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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신들이 모여사는 카트만두

제주한라병원 2011. 5. 31. 11:23

2007/08
세상의 모든 신들이 모여사는 카트만두

 

보다나트는 천 년 전에 세워진 불탑이다. 카트만두의 상징이자 불교를 믿는 세르파족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다.

 

“왕으로부터 물소 한 마리로 덮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약속받은 노인이 고기를 최대한 얇게 썰어 넓은 땅을 얻은 후 그 자리에 사원을 짓고, 해발 1,500미터 분지에 가득 찬 호숫물을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단칼에 산허리를 베어내어 인간에게 삶의 땅을 선사한다.”

 

이런 신화와 전설이 가득한 도시가 네팔 카트만두이다. 중세와 현대, 삶과 죽음, 선과 악이 동시에 공존하는 카트만두는 어느 거리, 어느 장소를 가도 깊은 신앙심과 신상神像을 마주치게 된다. 이 땅을 처음 여행한 유럽인 윌리엄 프릭 패트릭은, “집이 있는 만큼 사원이 있고, 사람들만큼이나 신상이 있다”고 말했다. 정말 비행기문을 열자마자 카트만두를 가득 메운 모든 신들이 일제히 낯선 이방인들의 감각기관에 히말라야 대자연의 정기와 자욱한 종교 향기를 마구 밀어넣는다.

 

 

네팔의 역사는 사실과 설화, 전설 등이 심하게 혼재되어 있어 역사의 시작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다. 대략 B.C. 2000년부터 인도에서 건너온 아리안 계통의 네왈 족들이 카트만두 분지에 살기 시작했으며, 4세기에 리차비Licchavi 왕조가 들어서고,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말라 왕조가 집권하면서 오늘날 카트만두가 가진 모든 문화유산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신상이 있는 카트만두. 특이한 것은 사람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궁에 마구 올라가고 훼손한다. 하지만 네팔 정부는 이곳이 시민의 삶의 터전이라는 이유로 막지 않는다. 수도인 카트만두는 5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분지로, 갠지스 강의 원류가 되는 바그마티 강과 비쉬누마타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3세기 초 수도로 지정된 카트만두는 줄곧 정치․경제․문화․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인도와 티베트 양국간의 중계무역으로 성장한 교통도시이다. 예전엔 ‘칸티풀Kantipur’이라고 불리기도 한 카트만두는, 1596년 ‘라자 라치미나 싱’이 한 그루의 나무로 목조사원을 지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나무를 의미하는 ‘카트’와 사원․건축물을 뜻하는 ‘만디르’에서 도시이름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보다나트 주변에는 기도를 열심히 올리는 세르파족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보다나트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 카트만두의 현재 모습은 앨범 속에서 30년 전 우리 흑백사진 한 장을 보는 듯 문명사회와 좀 동떨어져 있다. 100만 명의 인구가 자신의 종교와 고유한 정체성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신상 앞에서 기도로써 하루를 시작한다. 네팔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는 많은 신들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그들의 생활과 종교적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네팔의 인구는 2천500만 명 정도이며 70여 개의 다양한 인종들이 분지와 히말라야에 골고루 흩어져 살고 있다. 크게 구분하면, 남부의 인도 아리안 계통의 네왈 족과 북부 티베트의 몽골리안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카트만두에는 네왈 족과 타만 족, 에베레스트 산지의 세르파 족을 비롯한 몽골리안, 중서부의 마가르 족, 포카라 주변의 구릉 족, 테라이 지방의 인도계 타루 족 등이 대립보다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네팔의 주 지배층을 구성하고 있는 아리안 계통은 인도처럼 힌두교를 믿으며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를 따른다. 몽골리안 계통은 불교를 믿고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카트만두의 전속 사진모델 아저씨들. 붉은 색옷을 입고 점을 치는데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먼저 돈을 요구한다.

 

죽은 신에서부터 살아 있는 처녀 신 ‘쿠마리(생리 이전의 소녀)’까지 아주 다양한 신과 신상들이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생활이 종교이고 종교가 곧 삶의 일부이다. 신은 사람 자신의 마음이 투사되어 조작된 추상물이라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사람 수만큼 신의 수가 많은 카트만두에선 왠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수도 시설이 덜 정비된 네팔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공동 목욕탕과 빨래터가 있었다. 지금도 현지 사람들은 공동 목욕탕을 이용하고 있다.

 

카트만두 사람들의 영혼세계를 지배하는 대표적 종교는 네팔 국교로 인정된 힌두교이다. 힌두의 신은 수천, 수만이 되기도 하지만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 이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슈누, 그리고 파괴를 일삼는 시바 신이 그것이다. 이 세 종류의 신들이 생성․유지․소멸을 반복하며, ‘윤회’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을 더 깊은 종교의 바다로 이끈다.

 

네팔에는 3개의 왕국이 있다. 카트만두 왕국, 파탄 왕국, 박타푸르 왕국. 사진은 파탄 왕국의 전경

 

이른 아침의 카트만두 풍경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거리는 어둡고, 짙은 안개라도 낀 날이면 한치 앞을 분간하기조차 힘들다. 또한 히말라야의 고산들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값싼 연료를 사용하여 카트만두 시내를 매캐하게 하니 오염된 공기가 하루 종일 여행자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카트만두는 네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15~18세기 말라 왕조 시대의 달발, 파탄, 박타푸르 등 독립된 세 왕국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도시이다. 이 세 왕국은 15세기 카트만두 계곡 일대를 통일한 초기 말라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야크샤 말라Yaksha Malla의 세 아들이 각각의 왕국을 맡아 18세기까지 번영을 누렸던 왕국이다.

 

 

스와얌부 나트 사원의 보다나트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구 왕궁이 자리한 달발 광장Durbar Square이다. ‘달발’이란 왕 또는 왕궁을 지칭하는 말로서, 광장 주변엔 다양한 볼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16~17세기에 지어진 말라 왕조의 왕궁, 네팔 사람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원숭이 신 ‘하누만’,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시바 신 ‘칼리 바이라브’ 석상, 힌두 양식과 불교 양식이 혼합된 18세기 중엽의 쿠마리 사원 등이 그것이다.

 

시내에서 2킬로미터 정도 벗어나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자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인 스와얌부 나트Swayambu Nath가 있는데, 일명 몽키Monkey 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사원 주위에 야생 원숭이들이 군락을 이루어 여행자와 신도들이 주는 먹이로 살아가고 있다. 이 사원이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원 중앙부에는 티베트 불교의 성지이자 세계 최대의 스투파(불탑)인 보다나트가 있고, 거기에 새겨진 부처의 눈이 오늘도 변함없이 불교 신도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이 사원은 불교사원이면서 내부에 힌두사원이 같이 있어 네팔의 독특한 사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네팔에서 힌두신은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 사람의 수만큼 신이 있고, 신이 있는 만큼 신상이 있다.

 

불교사원에는 늘 티베탄들과 여행자들로 북적거리지만 힌두사원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갠지스 강의 원류가 시작되는 바그마티 강 주변에 세워진 파슈파티 나트Pashupati Nath 사원은 네팔 힌두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이다. 이 사원은 시바 신을 위해 477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10세기에 파손된 뒤 말라 왕조 때 다시 건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큰 벌을 내린다는 칼리 바이라브는 팔이 여섯개 달린 힌두신이다.

 

이곳에서 가장 이색적인 것은 인도의 바라시니처럼 사원 옆에 화장터가 있어 하루 종일 피어오르는 시신 태우는 연기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카트만두는 동서 25킬로미터, 남북 19킬로미터로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그러나 도시 안을 가득 메운 사원들과 신상, 영혼의 삶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신도와 승려들의 모습이 작은 배낭 하나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깨달음을 주는 곳이다.

 


이태훈 작가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첩첩산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항상 산 너머 세상을 동경하던 소년에게 어느덧 여행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꿈이 되었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뤄진다고 하지 않던가! 소년은 청년이 되자 여행을 위해 영문과를 선택했고, 또 평소에 좋아하던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재입학했다.대학 시절은 아르바이트와 여행, 이 두 가지만으로 충분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은 돈으로 세계여행을 떠났고, 여행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 속에서 영화 같은 낭만적인 정열과 동화 같은 순수한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연과 인간에게서 푸릇한 생명을 포착하기 때문일 것이다.대학을 졸업한 후 신문사에서 일했으며, 현재 프리랜서 여행 전문가로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프리카 트래킹을 포함해 세계 70여 개 국을 여행했으며, 《뷰티풀 유럽여행》《뷰티풀 티베트여행》《뷰티풀 코리아》를 세상에 펴냈다. 현재 제주한라병원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