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음악선율이 울려 퍼지는 류블랴나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류블랴나의 시가지 전경.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아 도시의 건축물이 차분한 오스트리아 풍이다. 도시의 외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류블랴나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작은 프라하’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 도시는 다른 유럽의 도시에 비해 인구는 적지만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거리에 넘쳐나는 노천카페, 수많은 갤러리, 가로수, 도시를 은은하게 비추는 네온사인 등 이곳에 발을 디디면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인구 3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류블랴나는 중세시대 이후부터 이 지역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으며,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슬라브족 중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또한 이곳은 구(舊)유고슬라비아 연방시절 최초로 자유선거를 실시해 공산 통치에서 벗어난 자유의 도시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류블랴나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들은 일리리안과 켈트족들이었으며, 3세기 이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곳은 ‘에모나(Emona)’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5세기에 훈족에 의해 로마가 물러가고 중세로 이어지면서 류블랴나는 1144년에 ‘라이바라’로 불렸으나, 2년 후 다시 ‘루이가나’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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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나 시가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프레쉐른 광장. | 류블랴나 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는 트리플 다리의 오후 풍경. | 오스트리아 풍의 건축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구시가지. |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도시의 이름이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14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으면서 점차 유럽에 알려졌다. 나폴레옹 시대 때 이곳은 일리리안 지역의 수도 역할을 담당했으며, 동유럽 교통의 요지로 발전해 왔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생활에는 과거와 현재의 문화와 역사를 말해주는 건축,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예술들이 녹아 있다. 수도라는 규모에 비해 인구는 적지만 이들은 유럽의 문화를 통합해 상당한 수준의 예술과 문화를 누리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 도시에 가면 류블랴나를 대표하는 건축가 플레츠닉과 낭만파 시인 프란체 프레쉐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류블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수준 높은 예술에 놀라게 된다. 그중에서도 류블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스트리아의 빈 필하모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명성이 높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등 18~19세기의 수많은 음악가들이 류블랴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갖거나 상임 지휘자로 초빙되어 멋진 음악을 동유럽에 울려 퍼지게 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말러Mahler Gustav(1860.7.7~1911.5.18)는 류블랴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슬로베니아의 음악을 발전시키는 데 막대한 공을 세웠다. 말러는 부다페스트 왕립오페라 극장의 지휘자, 함부르크 시립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를 거치는 동안, 작곡가로서의 명성도 얻었다. 또한 빈 궁정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류블랴나 필하모닉을 유럽에서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다. 류블랴나에서는 거리의 악사나 오페라 극장에서 좋은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여행자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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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나 성에서 내려다 본 예쁜 카페. | 달콤한 카푸치노 한 잔은 여행의 여유를 잠시 느끼게 한다. | 한 편의 영화같은 그림이 그려지는 류블랴나의 오전 풍경. |
류블랴니카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구시가지 중심지와 300m 언덕 위에 류블랴나 성이 자리한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중간에 위치한 류블랴나는 유럽의 복잡함과 높은 물가를 피하려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도시이다. 무엇보다 이 도시는 에모나 시대에 남겨진 로마유적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나폴레옹 시대를 거친 다양한 서유럽의 문화와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잘 보존되어 있다. 기차역을 등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류블랴니카 강으로 발길을 옮기면 류블랴나가 숨겨 놓은 중세의 향기에 취하게 된다. 14세기 이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도시에는 희미한 색조의 교회와 저택들이 많이 지어졌다. 지금은 온통 붉은 빛으로 건물 지붕을 치장했지만 과거에는 옅은 구름 빛의 건축물들이 도시를 가득 메워 ‘화이트 류블랴나’로 불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 온 류블랴나는 슬라브적 분위기와 정체성이 도시에 흐르고 있다.
◀ 중세의 고풍스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구시가지.
도시의 중심이라 불리는 프레쉐른 광장에 들어서면 슬로베니아의 민족 시인으로 존경받는 프란체 프레쉐른의 동상이 낯선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수도의 광장치고는 매우 작은 규모지만 류블랴나 시민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이자 이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보통 광장에는 정치가나 성직자 등의 동상이 많지만 프레쉐른 광장은 슬로베니아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의 동상을 세워 슬라브족의 긍지를 내세우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이 광장은 카페, 호텔, 미술관, 박물관 등이 모여 있어 편안한 휴식처가 된다. 특히 축제가 열리는 여름에는 음악회, 퍼포먼스,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져 광장 주위는 풍요로운 동유럽 문화의 정수가 흐른다.
광장은 언제나 그렇듯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시민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광장 주변에는 바로크 건축물과 다양한 고대 건축물들 사이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들이 도시를 메우고 있다. 얼핏 봐서는 어떤 건물이 어떤 양식으로 지어졌는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이 도시 출신의 건축가 플레츠닉에 의해 지어진 것들이다. 슬로베니아의 ‘가우디’라 불리는 플레츠닉의 명성은 체코의 프라하 성을 개축하면서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이처럼 이 도시에서 그의 건축물을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여행이 안 될 만큼 류블랴나가 자랑하는 최고의 예술가이다. 1980년대 그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건축 양식은 유럽 및 전 세계로부터 재조명을 받게 되었고, 1986년에는 프랑스 파리 폼피두 센터에서 대대적인 그의 기념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명장으로 추앙받게 했다. 강을 따라 산책하며 그의 혼과 열정이 담긴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것이 훌륭하고 어떤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그의 건축에서는 중세의 건축 양식과는 사뭇 다른 모던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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