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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들어낸 조각상과 깊은 사랑에 빠져

제주한라병원 2016. 10. 27. 09:07

역사 속 세상만사- 피그말리온 Ⅱ-
자신이 만들어낸 조각상과 깊은 사랑에 빠져


여인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소심한 성격이라서, 이상적인 여인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남자들이 오늘날에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상상을 통해 창조한 이상의 여인과 실제로 행복을 누리는 커다란 행운을 얻는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의 모든 여인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키프로스의 수호신인 사랑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는 자신에게 존경심을 표하지 않는 이 섬의 여인들에게 벌을 내려, 이들 모두가 수치심을 잃고 공공연히 매춘을 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우아함을 잃고 너무 뻣뻣하게 되어 그들 중 일부는 돌이 되기도 했다.


자신과 사랑을 함께 나눌 아름다운 여인을 열렬히 갈망하던 낭만적인 총각 피그말리온은 이상형의 여인을 가장 고귀한 재료인 상아로 직접 조각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빼어나게 아름다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때부터 이 작품을 창조한 피그말리온은 낮이나 밤이나 이 아름다운 조각상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심지어 입까지 맞추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조각상과 깊은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급기야 그는 그녀를 세게 만지면 그녀의 몸에 멍이 들지 모른다는 망상까지 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한 금은보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는 잠자리에 들 때도 이 조각상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조각상이 실제로 숨을 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갈망만 더욱 커져갔다. 비너스 여신의 축일(祝日)에 그는 매우 값진 제물을 바친 뒤 여신의 제단 앞 계단에서 무릅 꿇고 그가 사랑하는 이 조각상과 똑같은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 날, 피그말리온이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상아로 된 애인에게 키스하자 이 조각상은 키스에 응답하며 그를 양팔로 감싸 안았다. 그녀의 이름은 갈라테아였고, 몸은 따스했으며 살결은 부드러웠다. 비너스 여신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던 것이다. 또한 여신은 이들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었다. 훗날 이들의 자녀들은 키프로스에서 오랫동안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 얘기의 더 오래된 버전에서는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상이 아닌 비너스 여신이 그날 밤 이 왕의 침실로 찾아오는 것으로 되어있다. 피그말리온 왕과 여신은 매우 특별한 관계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피그말리온이 여신의 여사제와 ‘신성한 결혼식’을 올리는 걸로도 잘 알 수 있다.


<변신이야기>에서 오비디우스는 각각의 이야기가 앞선 이야기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서술방식으로 신화 속 이야기들을 교묘하게 서로 연결시킨다. 피그말리온 이야기 앞에서는 비너스가 자신에게 경외심을 보이지 않는 키프로스 인들을 벌주는 이야기가 있고, 그 뒤에는 피그말리온의 후손 미라의 이야기가 나오며, 이 얘기에서 미라는 아도니스의 어머니가 되고, 다음 얘기는 아도니스 신화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오비디우스의 작품에서 비너스는 이처럼 에로틱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오비디우스는 이 연작 신화집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대한 찬양으로 활용했는데,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가문은 비너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었다. 


근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이 신화로 여자들을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도록 자극받았다. 당시 많은 그림 속 여인들은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걸어나와 그녀의 창조주인 예술가의 목을 끌어안을 것처럼 보인다. 또 여러 문학작가들도 이 테마로 작품을 썼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은 1816년에 소설 <잔트만>을 발표했는데, 올림피아라는 여인을 열렬히 사랑하는 정열적인 젊은이를 그린 이 작품에서 올림피아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였다. 그리고 자크 오펜바흐는 이 소설을 <호프만 이야기>라는 오페라로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했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는 이러한 소재의 고전으로 남았고,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W” 라는 드라마도 웹툰 속에 그려진 그림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소재를 활용해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루어질 피그말리온 식(式) 사랑이야기. 과연 일그러진 사랑인가 위대한 사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