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그리스신화와 다른 창조설화 다양
인간창조에 관한 그리스 신화는 성서의 창조설화와 마찬가지로 중동 지방의 설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 성서에서 아담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생명의 숨길이 불어넣어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의 인간도 프로메테우스가 자신과 신들의 모습을 본떠 진흙을 빚은 후 아테나 여신으로 하여금 생명을 불어넣게 한 것으로 나온다. 성서나 그리스 신화 모두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그 후에 여자가 창조되었으며, 여자에 의해 이 세상에 악한 것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표현되는 점도 동일하다.
하지만 신화 중 인간창조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프로노이아’라는 티탄족 여신과의 사이에 최초의 남자 인간인 ‘데우칼리온’을 낳았다는 버전이다. 이 과정에서 프로메테우스를 불쾌히 여긴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판도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원래 판도라의 말뜻인 ‘모든 선물 중의 선물’이란 의미가 무색하게도 이 새로운 창조물에 온갖 안 좋은 특성을 집어넣게 했다. 이어서 헤르메스가 신에 의해 창조된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한다. 프로메테우스의 현명하지 못한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아름다운 판도라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이들 사이에서 ‘피라’가 태어났다. 그리고 피라가 데우칼리온과 결혼하여 인류의 여자 조상이 된다는 버전의 이야기다.
한편 판도라는 신들로부터 소위 ‘판도라의 상자’를 받아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이 상자에는 인류의 모든 결함과 재앙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가 뚜껑을 열고 만다. 그 속에서 질병, 자연재해, 전쟁, 범죄 등 오늘날 인류를 괴롭히는 갖가지 재난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상자 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상자 속에 숨겨졌던 모든 고통을 견디게 해줄 수 있는 것, 바로 희망이었다.
창조의 배경 설명이 조금 다른 버전도 있다. 인간이 세상에 살림을 꾸리게 되었다. 이 첫 시대는 죄악이 발붙일 곳이 없는 행복한 시대였으므로 <금의 시대>로 불린다.그 시대에 이어 <은의 시대>가 왔다. 네 계절이 생겼으므로 더위와 추위를 겪게 되었으며, 몸을 보호해줄 가옥이 필요했고, 농작물을 거두기 위해 씨를 뿌려야했다.은의 시대에 이어 <청동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에는 인성(人性)이 거칠어져 사람들이 걸핏하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경향이 나타나던 시대였다.가장 거칠고, 극악하다 할 수 있는 시대는 <철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죄악이 범람했고, 폭력과 사리사욕이 횡행했다. 이때까지 공동 경작되던 땅이 사유재산으로 분할되었으며, 땅속을 파 금속과 광석을 파내었다. 사람들은 철과 황금을 무기로 전쟁을 일으켰다.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그 치부를 드러낸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과 그리 많이 달라 보이지 않아 괴롭다.)제우스는 인간의 모습에 몹시 화가 나, 모든 신을 불러 모았다. 제우스는 지상의 타락상을 설명하고, 인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리고 새로운 종족으로 하여금 새로운 살림을 시작하게 하겠노라고 천명했다.지상을 모두 태워 버리려고 벼락을 집어 들었던 제우스는, 불길이 천계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제우스는 비구름을 흩날리게 하는 북풍을 잡아매고, 남풍을 보내어 먹구름으로 하늘을 덮어 버렸다. 사방에서 모여든 구름이 서로 부딪히는 바람에 하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어 폭포수처럼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제우스는 포세이돈에게 바다와 강을 모조리 범람하게 하고, 그 물을 대지로 보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지진을 일으켜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바다로 흘러간 물이 역류하여 해안을 덮치게 했다. 세상이 물바다로 변했다. 이 바람에 가축과 사람과 집이 모두 물에 떠내려갔고, 다행히 물난리를 피한 생물이 있더라도 굶어서 죽어갔다.오직 파르나소스 산만이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 산에는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아들 데우칼리온, 그리고 데우칼리온의 아내이자 에피메테우스의 딸인 피라가 대피해 있었다. 제우스는 이 부부만은 예쁘게 보아 북풍을 보내 구름이 걷히게 했고, 포세이돈도 아들 트라이톤으로 하여금 뿔고둥 나팔을 불어 물을 물러가게 했다.살아남은 두 사람은 신전으로 가서 신의 뜻을 묻기로 했다. 두 사람은 신전의 계단 옆에 엎드려 인간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얼굴은 가리고 옷을 벗고 이 신전에서 나가 너희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 는 신탁이 내렸다.신탁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보던 데우칼리온... 만물의 크신 어머니는 바로 대지이니까, 어머니의 뼈는 바로 돌이란 걸 깨달았다. 두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옷을 벗은 다음 신전에서 나가 돌을 집어 등 뒤로 던졌다. 그러자 돌은 말랑말랑한 덩어리가 되어 물체의 형체를 띠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인간의 형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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