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의 사상자, 보라 꽃의 큰각시취가 무더위 달래줘
섬머리(도두봉) 야생화 |
폭염에 지치고 에어컨 바람에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요즘 산들산들 자연바람이 그리워진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산바람과 바닷바람에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제주시 도두동에 위치한 도두봉에 가보자. 55m의 낮은 비고로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어 별 매력이 없어 보이지만 도두 포구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입구에 서면 가는 가지에 개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촘촘히 피어있는 하dis 꽃을 살랑이며 ‘사상자’가 반갑게 인사한다. ‘사상자’는 무더기로 자라고 하얀 꽃이 피었다가 방울방울 열매를 맺을 때까지 우리 산야에 피어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끌지는 못하는 듯하다. 한의학에서 오자(五子)라고 하는 ‘오미자, 복분자 ,구기자, 토사자’와 같이 좋은 약재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면 관심의 눈길을 주기도 한다. 계단을 몇 발자국 옮기지 않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장신의 야생화가 큰 키를 가누지 못하고 비스듬히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다. ‘큰각시취’다. 키가 50~150cm로 자라는 ‘큰각시취’는 제주도에서는 잘 보기 힘든 야생화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란다고는 하지만 도두봉에서가 가장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듯하다. 각시는 어린 신부를 뜻하고 취는 먹을 수 있는 나물이란 뜻처럼 여름에 어린 순을 뜯어서 나물로 삶아 말려서 먹는다. 은빛을 내는 꽃봉오리에서 선명한 보라색 꽃이 활짝 피어 무더위에 도두봉을 찾은 이들에게 주는 꽃 선물이다.
산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데크는 포구를 바라보며 쉬어가는 전망대는 명당자리다. 거대한 바위를 감싸고 자라는 송악은 싱싱한 잎에 윤기가 넘친다. 바다를 바라보며 늘어진 ‘미국자리공’꽃이 해무가 자욱한 바다 건너 고향이 그리운 듯 길게 늘어져 있다. 자연염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한번쯤 염료로 썼을 ‘미국자리공’열매의 자줏빛은 아주 매혹적이다.
연분홍빛을 한 작은 꽃은 긴 꽃대에 먼저 핀 꽃은 초록빛 열매를 맺으며 끝으로 점점 꽃을 피우는데 자세히 관찰하면 재미있는 자연의 흐름을 배운다. 독이 있는 열매는 동물들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울창한 숲 풀 속에 꽃잎을 힘껏 뒤로 저치고 다소곳이 아래로 피어있는 ‘땅나리’꽃이 정열적인 여름에 어울리는 주황색 빛을 밝히고 있다. 나리꽃 종류도 많고 다들 무더운 7~8월에 광열하게 피지만 가장 작은 모습으로 아래만 내려다보는 ‘땅나리’를 만나면 미소 지어진다. 바위틈 아니면 숲 가장자리에 핀 듯 안 핀 듯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산박하’가 연보라색 꽃을 쌍쌍이 매달고 있다. 봄에 새잎에서 박하향이 나는 ‘산박하’는 여름에는 향이 나지 않지만 긴 줄기 마디마디 연보라색 꽃을 피운다. 무엇이든 군락을 이루면 아름답듯이 ‘산박하’도 여름에 시야를 시원하게 해주는데 한 몫 하는 야생화다. 둘레길에 식재한 어린 동백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동백열매의 무게가 내 어깨의 무게인 듯 힘들어 보여 따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나치며 만나는 소나무 숲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일제강점기에 ㄷ자 모양으로 파놓은 진지동굴을 보고 정상에서 만나는 왜구의 침입을 알리던 ‘도원 봉수’터라는 알림판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오름은 작고 낮지만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곳 아픈 과거에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두봉이 지금은 1월1일 새해를 밝히는 일출 행사 하는 희망의 명소가 되었다.
5분이면 오르는 오름 정상이지만 산 둘레를 걸으며 어루만지듯 교감하며 걷으면 어느새 가슴깊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연재종료코너 > 숲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얀 구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산정호수 (0) | 2018.10.08 |
---|---|
선인들의 삶의 흔적 고스란히 남아 (0) | 2018.08.28 |
오랜 세월이 만든 돌 위에 빼곡한 이끼 ‘가시 8경’ (0) | 2018.06.28 |
황금 물결 넘실대는 들녘과 보라색 갯무꽃이 반겨 (0) | 2018.05.31 |
삼나무 숲에서 퍼지는 산딸기 향에 희망 가득 (0) | 2018.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