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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색 쑥부쟁이, 순백의 물매화 등 꽃들의 향연 펼쳐져

제주한라병원 2015. 10. 28. 13:45

연보라색 쑥부쟁이, 순백의 물매화 등 꽃들의 향연 펼쳐져
-10월의 오름-


10월... 제주는 온통 넘실넘실 억새의 춤사위에 빠져든다. 시내를 벗어나면 얼마 되지 않아 가을 알리는 회색 억새들이 장관이며 그 넘어 넓은 밭에는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메밀꽃밭이 발길을 멈추게 하는 제주의 가을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산들거리는 억새 물결을 따라가다 발길이 멈추는 곳은 오름 자락이다. 가을바람이 코를 스치면 나도 모르게 오름을 오르고 있다. 제주의 360여개의 오름은 다 자기들만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동, 서, 남, 북 기후와 지형에 따라 생김새 그 곳에서 자라는 식물 등 독특한 특색으로 그 곳을 찾는 이들에게 감동은 준다. 오름의 왕국이라고 하는 송당리에 위치한 오름 중 백가지 약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백약이오름’에는 가을이 되면 반드시 올라가 봐야 한다. 나무 계단 틈 사이사이 앙증맞은 진한 분홍립스틱을 바른 듯 환하게 웃으며 ‘이질풀’이 반갑게 인사한다. ‘이질’ 치료제로 쓰인다는 이질풀은 꽃이 지고나면 촛대모양의 씨방이 더 멋들어진다. 능선이 시작되면서 자기만 바라보라는 듯 한쪽방향으로 꽃이 피는 ‘꽃향유’가 기다린다. 기름을 짜서 썼다고 해서 향유인데, 그 기름향이 향긋하니 느껴지기도 한다. 와!...들국화다! 하고 반가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여기저기 모여서 자라는 연보라색의 ‘쑥부쟁이’역시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꽃의 모양으로는 구별하기 힘들만큼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쑥부쟁이는 가을을 알리며 먼저 피었다가 찬바람이 불어 더 이상 추위에 견디기 힘들 때까지 산과 들 그리고 바닷가까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시인이 가을 오름에 올랐다가 까치발을 들고 걸을 수밖에 없게 했다는 순백의 모습이 신부의 웨딩드레스보다 더 순결하고 아름다운 ‘물매화’를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가가 젖어드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초롱꽃과의 ‘당잔대’는 목젖을 내보이며 오페라를 부르며 오름을 깨우듯 힘이 느껴진다. 발아래서 올망졸망 피어있는 작은 야생화에 정신줄은 놓아 버리듯 올라온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아름답다. 넓은 어머니의 품처럼 두 팔 벌려 감싸 안으며 뻗어있는 한라산을 배경으로 흘러내리듯 이어진 오름 군락들 사이사이 초원과 곶자왈의 조화는 신이 내려준 선물 그 자체이다. 단연코 세상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 있는 멋진 자연은 제주도민들의 가장 큰 제산이라 생각한다. 정상에서 잠시 겨드랑이 땀을 식혀주는 가을 바람의 부드러움에 미소 지으며 다시 능선을 걷다보면 소나무 사이로 낯익은 보라색 작은 꽃들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는 ‘산부추’가 손을 흔든다. 여름내내 뜯어 먹던 우엉밭에서 자주 보이던 하얀 부추꽃이랑 모습이 닮아서 반갑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야생화에 꽃밭을 거닐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오름 전체를 덮고 있는 가을 야생화는 유난히 보라색이 눈에 많이 띄는 건 왜일까? 봄에는 노란꽃이 눈에 많이 띄는 것과 마찬가지일 듯하다. 벌이 노란색 위에 앉아 배설을 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가을에는 보라색을 좋아하는 매개체들이 많아서 자기를 잘 보이게 하려나 보다. 자기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작은 몸짓이 대견스럽다.


제주의 오름은 문화적, 학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많은 제주만의 이야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없이 느끼고 체험하게 한다. 점점 짧아지는 가을때문에 아름다운 가을 야생화들이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매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더 늦기 전에 가까운 오름에 올라 가을 꽃밭을 거닐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