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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종료코너/숲이야기

새봄의 기다림으로 설레는 제주의 곶자왈

제주한라병원 2016. 1. 27. 10:44

숲따라 길따라①-청수 곶자왈

새봄의 기다림으로 설레는 제주의 곶자왈




 


 


제주시 한경면 중산간 청수리 마을... 이름만으로도 청아한 느낌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마을이름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곳에 제주의 허파라고 하는 환상의 숲인 청수곶자왈이 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요즘은 ‘운둔산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타고 있기도 하다. 솔직히 더 많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긴 하지만 언제나 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곳이라 살짝 소개하려한다.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청수리 마을 체험’이란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누구나 ‘와우~’하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구부정한 시멘트길 끝에 초록의 넓은 잔디밭에 놀라고 한쪽에 이곳의 수호신처럼 연못을 감싸고 있는 웅장한 팽나무와 그 아래 연못에 감탄을 하게 된다. 팽나무 세 그루가 감싸고 있는 연못은 방목하는 우·마들이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지만 세월의 흔적으로 나도 모르게 그 곳 벤치에 앉아 살며시 눈을 감게 된다. 그렇게 시작되는 곶자왈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내 발 길을 가장 먼저 맞아 주는 건 소와 말똥이다. 어린 아이들이나 시골 생활의 기억이 없는 어른들은 처음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걷다보면 어느새 친근하게 다가오게 된다.






 

 

 

 

시멘트 길을 살짝 벗어나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난 듯 울창한 숲이 시작되면서 발밑에는 촉촉함이 느껴진다. 아~~이 맛이다! 공기 중에도 맛이 있다면 곶자왈의 공기는 손꼽히는 별미일 것이다. 사방으로 짙은 초록색이 너무 진해서 검게 보일 정도이다. 그 숲을 지탱하고 있는 돌무더기들이 서로 뒤엉켜서 돌은 나무에 의지하고 나무는 돌에 의지하는 원시림이 살아 숨쉬는 곶자왈에 들어서면 나도 원초적으로 돌아가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순간 주위가 어두워져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잘 보이질 않는다. 빛을 막아버리는 나무들이 길 양쪽에 빼곡하다. 그래서 발아래는 자연 융단이 깔린 듯 이끼와 작은 풀로 폭신폭신 발걸음이 가볍다.


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질 때쯤 안내판이 나오는데 대부분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들이다. 그래서 주위에 떨어진 도토리를 찾아보면 도토리들의 뾰족한 부분이 땅으로 박혀있는 걸 보게 된다. 그건 도토리가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난 단순히 깍지에 쌓여있던 부분에서 싹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도토리는 뾰족한 부분이 땅에 더 잘 박혀 뿌리를 내릴 수 있기에 스스로 자연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일 것이다. 자연은 늘 삶의 지혜를 깨우쳐준다.


그렇게 걷다보면 세월의 흔적으로 숲을 닮아가는 초록색의 정자를 만나게 된다. 앞으로 나있는 길을 무작정 걷다보면 다른 마을로 나오게 되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 길 따라 걸으면 올레길 11코스와 만나는데 한수리에서 들어오는 길까지 아주 고즈넉해서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걷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청수곶자왈은 중간에 돌아나갈 수 있는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곳이 초록 정자 쉼터에서 들어간다. 움츠리던 겨울이 지나기도 전에 탐방로를 걷다보면 코끝에 향긋한 향기에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른 봄을 알리는 백서향의 꽃향기다. 냄새가 백리를 간다고 해서 ‘백서향’이라고 한다고 하니 그 향이 얼마나 진하고 멀리 퍼질진 상상에 맡긴다. 올해는 1월 중순을 넘어서기도 전에 백서향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트리며 이상기후를 실감하게 한다.



생각보다 일찍 만나는 봄꽃이 반갑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 한파에 얼어 버리지나 않을지…!! 또한 나무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다음 해에 꽃과 잎을 만들기 위해 늦은 여름부터 가을동안 겨울눈을 만들어 새봄을 기다리는데 그 겨울눈이 조심스럽게 벌어지는 모습역시 이상기후 영향일 것이다. 점점 계절 없이 변화하는 숲이 지금처럼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줄을 이용해 경계선을 만들어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지만 바닥은 울퉁불퉁한 자연 그대로의 길이며 길 중간 중간 때죽나무들이 오랜 세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어서 다른 탐방로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햇빛의 따사로움을 잠시 잊고 있을 쯤 탐방로가 끝나고 다시 시멘트길이 시작된다. 도토리나무로 우거져 있던 길과는 다르게 그늘 하나 없이 이어지는 길에 붉은 열매가 탐스러웠을 꾸지뽕나무가 튼튼한 가시를 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걷다보면 다시 팽나무가 지키는 원점에 돌아오게 된다.





 

 

 

봄엔 나무의 새싹과 여름엔 아기자기한 꽃들을 만나고 가을엔 알알이 열린 열매가 익어가고 겨울엔 초록의 푸르름 속에서 다음해를 준비하며 돌무더기들과 의좋게 숲을 이루는 곳이 제주의 곶자왈이다.


새 봄의 기다림으로 설레이는 제주의 곶자왈…. 난 청수곶자왈에 가면 다시 힘을 얻는 나를 만나고 온다. 잠시 나를 내려놓고 쉬어가고 싶다면 청수곶자왈을 걸어보길 바란다. <제주숲해설사협회 정봉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