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세상만사- 최순실과 피톤 Ⅰ -
국정농단 사태가 무너뜨린 것은 ‘젊은이들의 꿈’
#1. 어느 선배이야기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 60만 학생들이 이날 대입 수학능력시험, 소위 <수능>을 치른다. 올해 수능이 치러진 17일 저녁, SBS 앵커를 거친 김성준 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 잔잔한 공감을 불러온다.
“해마다 수능 시험 치른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 한마디를 뉴스나 페북을 통해서 해주곤 했는데, 올해는 해줄 말이 없다.
함께 손잡고 가는 사회를 얘기할 자신도 없고,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거라고 약속하거나,
이제 입시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찾아보라고 권할 자신도 없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아예 생각도 못하겠다.
당신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뭘 했다고 우리한테 충고질이냐고 비난할까봐 겁부터 난다. <입시보다 나라가 더 걱정>이라며 수능 끝나자마자 광화문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말릴 자격이 내게는 없다”
#2. 어느 후배 이야기
한편 한 고려대학교 학생은 학내 게시판인 ‘대나무 숲’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시작된 가난을 소개하며 운을 뗐다. 글쓴이의 아버지가 실수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가족은 가난의 굴레에 빠져들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는 50대 초반에 한의원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했는데, 새벽같이 출근해 밤이 저물면 집에 돌아왔다. 일자리를 구했다며 어색하게 웃던 어머니는 일을 시작한 후 그 어색한 웃음마저 잃었단다.
동생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공부한다고 돈 잘 버는 것도 아니잖아”란 동생의 외침이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차마 동생에게 “아니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살하고 싶었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지만, 언젠가 느낄 행복을 꿈꾸며 글쓴이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취업만 하면 나아질 것이다’ ‘가족들에게 삼겹살 한번 배터지게 대접하자’란 소박한 꿈을 꾸며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천원짜리 삼각김밥 하나를 배 속에서 불려 하루를 버틸 때도 ‘언젠가…’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그는 더 이상 희망마저 품기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오늘 모든게 와르르 무너졌다. 사실은 그 전부터 그랬다. 돈도 실력이라는 여자가 태연하게 파티를 열고 비싼 음식을 처먹던 순간에도 나는 삼각김밥 하나를 물 두병과 곁들어 배를 불렸다”고 했다.
또 “누군가가 그 여자(정유라)를 아직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라고 감싸 안아주던 순간 나는 한번 먹고 살아만 보겠다고 미친듯이 허벅지에 피멍을 내가며 밤새 공부하고 있었다”라고 했다.
“모든 희망은 소멸된다. 타오르는 촛불보다 못한 인생이고 희망이었다” 며 “삼각김밥을 다 먹고 나서야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함께 내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글을 마쳤다.
#3. 서글픈 우리 이야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무너뜨린 것은 법치주의 원칙만이 아니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아진다는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도 와르르 무너졌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한 한 민간인 여성 최순실과 그 일당의 전횡과 불법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은 경악하고 있다. 그녀의 딸, 정유라 씨의 고등학교 수업 이행, 대학 입학, 그리고 재학 과정에서 용납할 수 없는 불법과 특혜가 자행되었다.
정유라의 불법 이화여대 합격을 위해 최종면접에서 억울하게 조작된 낙제점을 받아야 했던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채 고배를 마셔야 했다. 반면 정유라는 출석하지 않아도, 시험 치지 않아도 필요한 학점을 받았다. 청담고와 이대의 입학처장과 교수들, 총장 등은 최순실의 기형적인 권력, 불의와 불법에 그런 식으로 굴종하고 있었다.
또 정유라의 사촌이자 최순득의 딸 장시호 씨 역시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의 과목에서 성적이 ‘가’(수우미양가 中 가)였고, 석차도 262명 중 260등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연세대학교에 승마 종목의 체육특기생으로 합격했을 뿐 아니라 성적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지금 든 예들은 최순실과 관련된 단편적 부분일 뿐이며, 이들이 저지른 국정농단의 난맥상은 문화, 체육, 경제, 외교, 국방 등 그 끝을 짐작하기 힘든 듯 하다.
공포스런 위압과 분위기로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온 최순실과 그 일당들을 보면 그리스신화 속 거대한 왕뱀, 피톤(Python)의 무시무시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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