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삶의 흔적 고스란히 남아
서홍동 추억의 숲길 |
유난히 더운 8월이다. 숨이 막히게 더운 하루하루가 에어컨 바람만 찾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자고 일어나도 띵한 두통이 더욱 짜증나게 하는 일상이 된다. 그래도 제주도는 멀리 나서지 않아도 인공 바람에서 벗어나 자연바람에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숲이 많다. 곶자왈이나 한라산 둘레길 중산간 오름 둘레길 등 햇빛을 가려주는 숲에서 기분 좋은 땀을 흘리며 숲을 즐길 수 있다. 그 중에도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추억의 숲길’은 걷는 즐거움과 편안하게 숲의 향기에 취해 힐링 할 수 있으며 가장 큰 매력은 옛 추억의 타임머신을 경험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나무가 우거진 숲 입구에 서면 벌써 마음이 설렌다. 이른 시간부터 정수리를 달구는 햇볕이 나를 숲으로 밀어 넣고 있다. 몇 발자국 들어서면 숲은 딴 세상이다. 정수리의 뜨거운 태양은 교목 나뭇잎에 자외선을 빼앗긴 건강한 빛으로 숲 속 사이사이 비추고 있다. 숲에 바람이 없으면 걷는 동안엔 땀으로 온몸이 젖지만 어느새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느낌에 돌아보면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이지만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땀을 식혀준다. 제주도의 지질적 특성으로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대부분 건천을 이루고 있지만 돌 사이사이 바위 사이사이 숨골을 만들어 땅속 차가운 기운을 숲에 불어 넣어준다. 계곡에는 오랜 세월 빛을 등지고 초록 이끼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너럭바위에 넉넉함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 길은 단순한 숲 트레킹 길보다 지역 역사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고 싶었던 서홍동 주민들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탐방로 중간 중간 옛집터, 몰방아(말방아),통시(화장실), 사농바치(사냥꾼)터, 등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옛날에 이런 곳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옛 추억을 회상하며 아련한 추억에 가슴이 젖어 올 것이며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관광객들은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존을 위해 사방으로 경계선을 만들어 놓지 않아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경험 할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더위에 지쳐 흘린 땀이 아니라 몸속의 노폐물을 빠지는 기분 좋은 땀으로 흥건해지면 늘씬하게 뻗은 편백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다. 나무아래 평상에서 누워 바라보는 하늘은 모든 시름을 가져가 준다. 중년의 남자 분들이 간단한 간식거리를 나눠드시며 너털웃음으로 즐기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여서 좋다.
이곳은 여러 길로 갈라져 있어 시간과 체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그중에 호근동 숲길이 이어져 있어 그 곳으로 걷다보면 삼나무 숲길을 만날 수 있고 초기(표고버섯 제주어)밭의 운반을 위해 만들어 놓았을 견고하게 다져놓은 오르막 돌길이 신기해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초록의 싱그러움 틈으로 전해지는 꽃향기가 그윽하다. 한 여름 다른 꽃들보다 꽃향기에 자신이 없어서 일까? 아무도 꽃 피우지 않는 무더운 날에 고운 꽃을 피우지만 독특한 향을 퍼트리는 누리장나무가 꽃 터널을 만들었다. 가을에는 보석알처럼 고운 빛의 열매를 맺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싫어한다. 고약한 냄새에 제주도에는 ‘개낭’이라고 부르며 멀리했다.
8월은 야생버섯들이 자라기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습도가 높아서 버섯들이 여기저기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여름 숲의 볼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나무에 탐스럽게 자라는 버섯이 신기해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옆에서 등에 흰 줄무늬를 한 곤충들이 짝짓기가 한창이다. 남의 신혼 방을 훔쳐 본 듯 미안하지만 한 공간에서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숲의 생명들이 있어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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