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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종료코너/안대찬세상만사

과연 계모는 惡이고 친어머니는 善일까?

제주한라병원 2016. 6. 27. 09:07

역사 속 세상만사- 메데이아 Ⅰ-
과연 계모는 惡이고 친어머니는 善일까?


지난 봄 우리나라는 어린이들에 대한 학대 또는 살해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작년 12월 인천에서 일어난 11세 여아 학대 사건을 계기로 장기결석아동 전수조사가 실시되었고, 평택 아동 암매장 살인사건(소위 신원영 군 사건)은 여기서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7살 아들을 학대하다가 길에 버렸다고 하는 엄마(계모 김씨)가 적발되었고, 엄마는 사건 조사 초기에는 “부부싸움을 한 뒤 아들을 길에다 버렸다” 라고 진술했다. 그렇지만 아이의 행방은 파악되지 않았고, 경찰은 아이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이는 늘 학대받아왔으며 1년 전부터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또 몸은 늘 멍투성이였고 항상 굶주려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4살 터울의 누나는 집에서 곰팡이가 핀 파란 밥을 먹었다고도 진술했다.


지속적인 조사 끝에 경찰은 이들 부부가 지방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 기록과 무언가를 차에 싣는 CCTV 영상, 그리고 친부의 아버지 묘소에서 버려진 삽을 발견하여 이를 추궁했고, 그제서야 부부는 살해 사실을 자백하기에 이른다. 2월 1일 신 군을 욕실에 가뒀고, 3월 2일 신 군이 사망했지만 일주일 넘게 시신을 방치하다가 10일 친부의 부친묘 근처에 암매장했다고 한다.


그사이 친부인 신씨는 회사에 아들을 찾으러 간다며 휴가도 냈고, 아들을 찾으러 다니는 것처럼 계모와 문자를 주고받는 등 수사를 피하려 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게다가 이미 암매장한 이후에도 블랙박스에 부인과 고의적으로 “원영이 잘 있겠지? 오줌 안 싸는지 모르겠다. 이사 가면 데리고 잘 살자” 라는 둥의 대화를 나눠 녹음하기도 하고 또, “부부싸움 뒤 술을 마시고 평택의 잘 알지 못하는 길에 원영이를 버리고 집에 돌아왔다”는 거짓 진술을 하기도 했다니 참으로 인면수심의 무서운 부모들이 아닐 수 없다.


3년 전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과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등도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보니 사회적으로 ‘계모’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는 것 같아 한편으로 우려도 생긴다.


‘계모=악녀(惡女)’라는 선입견은 뿌리가 깊다. 어린 시절 악독한 계모가 등장하는 ‘콩쥐팥쥐’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의 구전(口傳)설화를 읽으면서 이런 편견은 더 강화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계모’라 불리는 ‘새엄마’들은 숨죽인 채 가슴 졸인다. 재혼 가정의 엄마들은 ‘계모라 아이를 더 괴롭힐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 ‘새엄마라 나를 더 혼내는 거 아닌가’하는 아이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와 매일 힘겹게 싸워나가야 한다. 그런 와중에 의붓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이들도 많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성취엔 계모였던 세라가 지대한 영향을 줬다. 세라는 8세 때 병으로 친모를 잃은 링컨을 친자식처럼 돌보았고, 어려운 가정살림에도 당시에는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던 책을 구해주며 교육에 힘을 쏟았다. 학자들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링컨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세라의 교육이었다고 분석한다.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장례식장에서 가장 슬퍼했던 사람도 81세의 노모(老母) 세라였다.


하지만 ‘계모의 자녀학대 사건’이 등장할 때마다 계모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년 전에 비해 근년의 재혼 건수는 약 두 배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계모’ 숫자도 그에 비례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가정문제 상담소에는 “‘계모는 아이를 구박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힘들어 다시 이혼을 고려 중”이라며 상담하는 사례도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아동학대 가해자의 80% 이상은 친부모(親父母)다. 국회에 보고된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공식 보고된 아동학대 가해자 중 약 80%는 친부모였다. 계모와 계부는 각각 2.1%와 1.6%였다. 결국 친모들의 아동학대는 사회적 관심선상에 오르지 않아 체감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계모=악녀(惡女)’라는 편견은 매우 경계해야 할 것이다. 비율로 보자면 자식에 대한 학대는 친모에 의한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상기하자.


앞에 언급된 몇몇 사건에 등장하는 못된 여인들은 계모라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부족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신화 속에도 자식을 해코지하는 친엄마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메데이아 이야기다. 다음 호부터 본격적으로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