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
살구꽃 향기가 가득한 훈자 왕국
울트라 피크 앞에 지어진 훈자 왕국의 발티트 성.
“아가씨의 수줍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살구꽃이 가벼운 인사를 건네는 장수촌 마을 훈자(Hunza). 이곳은 7788m의 라카포쉬를 비롯해 울타르 피크, 골든 피크 등 7천 급의 고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척박한 고원지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설산과 회색빛의 강물 사이로 피어난 하얀 살구꽃처럼 훈자 왕국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다는 한계상황이 새롭고, 더욱이 훈자는 세계 3대 장수촌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더욱더 신기한 느낌이 든다. 문명이기를 벗어난 곳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최소의 음식으로 최대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훈자인들.
고역설산에 위치한 훈자왕국
훈자왕국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장수’라는 단어이다. 훈자왕국은 미국의 유기농 식단 주창자인 제롬 어빙 로데일(Jerome Irivng Rodale)의 연구를 통해 훈자족(Hunzakuts)의 장수비결이 알려지면서 세인들에게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바깥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왕국, 훈자. 1891년 영국의 침략으로 인해 비로소 세계사 등장한 훈자 왕국은 카라코람 산맥 언저리에 조용히 똬리 튼 작은 왕국이었다. 훈자강과 드높은 설산을 배경삼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가 그려지는 훈자 왕국은 봄이면 살구꽃이 온 마을을 휘감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색이,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겨울이면 하얀 눈으로 옷을 갈아입는 곳이다.
척박한 땅을 일궈 아름다운 목초지를 만든 훈자인들.
이 처럼 계절마다 독특한 색채를 자랑하는 훈자 왕국은 1978년 카라코람 하이웨이라는 길이 열리면서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 길은 4세기경부터 동서 교역을 잇는 실크로드의 한 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중국 신장성에서 이 길을 따라 수많은 문화와 예술 그리고 생활용품들이 낙타를 통해 교역이 이루어진 교역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신비롭고 환상적인 여행길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버스나 짚차를 타고 카라코람을 질주한다. 사람의 발자국의 의해 만들어진 길은 또 다른 문명과 문화를 잉태한다. 장수촌 훈자 왕국 또한 문명의 이기에서 빗겨날 수 없어 지금은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가장 큰 관광도시로 발전했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딛고 아름다운 목초지를 만든 훈자인들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훈자의 풍경
훈자 왕국의 중심도시 카리마바드(Karimabad)는 아주 아담하고 평온한 이미지를 안겨준다. 만년설로 뒤덮인 고산과 그 밑으로 흐르는 훈자강, 그리고 높게 자란 미루나무와 파릇한 농경지가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도연명이 어디선가 나타날 듯한 분위기를 간직한 훈자 왕국은 아리안계통의 사람이 아닌 파란 눈과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훈자족이 건설한 나라이다. 척박한 환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며 21세기까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오롯이 지켜낸 훈자족, 그들이 언제부터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다만 오랫동안 훈자인들의 입과 입을 통해 내려온 전설만 있을 뿐이다. 전설에 따르면 “B.C 325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시 잔류 한 3명의 군사와 그들의 페르시아 아내들이 훈자 벨리(Valley)에 터를 잡으면서 훈자 왕국이 시작되었다.” 고 한다. 개연성 있는 이야기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서양의 역사학자들은 길기트(Gilgit) 산악지대에서 부르사스키(Burushaski)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토착민이 바로 훈자의 조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7세기경부터 티베트계의 사람들이 길기트 지역에 거주하였다는 기록과 740년에는 '브루자(Bruza)'라고 하는 왕이 티베트 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티베트 역사 문헌에서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발티트 성에서 바라본 훈자 왕국의 주변 풍경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11세기 이후 훈자 왕국은 알티트(Altit), 발티트(Baltit), 가네쉬(Ganesh) 등으로 구성된 훈자 벨리에서 한 혈통의 의해 지배되었으며, 1761년부터 1937년까지 신장(Xinjiang)의 위구르족들에게 조세를 받치며 독립된 왕국으로 살아왔다. 과거 훈자 왕국은 길기트에서 카쉬가르(Kashgar)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중계무역지로 관세를 받아가며 명맥을 유지하였다. 훈자족의 조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세계에서 무병장수를 누리며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훈자 왕국의 장수 비결이라는 궁금증과 의문이 여행하는 동안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은 돈이 많아서도 이요, 타고난 체질 때문도 아닌 것 같다. 과거 중국의 황제들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보통 사람들조차 무병장수를 삶의 최대에 목표로 삼고 살았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의해 좌우되고, 다만 꾸준한 관리와 노력으로 수명의 연장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파키스탄 사람의 얼굴보다는 페르시아인의 모습을 더 많이 닮아 있는 훈자인.
과거 훈자왕국은 세계 장수촌으로 유명했다. 마을 어귀에서 노인들이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럼 훈자족들이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요즘 언론매체와 우리나라에서 ‘웰빙’ 신드롬이 일어나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산이나 공원 그리고 음식을 통해 운동과 음식 조절이 한창이다. 하지만 훈자족들은 우리처럼 야단스럽게 웰빙을 꿈꾸지 않는다. 척박한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최소의 열량 섭취와 적당한 노동, 그리고 욕심 없는 청빈한 삶이 그들의 수명을 길게 한 요인이다. 미국의 유기농 학자 제롬 어빙 로데일은 훈자족의 식단을 엄밀히 연구한 결과, 이들은 통밀로 만든 차파티(Chapatti), 신선한 버섯, 당근, 우유, 치즈, 살구 기름 등을 즐겨먹고, 육류는 일주일 한 번 정도 소량 섭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훈자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일반인들의 거주 지역보다 지대가 높고, 산소가 부족하고, 날씨가 변화무쌍한 하지만 보통 사람에 비해 튼튼한 심장과 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4만 명의 인구 중에서 100세 이상이 10여 명, 90세 이상이 100 여 명에 가까울 정도로 장수하는 훈자인들의 최고 장수비결은 평온한 삶에서 얻어지는 정신적 안정이다.
훈자 사람들의 장수비결은 말린 살구를 많이 먹는 다는 사실.
제한된 환경과 제한된 음식을 통해 청빈한 삶을 살고, 항상 자연에 순응하며 긍정적인 생각과 안분지족의 마음이 바로 이들을 장수 마을로 만든 요인일 것이다. 실제로 훈자 마을을 본 사람이면 이곳이 지상의 낙원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것이다. 아주 황량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강물이 흐르는 곳에 파릇한 녹색 지대를 일구며 사는 훈자인들의 지혜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간이 많다면 몇 년 씩 보내고 싶은 카리마바드. 하지만 도시인에게는 그런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서양인들로 붐비는 훈자의 거리
훈자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크리켓이다.
훈자마을 주변은 7천급의 고봉과 빙하들로 가득하다.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몇 주일 또는 몇 달씩 머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명상을 한다. 조급증에 걸린 우리에게는 이들의 생활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작은 빈 배낭에 훈자인들의 청빈한 삶과 그들이 소중한 지혜를 담아 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 여행이 될 것이다.
'병원매거진 > 이태훈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라가 피카소의 열정적인 눈빛 (0) | 2011.05.31 |
---|---|
피렌체 안개 속에 흐르는 사랑 (0) | 2011.05.31 |
세비야 Sevilla 오렌지와 플라멩코 (0) | 2011.05.31 |
지상의 낙원 피지 Fiji (0) | 2011.05.31 |
세상의 모든 신들이 모여사는 카트만두 (0) | 2011.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