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세상만사- 야누스의 누명 Ⅱ-
미래 계획시 ‘다양한 관점에서 가능성 통찰’ 교훈
현대에서는 ‘위선자’ 또는 ‘이중인격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되는 야누스(Janus). 야누스가 그리스신화에는 기원도 없고 대응되는 신도 없으며, 오로지 로마신화에만 등장하고 로마건국 신화와 관련된 신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os)에 따르면, 로마 사람들이 야누스 신이 두 얼굴을 가졌다고 믿은 상반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그리스 테살리아(Thessaly)에서 추방당한 야누스가 이탈리아 라티움으로 건너와 정착해 자신의 언어와 삶의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반대로 그가 야만적이고 무법상태로 살아가던 라티움 사람들을 설득해 문명생활을 하도록 바꾸었기 때문에 두 얼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는 설이 있다.
신화학자들에 따르면 야누스는 카메수스왕과 함께 태동기 로마를 다스렸다고도 하고, 또는 그리스로부터 추방당한 야누스를 카메수스왕이 알아보고 자기 왕국의 일부를 나눠주었다고도 전해진다. 야누스는 카메수스가 죽은 뒤 홀로 고대 로마의 중심지 라티움을 통치했는데, 로마의 서쪽 언덕에 도시를 세우고 야니쿨룸(Janiculum, 자니콜로)이라 명명했다. 이렇게 야누스가 통치하던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하고, 그 시대는 사람들이 매우 정직하고 풍요로움과 참된 평화가 있었던 시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야누스는 로마인들을 어떻게 이끌었을까. 우선 야누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교역을 위해 배의 사용법을 고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초로 화폐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로마의 오래된 청동화폐 유물을 보면 앞면에는 야누스의 초상이, 뒷면에는 뱃머리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라티움의 첫 주민이라 할 수 있는 아보리게네스 족을 개화시킨 것도 야누스였다. 그들은 땅을 경작하는 법을 알지 못해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었고 법도 없던 상태였는데, 야누스라는 지도자를 만나 다양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세네카(Seneca)가 그의 시(詩)에서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야누스는 광장토론에 익숙한 숙련된 연설가였다고 한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로마인들의 여론을 도출해냈고, 도시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광장토론에 익숙할 수 있었던 것은 앞쪽과 뒤쪽을 동시에 보는 능력, 다시 말해 문제를 모든 양상에서 관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누스는 원래는 신이 아니었지만 죽은 후 신으로 추앙되었는데, 그래서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전설이 사비니인들의 정복으로부터 로마를 구해낸 이야기다. 로마의 초대왕으로 불리는 로물루스가 고대 이탈리아부족인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하자 사비니인들은 로마를 공격하게 된다. 어느 날 밤 매수된 로마 방위대장의 딸이 사비니인들에게 성문을 열어주게 되고, 성안으로 들어온 사비니인들이 카피톨리움 언덕으로 올라가 로마군들을 포위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야누스가 나타나 적들앞에 뜨거운 샘물이 솟아나게 하였고, 놀란 사비니인들은 달아나고 만다.
로마인들은 이 기적을 기리기 위해 전쟁이 나면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도록 로마 광장에 있던 야누스 신전의 문을 항상 열어두었다고 한다. 신전의 문은 역사상 딱 두 번 닫혔는데 그것은 로마제국에 평화가 넘쳤던 누마 폼필리우스와 아우구수투스 황제 시절이었다고 한다.
제국을 건설하고 이끌었던 로마인들이게 야누스가 추앙받는 이유는 바로 배를 사용함으로써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전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화폐와 토지경작을 창안하여 로마에 문명을 통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야누스와 관련해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인 동시에, 로마의 역사를 열었듯 모든 일의 시작을 관장하는 신이다.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첫 달을 의미하는 영어, ‘재뉴어리(January)’도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할 때, 예상되는 문제를 모든 서로 다른 방향과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야누스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우리는,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가 바라고 희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거라는 낙관적 예상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예상치 않은 어려움이나 난관에 봉착할 수 있는 법이다. 이때를 대비해 야누스와 같이 여러 측면과 관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통찰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입체적인 준비와 계획을 통해 어려움을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을뿐더러,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으로 채워진 이번 겨울은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매우 힘들고 창피한 시간이었다.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일국의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비정상적인 비선실세들의 일련의 행태들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치’를 겪어내고 있다. 우리 스스로 민주화의 시스템이 상당히 갖춰졌다고 자만하던 사이, 이번과 같은 수치스런 일들이 가능했던 원인을 반성하고 바로 잡는 것은 물론, 입체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물론 현대에서 ‘위선자’란 이미지로 대접받을 때마다 야누스는 매우 억울할 터이니, 앞으로는 그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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