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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의 해독과 정확한 표현의 필요성

제주한라병원 2014. 5. 7. 09:16

오역의 해독과 정확한 표현의 필요성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단편 <소나기>에서 소녀가 소년에게 말한 대목 중 “이 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어느 영문 번역가가 “Fuck you”로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흔히 쓰는 ‘이 바보’가 어떻게 가장 상스러운 ‘Fuck you’로 번역될 수 있습니까?  ‘Fuck you’는 우리말로 ‘씨XX’ 이란 가장 저속한 표현입니다.


이외수의 소설 <하악 하악>에서 나오는 호리병이란 말이 있습니다. 호리병박 모양으로 생긴 병으로 술이나 약 따위를 담아 가지고 다니는 데 사용하는 잘룩한 모양의 병인데 이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한 어떤 교수는 ‘horeesickness’라고 발음나는대로 영어를 표기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호리병을 영문으로 표기하기 어려워도 ‘horee’라고 소리나는대로 표현 다음에 병은 몸이 아프다는 ‘sickness’라는 말을 덧붙였다니 어처구니없는 번역입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특히 오역이 많습니다. 코리아타임스 기자-문화체육부장을 지낸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씨는 잘못된 엉터리 오역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 표본을 훔쳐 팔려고 보안 장치를 일부러 고장 낸 컴퓨터 전문가에게 리처드 아텐보로가 화를 내며 한마디 합니다. “Our lives are in your hands and you have butterfingers?” 이 말이 영화 자막에는 “우리 목숨이 자네 손에 달렸는데 과자나 먹게 생겼어?”라고 나옵니다. Butterfingers란 단어를 과자로 번역한 것인데 과자가 아니라 (마치 손가락에 미끈거리는 버터가 잔뜩 묻은 듯) 걸핏하면 물건을 떨어트리거나 더듬거리는 사람, 또는 그런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를 뜻합니다. “우리 목숨이 자네 손에 달렸는데, 이렇게밖에 못하겠나?”라고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영화 <뮤직 박스>에서 변호사 제시카 랭이 동료에게 의뢰인들에 대해서 묻습니다. “They found coke on one of them?”라고 하는데, 이 말이 “콜라를 발견해서 어떻게 됐죠?”라고 나옵니다. 역자는 coke가 속어로 마약 cocaine(코카인)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황당한 오역을 한 것인 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코카인을 소지하고 있다가 발각되었다는 말인가요?”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문학작품 중에서 잘 알려진 명작을 오역한 사례가 많습니다.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절정의 장면은 주인공 뫼르소가 살인하는 대목입니다. 기존 번역본에는 아랍인에게 총을 쏜 동기가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로 돼 있습니다. 최근 새 번역본 <이방인>을 펴낸 작가 이정서(필명)씨는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햇빛이 위협적이어서 정당방위로 쏜 것이라고 작품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잘못 번역됐다고 지적합니다. 이정서 씨는 국내 최고의 카뮈 권위자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번역을 조목조목 지적해 출판계에 번역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벨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돌핀 (dolphin)’은 한국 근해에서도 서식하는 ‘만새기’인데 돌고래로 잘못 번역돼 있습니다. 또 헤밍웨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에서 ‘toll’은 사람이 죽어 조종을 친다는 뜻으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을 울리나>가 옳습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꼬마 군주>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prince’는 왕자 외에도 작은 나라의 군주란 뜻이 있는데 어린 왕자가 살다 온 소행성은 그가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번역은 우리 문학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고 우리의 노벨상 수상도 제대로 번역이 돼야 가능하다는 게 문인들의 바람입니다.
 
1970년대 독일의 정신 분석학자이며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의 저서 <건전한 사회>를 번역하면서 그 책의 핵심 내용인 노동조합을 무역협회로 오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책의 주제인 노동조합 중심의 건전한 사회는 무역협회 주도의 사회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책이 포함된 우리나라 유일의 사상전집은 오랫동안 우리의 사상계를 지배해 왔습니다. 역자가 당시 서양에서 유행한 진보적인 사상을 소개했고, 프롬의 ‘trade union'이 노동조합임을 몰랐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노동조합 없이 무역협회만 있어야 우리 사회가 건전하다고 믿는 소신으로 노동조합은 없애고 무역협회만 두어야 한다는 잘못된 소신으로 번역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이 역자는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고 문교부 장관까지 역임한 김옥길 씨입니다.


우리의 정신문화와 올바른 사상을 위하여 선진국 작품을 번역할 때 정확한 표현이 중요한 것처럼 국정 책임자가 국가 정책의 방향과 나라 살림의 운영방침을 제시할 때도 정확한 표현을 해주어야만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비전에서 강조하는 말은 ‘창조경제’입니다. 한국일보가 박근혜정부 출범 1년과 창조경제 정책시행 1년을 맞아 188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창조경제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34%(65곳)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모르겠다’고 했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곳은 15%(29곳)에 불과했습니다. 창조경제 진행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로는 ‘모호한 개념’(32%)이 꼽혀, 창조경제 구상 자체 선정이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창조경제 1년에 대한 종합적 평가 점수를 매겨 달라는 질문에는 10점 만점에 평균 3.7점이 나왔습니다.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 교수는 “정부 스스로 실효성과 공감대가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 이어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해 강연을 통해 이른바 ‘한반도평화통일구상’을 공개했습니다. 그 구상은 남북한 교류협력을 위한 세 가지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남북 인도적 문제 해결, 공동 민생인프라 구축, 동질성 회복이 골자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존엄 높은 사상과 제도를 해치기 위한 반민족적인 체제통일, 흡수통일을 의미한 망발”이라고 반대했습니다. 드레스덴 선언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에 접근하기에는 영원히 ‘통일 대박’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정부는 드레스덴 제안 이행 준비 전에 지금이라도 그 구상에서 빠진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사전조치를 할 때까지 인내하며 대화하지 않는 것이 핵개발을 촉진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비판을 수용하는 것부터 우선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국제사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