 너무 흔한 것이기에, 동자석이 인간에게 선물한 것들의 의미를 잊고 지내왔다. 석공이 그 사실을 안다면, 무덤의 주인이 그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애통해할까. 민중 조각의 질박한 조형미를 나타낸 동자석이 뛰어난 예술작품임을 다시한번 되새겼으면 한다.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