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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지상의 낙원 피지 Fiji

제주한라병원 2011. 5. 31. 11:31

2007/08

사람들은 피지(Fiji)를 ‘지상의 낙원’이라 부른다.

 

해질녘 붉은 태양은 피지를 더욱더 로맨틱한 분위기로 물들인다. 야자수 사이에 해먹을 매달아놓고 석양을 즐기는 피지의 아이들.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 사이로 쉴 새 없이 파도가 춤을 춘다. 태곳적부터 파도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상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피지(Fiji)의 섬들과 산호들을 어루만지며 오늘도 어제처럼 해변으로 밀려왔다 밀려간다. 카메라 파인더로 본 피지의 하늘과 바다는 도저히 색깔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푸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 서쪽으로 향하면서 물색은 팔색조처럼 화려한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작은 수정체로 빨려오는 연한 하늘색부터 파란 잉크의 짙은 농담까지 자연의 빛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하늘과 바다 빛이 온통 짙푸른 피지의 자연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인천공항에서 10시간 날아가 도착한 피지의 '난디(Nadi)'. 특이하게 수도인 수바(Suva)로 비행기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항공편이 난디로 들어가는 것부터 피지에 대한 유별남이 눈앞으로 다가섰다. 솔로몬, 파파뉴기니아와 함께 피지는 멜라네시아 계에 속한 나라이다. 이곳을 여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심신을 찌들게 만든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며 철저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얻은 삶의 불순물들을 대자연과 호흡하며 삶의 활력을 재충전시키기 위해 원시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피지로 오는 주된 이유들이다. 눈이 시릴 만큼 남국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며, 야자수 그늘에 누워 오랜만에 찾은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 바로 피지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 피지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생활의 리듬을 현지 식으로 바꾸어 느림의 미학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피지에는 무인도가 매우많다. 그래서 오전에 무인도에 내리면 오후에 정해진 시간에 배가 다시 데리러 온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서 즐기는 피지의 무인도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된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바람이 소소히 불어 닥치면 딱딱하고 길쭉하게 생긴 잎이 서로 몸을 부딪기며 자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바람의 세기가 점점 더 강해질수록 잎사귀들은 자신의 몸을 바람에 맡기며 다양한 소리를 빚어낸다. 이때 뜨거운 태양 밑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파도가 고개를 조금씩 높이 치켜들면서 화답가를 부른다. 이처럼 눈을 지그시 감으면 바람소리, 파도소리, 새소리, 야자수의 노랫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섬의 하루는 서서히 저물어간다.

 

순수한 자연의 원시성을 자랑하는 피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1999년 12월 31일 자정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을 때 세계의 수많은 방송국들이 날짜 변경선이 넘어가는 피지를 찾아 가슴 벅찬 21세기 희망의 태양을 지구 곳곳으로 방송했었다. 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피지가 세상 밖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남태평양의 검은 진주의 나라 피지 공화국은 우리나라와 정식 수교를 맺었고, 영국에서 독립한 지 35년 밖에 안 된 나라이다. 하지만 역사의 슬픔을 딛고 스스로 일어난 피지에 발을 내 딛는 순간 순박한 영혼의 원주민들이 이방인들을 따스하게 반겨준다.

 

 

쉴 새 없이 부서지는 파도와 쪽빛 바다는 피지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매력이다.


 

섬의 왕국이라고도 불리는 피지 공화국은 인구 85만,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에 33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피지에는 49%의 원주민과 46% 인도계 그리고 5%의 유럽 아시아인들이 모여 산다. 피지 원주민은 B.C 1500년에 아름다운 산호의 섬에 정착했다. ‘피지안(Fijian)'이라고 불리기 이전에 원주민들은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비티안(Vitian)'으로 불렸다. 인종적으로 피지안들은 멜라네시아계이지만 통가(Tonga)에 영향을 받아 체격이 크고 건장하다. 특히 여자들은 콧수염과 구레나룻이 있어 조금 어색한 느낌마저 든다. 또한 사촌끼리 결혼을 많이 하다보니 얼굴 생김새도 아주 비슷하고 여성스러운 남자들도 생각보다 많다.피지안들의 특징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는 것이다.

 

 

배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이 톰 행크스가 주연한 '게스트 어웨이'의 촬영장소이다. 얼마 높지 않지만 길이 없는 산을 오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현재까지 부락 단위로 마을이 구성되고 추장이 부족을 대표한다.피지에서 추장의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 단순히 마을을 대표하는 것 외에도 14명으로 구성된 피지 추장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14명중에서 가장 높은 추장이 맡는다.이런 문화를 문명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정말 원시적일지 모르지만 피지에서는 3000년 이상 이런 방식으로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자연에서 얻은 나무와 줄기를 이용해 만든 피지 원주민의 가옥 


 

세계사 속에 등장한 피지는 1643년 네덜란드인 '타스만'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면서 서양에 소개되었다. 그 후 19세기 중엽 여러 추장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는데 이때 이곳에 와 있던 미국인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게 되자 피지왕을 자처하던 '자콘바우'에게 4만5000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했다.지불능력이 없었던 자콘바우는 영국에서 돈을 빌리는 대가로 20만 에이커의 토지를 할양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1874년 영국은 섬 전체를 식민지화 했다.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피지에는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할 인도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1912년 436명의 수드라계급의 노동자가 이주하기 시작해 36년 동안 6만 여명이 피지에 정착했다. 현재는 인도인들이 피지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으며 피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원주민들은 점점 외진 섬이나 산간 내륙 깊숙이 들어가 살고 있다. 원주민들의 생활은 아주 가난하다. 그렇지만 피지인들은 절대 타인에게 땅을 팔지 않는다. 많은 리조트들이 섬마다 가득하지만 모든 것이 반영구적으로 땅을 임대한 것이라고 한다.

 

 

피지는 섬나라지만 말을 타고 정글을 탐험하는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피지여행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에메랄드빛의 바다에 푹 빠져 보내거나 야자나무 사이에 걸린 해먹에 누워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휴양지에 와서 꼭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피지안들의 전통문화를 접하는 일이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식인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부족 간 전쟁이 심하던 시절, 싸움에 승리한 부족장이 패장의 눈과 몸을 먹었던 데서 식인 풍습이 시작됐다고 한다. 눈 속에 그 사람의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에 다른 부족민들을 통솔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적의 눈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1887년 모든 부족을 통일한 자콘바우 추장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되면서 이 풍습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을마다 세워져 있는 십자가상은 그 부족이 모든 주술과 미신에서 해방됐음을 뜻한다고 한다. 지금은 식인 풍습은 사라졌지만 원주민 마을의 추장은 그대로 있고, 그의 엄청난 권력은 아직도 부족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원주민 마을을 방문할 때에는 먼저 부족의 추장을 알현하고 간단한 선물도 올리는 것이 예의다. 피지는 섬마다 다양한 부족들이 모여살고 있으며 그 속에서는 작은 부락마다 또 추장을 중심으로 또 다른 최소 단위의 사회를 꾸려나가고 있다.


 

 

피지의 정글탐험 프로그램은 2시간 가량 정글을 헤치고 산악 지역을 걷거나, 말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빽빽한 밀림을 헤치고 나가면 높이 30미터가 넘는 멋진 폭포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부락마다 강당같이 비교적 큰 집이 있고 이곳에서 이방인들을 접견하거나 피지의 전통의식이 ’카바(Cava)‘가 행해진다. 피지에 머무는 동안 리조트에서나 원주민 마을에서 피지만이 가진 독특한 카바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카바'는 남태평양 제도에서 마시는 전통 ’술‘로서 후추 나무과의 나무뿌리를 말한다. 이 카바를 건조시켜 곱게 가루로 만들어 깨끗한 천에 넣어 물속에서 손으로 비며 액즙을 내서 마신다. 카바의식은 추장 앞에서 행해지며 아주 엄숙한 분위기다. 카바의식의 가장 큰 의미는 전통적으로 당신을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환영의 뜻이며 적에게는 화해를 상징한다. 약간의 마취 성분이 있어 많이 마시게 되면 혀가 얼얼해진다.이런 카바의식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여행자들은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 볼 수 있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에는 대게 30-50명 정도의 원주민들이 생활한다. 이들의 삶은 원시공동체 방불케 한다. 땅의 소유나 생산의 분배 등이 개인 보다 부락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원주민의 전통가옥은 코코넛 잎을 말려 벽을 치장하고 억새나 갈대를 말린 것을 지붕에 얹은 ’부레(Bure)' 라는 것이다.

 

 

원주민의 전통 가옥인 '부레'는 코코넛 잎을 말려 벽을 치장하고 억새나 갈대 말린 것을 지붕에 얹어 만든다.

 

쉽게 우리의 초가집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집 안 내부는 큰 방 하나에 모든 가족들이 함께 생활한다. 가족 수에 상관없이 방은 하나이고 문을 마주 보게 만들어 항상 맞바람이 불어 내부는 생각보다 굉장히 시원하다. 블라!를 외치며 원주민 곁에 다가서면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블라!’ 답례를 보낸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날 만큼 원주민들과의 함께 하는 시간은 리조트에서 보내는 휴식과 또 다른 마음의 휴식을 안겨 준다.

 

 

피지의 원주민들이 축제 때 사용하는 가면들.

 

리조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소 지겹거나 새로운 놀 거리를 찾는다면 보트를 타고 낚시를 하는 것도 좋고, 무인도에 잠시 들어가 원시적인 생활 체험을 하는 것도 괜찮다. 피지 서부의 마마누다 제도에는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한 몬드리키 무인도가 있다. 이곳에는 약 150미터의 낮은 산이 하나 있는데 선장에게 길을 안내 받아 올라가면 발아래로 에머랄드빛의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물론 산길은 없다.


 

외지인들에게 환영의 인사로 노래를 불러주는 피지인들

 


 

자연만큼이나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

 

그래서 오지를 탐험하듯 돌과 넝쿨을 헤쳐 가며 오르는 그 기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산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그 밖에도 피지 섬에서는 바다가 아닌 내륙으로 정글을 체험하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일명 ‘나부아’나 ‘비아세부’ 등으로 불리는 폭포까지 걷은 산악 트레킹은 말을 타고 가거나, 직접 2시간가량 도보로 개울과 정글을 탐험하는 것이다. 맨발로 풀이나 땅에 감촉을 느끼며 작은 실개천과 덤불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높이 30m의 폭포를 만나는 순간은 이곳이 남태평의 피지가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아마존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이처럼 지상의 낙원이라 불리는 피지는 태곳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산과 바다가 있어 여행을 더욱 즐겁고 보람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