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폴란드 역사가 시작, 문화 · 예술 · 종교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8. 5. 31. 10:41

폴란드 역사가 시작, 문화 · 예술 · 종교의 도시

    

 

 우리에게 아주 낯선 도시 포즈난은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늘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968년에 지어진 폴란드 최초의 대성당과 폴란드에서 최고로 많은 미술품을 간직한 국립 미술관 그리고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폴란드가 낳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고향이자 교황 바오로 2세가 대주교로 있었던 포즈난은, 문화와 예술 그리고 종교의 도시이다. 9세기 말 작은 요새에서 시작한 포즈난은 바르타 강과 치비나 강이 만나는 V자형 지점에서 처음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역사적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말해 968년 미에스코 1세 때 폴란드 왕국은, 두 개 강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섬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중심의 도시가 바로 포즈난이다. 그 후 이곳은 체코가 침략하자, 수도를 크라쿠프로 옮기기 전까지 70여 년 동안 왕국의 수도였고, 예부터 바르샤바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동서 교역의 중계상업도시로 성장했다. 13세기 들어 포즈난이 상업도시로 급성장하면서 도시의 인구가 팽창하자 지금의 구시청사와 중앙 광장이 있는 구시가지로 도시가 크게 확장되었다. 그래서 포즈난의 상징인 대성당은 바르타 강과 치비나 강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고, 도시의 업무를 맡던 시청사를 비롯한 여러 개의 행정기구는 도시가 확장되면서 강 건너편에 세워졌다.

 독일과 폴란드 양국 간 면세 특혜를 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 포즈난은 15~16세기에 들어 경제ㆍ문화적 성장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화재와 전쟁을 겪으면서 도시는 점차 쇠퇴했다. 지금은 폴란드에서 가장 커다란 국제 산업 견본시장이 매년 6월에 개최될 정도로 경제적인 안정을 되찾았고, 독일에 인접해 있어 여느 폴란드의 도시와는 달리 밝고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매년 열리는 국제 박람회와 많은 대학으로 인해 구시가지의 중심 거리인 폴비에스카 거리에는 외국의 비즈니스맨들과 젊은이들이 가득하고, 세계 유명 브랜드의 상가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중앙역에서 볼거리가 모여 있는 구시가지 광장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크라쿠프의 중앙 광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시가지 광장은 아담하면서도 심보르스카의 시처럼 잘 정돈되어 있어 아름답다. 언어적 유희를 빌리자면 구시가지 광장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아름다움은 몇 배의 큰 감동으로 메아리쳐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

 가로, 세로 140m의 중앙 광장은 크라쿠프 다음으로 폴란드에서 두 번째로 크다. 13세기에 만들어진 광장에는 중세시대 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 있고,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 싱싱한 채소와 치즈, 고기와 과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농축산물 시장이 열린다. 그래서 과거에는 구시가지 광장을 `중앙시장 광장`이라 불렀고, 우리의 도깨비 시장처럼 일과가 시작되는 9시가 되면 오늘도 어제처럼 시민의 휴식처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광장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은 전쟁으로 파괴된 후에 새롭게 개축된 건물들이지만, 철저한 고증을 통해 바로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 고딕 양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중세의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네모난 광장 모서리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분수대가 있는데, 이곳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젊은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다. 광장 중심에는 중세시대 때부터 1945년까지 도시의 행정을 도맡아 해오던 구시청사가 요염한 자태로 서 있다.

 구시청사는 1550년 이탈리아 루가노 출신의 지오바니 바티스타 디 콰드로에 의해 4층 규모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그 후 전쟁과 화재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높이 61m의 첨탑이 있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증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1ㆍ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포즈난은 과거의 영화로움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건축물 또한, 중세 그대로 보존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세기 초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쇼팽도 포즈난을 방문해 중세의 아름다움을 즐겼다고 한다. 쇼팽은 포즈난의 왕족 출신인 고르카의 초청으로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그만의 환상적인 피아노 선율로 시민들을 감동시켰다. 그 후 시민들은 쇼팽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구시가지 광장 아래에 ‘쇼팽 공원`을 만들었다. 위대한 예술가가 이 도시를 좋아했다고 하니 더욱 포즈난이 새롭게 보인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곧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낳는다. 중계무역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19세기에 쇼팽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던 많은 예술가들이 포즈난에 초청되어 서유럽의 선진 예술을 전파했다. 지금은 과거에 화려했던 영화로움은 사라졌지만, 이 도시를 영원히 지켜줄 대성당과 바르타 강이 있는 한 결코 포즈난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또한 쇼팽의 음악과 심보르스카의 시가 포즈난을 감싸고 있는 동안 이 도시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비록 수도가 크라쿠프와 바르샤바로 옮겨가기는 했어도 포즈난은 폴란드 최초의 수도로써 시민들의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그들과 삶의 궤적을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