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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만든 돌 위에 빼곡한 이끼 ‘가시 8경’

제주한라병원 2018. 6. 28. 10:46

오랜 세월이 만든 돌 위에 빼곡한 이끼 ‘가시 8경’


 

표선면 갑마장길

 

  언제부터인지 오름 주위에는 트레킹길이라는 푯말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잡목이 우거져 접근하기 쉽지 않았던 곳에 야자나무 매트가 깔리면서 숨어있던 숲이 속살을 보이고 있다. 각 지역과 마을마다 멋진 트레킹길을 자랑하지만 아이들과 노인들도 편안하게 걸으며 제주의 탄생을 체험할 수 있는 표선면 가시리 ‘갑마장길’은 이름에 걸맞게 최고의 트레킹 길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말을 길렀던 드넓은 목장지인 ‘녹산장’의 일부를 트레킹길로 만들었다. 총 20km안에 ‘따라비오름’과 ‘대록산’를 포함하고 있지만 3km의 짧지만 깊게 힐링할 수 있는 ‘쫍른 갑마장’길 중에서도 ‘꽃머체’길은 명품 길이다. 시작은 가시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조랑말 체험장’입구 ‘행기머체’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기머체’가 어디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 ‘행기머체’는 입구 건너편 도로 건너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돌무더기이다. 돌무더기에 울창하게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행기머체’는 땅속 용암이 외부의 퇴적물로 인해 밖으로 분출하지 못하고 굳어 있던 것이 세월이 지나 퇴적물이 깎이면서 밖으로 들어난 ‘크립토 돔’이다. 우리말로는 ‘지하 용암돔’이라 하는데 규모가 커서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행기(녹그릇에 담긴 물) 머체(돌무더기) 제주어는 되 내이면 되 내일 수록 멋스럽다.

  표식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따라비오름’과 ‘꽃머체’두 갈래 길로 나누는데 ‘꽃머체’길로 들어서면 숲이 주는 포근함이 느껴진다. 더운 날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는 시원함에 마음이 차분해 지는데 바로 곶자왈의 마법이다. 길 안쪽 아래로 ‘가시천’이 숲의 기온을 유지해주고 있으며 옛날에는 우마들의 급수장으로 지금은 야생 동물들의 생명수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숲이 끝날 때까지 가시천을 끼고 돌다보면 오랜 세월이 만든 돌 위에 빼곡한 이끼가 ‘가시8경’ 중 하나의 비경이 된 이유를 알게 된다.

  4월부터 이 길은 ‘꽃길만 걷게 해줄께’라는 여인의 달콤한 귓속말이 없어도 내 발아래 꽃길이 펼쳐진다. ‘종낭(제주어)’이라고 하는 때죽나무의 하얀 꽃들이 까치발을 하고 걸어야 될 만큼 소복이 내려앉은 길은 밤나무꽃, 말오줌때꽃, 붉나무꽃등으로 계절에 따라 꽃길을 만들어준다.

  6월의 무더위가 시작되는 요즘은 향긋한 꽃내음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마삭줄 꽃’이 자기가 피었다고 멀리 알리려는 듯 바람개비 꽃이 곱게 피어있다. ‘마삭줄’ 열매는 꽃과는 전혀 다르게 가는 롱 다리처럼 길게 두 개로 갈라진 꼬투리모양이 벌어지면서 솜털 같은 씨앗이 멀리 날려 보낸다. 야생 블루베리라는 별명이 있는 ‘정금나무’가 눈높이에서 앙증맞은 꽃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도 익어간다. 아직은 설익은 ‘청미래 덩굴’의 초록 열매가 탐스러워 따서 먹어보면 상큼한 풋사과처럼 입안이 즐겁다. 열매가 쥐똥을 닮았다고 지어진 ‘쥐똥나무’이름에 아들이 “왜 쥐똥냄새나요?‘하던 질문에 답하듯 하얀 꽃에서는 숲 속을 향긋한 향기로 가득 채운다.

  ‘구실잣밤’나무 기다란 꽃차례가 떨어져 땅의 영양분으로 쌓이고 있다. 봄이면 특이한 향기를 발산하는 ‘구실잣밤나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하는 나무 중의 하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가을에 떨어지는 ‘잣밤’열매는 예전에는 곡식대신 ‘구황식물’로 쓰일 만큼 우리에게는 고마운 나무이다. 요즘 숲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뻐꾸기 울음소리다. 뻐꾸기는 다른 새 둥지에 탁란을 하고 새끼가 부화해서 날아올 때까지 둥지 근처에서 쉴 새 없이 울어댄다고 한다.

  숲에서는 나무와 인사하고 재잘거리는 새소리가 다 다르다는 걸 느끼려면 놀멍, 쉬멍 천천히 걸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길게 걷지 않아도 땀이 나지 않아도 마음이 건강해지는 ‘꽃머체 가시리 숲길’은 참 좋다 

나무사이로 내리는 빛이 숲 밖으로 여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지만 숲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더위가 무섭지 않다.

 

 

△ 가시천



             △ 때죽나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