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톤의 고풍스런 건축물이 중세분위기 연출
뉴질랜드 크리스트처치
▲ 바람도 구름도 잠시 쉬었다가 가는 크리스트처치의 외곽지역.
2016년 8월은 20여 년 만에 찾아온 열대야와 폭염 때문에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지칠 때로 지쳤다. 연일 35도가 넘는 낮 기온에 파리 한 마리 움쩍하지 않을 만큼 더운 여름날, 남반구 뉴질랜드는 시원한 겨울이라 여행자들에게 삶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크게 북섬과 남섬으로 나눠져 있고 한반도 크기에 3배에 이르는 광활한 땅에 인구 4백만 명밖에 살지 않는 지상의 낙원으로 유명하다. 사람 수보다 양의 수가 훨씬 많은 뉴질랜드는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남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트처치는 자연이라는 도화지에 문명이라는 그림을 그려 넣어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뉴질랜드 사우스 아일랜드의 경제, 문화 중심지인 크리스트처치는 뱅크스 반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천연 항구, 리틀톤(Littleton)에 최초의 이주민이 거주하기 시작한 이래 발전한 크리스트처치는 해발 400m에 자리하고 있다. 여름에는 북서쪽에서 불쾌할 정도로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며칠 단위로 불어온다. 하지만, 넓은 공원과 수많은 스포츠 경기장, 그리고 손질이 잘 된 정원들(도시안의 녹지를 모두 합하면 30평방킬로미터가 넘는다) 덕분에 크리스트처치는 ‘정원의 도시’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중후한 건축양식과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가장 ‘영국적인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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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름다움을 보여준 대성당. | 에이븐 강가에서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너벅선과 사공. |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전차. |
‘정원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도시 곳곳에는 수많은 공원들이 많다. 영국산 아름드리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들이 숲과 공원을 이뤄 도시는 전체의 40%가 정원이다. 이처럼 크리스트처치는 천혜의 자연과 사람의 열정으로 만든 남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하였다.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인구가 서울시의 한 개 구(區)보다 작기 때문에 번화가도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다. 이곳은 크리스트처치에서 가장 중심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도시를 감싼다. 수많은 공원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크리스트처치에서 현지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해글리 공원이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삼삼오호 소풍을 나와 즐거운 시간을 갖고, 평일에도 사람들이 공원 잔디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날에는 일광욕을 즐기기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삶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도시의 풍경. | 고단한 삶을 치유해주는 사색의 정원. |
로맨틱한 분위기가 너무 탐났는지 지난 2011년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의 일부분이 파괴되었다. 그중에서도 크리스트처치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영혼의 안식처인 대성당이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진으로 인해 잃었다. 높이 65m의 첨탑을 자랑하던 대성당은 유서 깊은 건물로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 조지 길버트 스콧이 설계한 작품이었다. 1864년에 기초를 닦았으나 자금난으로 인해 그보다 일 년 후에나 건축공사가 시작되었고 그나마도 중단되었다가 1873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공사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세 번의 지진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버틴 대성당은 네 번째 지진에는 견디지 못하고 첨탑이 사정없이 무너졌다.
◀ 컬러풀한 색감이 아름다운 크리스트처치 길거리의 풍경.
지진으로 파괴된 대성당을 두고 시에서는 다시 재건축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을 끝에 재건축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2010년 이전에 여행했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대성당 앞에서 사진도 찍고 내부를 관람하면서 뉴질랜드에서 보기 드문 성당의 신성함과 경건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성당이 빛바랜 추억의 사진 속으로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비록 대성당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대성당 앞에 펼쳐진 널찍한 광장은 지진에도 살아남았다. 이곳은 도시생활의 중심지이자 오랜 세월동안 시민들의 긍지가 되어주었던 의미 있는 장소이다. 1935년 크리스트처치를 방문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네오클래식 양식의 로마 가톨릭 성당을 칭찬하면서도 이곳의 영국국교회 성당을 ‘너무 학구적’이라고 비난한데 대해 주민들이 분개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대성당의 흔적을 뒤로하고 에이번 강가로 조금씩 다가서면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여유롭게 흘러가는 에이번 강에서 삿대로 노를 젓는 너벅선을 타면 크리스트처치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너벅선은 관광안내소나 캠브리지 테라스에 있는 안티구아 보트세즈(Antigua Boatsheds)에서 빌릴 수 있다. 아마 이런 풍경은 영국의 캠브리지와 비슷하다. 캠브리지에서 캠 강을 따라 유유자적하게 보트를 타고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여기가 영국인지 뉴질랜드인지 잠시 혼돈이 생겼을 것이다. 수양버들이 강을 향해 축 늘어진 풍경이 마네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에이번 강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면 덜컹거리는 빨간색의 전차를 타고 크리스트처치 골목길을 달리면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캠 강의 배처럼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전차는 유럽의 전차처럼 로맨틱한 분위기가 넘친다. 행선지에 상관없이 한 번 전차를 타고 도시 곳곳을 누비다보면 이 도시의 고풍스런 모습에 반하게 될 것이다. 마음씨 푸근한 이곳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중세의 기품을 가진 건축물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전차의 차창을 통해 쉴 새 없이 들어온다. 푸른색의 건물 아래로 빨간 우체통과 푸른 쓰레기통 그리고 새빨간 버스가 색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크리스트처치는 색감도 강하고 예쁜 도시의 풍경이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길을 걷다가 잠시 쉬고 싶으면 멋진 노천카페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으로 여행의 피로를 달랠 수 있는 곳이 바로 크리스트처치이다. 도시이지만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아 번잡스럽지 않아 카페에서 한가로이 사색을 즐기거나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 좋다. 여행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잠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시를 읽으면서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높은 빌딩대신에 고풍스런 분위기와 파스텔 톤의 건축물이 크리스트처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온 것 같은 도시의 이미지는 영국과 사뭇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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