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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데 지켜지지 않고 있는 법안들

제주한라병원 2013. 7. 29. 09:21

꼭  필요한데 지켜지지 않고  있는 법안들

 
영화‘귀여운 여인’으로 유명한 톱스타 줄리아 로버츠는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입을 가진 여인’이라고도 불리우는 로버츠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수년간 선정되고 자녀 3명을 키우는 모습이 헌신적이어서 팬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6년 전 줄리아 로버츠는 남편인 대니 모더와 함께 LA 인근 말리부의 한 식료품 가게에 들렀을 때 타고 온 SUV 차를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는 구역에 주차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파파라치들이 이를 놓치지 않고 촬영해 ‘스타(Star)’지에 제공,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장애인 주차 장소임을 지정하는 휠체어 그림이 담긴 파란 표지판이 서 있었지만 로버츠 부부는 개의치 않고 차를 세웠다며 목격자들은 얌체라고 비난했습니다. ‘야박하다’라는 여론에 로버츠는 한동안 곤욕을 치렀습니다.


지난 해 민주통합당 안규백 의원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의 실효성을 확보하는데 목적이 있어 신고포상금 도입을 골자로 한 사항이 추가됐는데 이 부문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안 의원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위반 시 10만원에서 20만원 미만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어 신고포상금제를 넣었다. 단속을 맡은 인력이 시 군 구에 한두명에 불과해 단속에 한계가 있어 일반인도 참여하도록 개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칭 파파라치 제도를 도입해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려고 한 이 개정안은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국회에서 임기 내에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전용 주차구역에 불법주차할 경우, 미국은 과태료가 자그만치 120만원, 일본은 무려 230만원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엄청난 벌금이 능사는 아니지만 우리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벌금을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려야만 제도가 지켜진다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정부나 자치단체가 파파라치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겠느냐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어느 장애인은 인터넷에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임을 뻔히 알면서도 주차하는 멀쩡한 사람들이 야속하기만 해요. 마트에 장 보러 가는 게 겁난다니까요. 한번은요. 장애인구역에 차를 댄 사람에게 항의했다가 장애가 무슨 자랑이냐는 말까지 들었다니깐요. 눈물이 다 났어요”라는 하소연을 남긴 것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비장애인도 당연히 동참해야 할 법안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씁쓸합니다.


방송사에 다니던 어느 동료는 27년 전 걸어서 유명 대학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허리 수술 후 평생 일어나지 못하는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척추에 결핵균 염증이 생겨 허리와 다리 부분이 뻐근하고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증세였는데 보통 정형외과 전문의로부터 수술 치료를 받으면 며칠 만에 낫는다는 병이었습니다. 아마 담당 의사가 수술을 하다가 염증 부분을 잘못 건드려 척수를 손상시킨 모양입니다. 날벼락을 맞은 동료는 세상을 원망하고 나중에는 보상이라도 받을까 했으나 담당 의사는 제대로 설명도 않고 피하다가 자신이 보상해주겠다고 했으나 그 의사도 몇 달 후 병원 자신의 방에서 심장마비로 숨졌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다가 숨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대학병원측은 4천만 원 정도의 위로금을 주고 끝나려 해 결국 동료는 대학병원을 상대로 보상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담당 의사의 실수를 증명하기가 쉽지가 않아 2년 이상을 끌었습니다. 마침 의료진 중 한 사람이 동료를 도와주어 각종 자료를 구할 수 있었고 나아가서는 외국의 비슷한 자료까지 구해줘 동료가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4월 문을 연 의료사고 피해 구제와 분쟁을 조정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도 시도는 좋았으나 나아진 것은 없어 안타깝습니다. 대한의사협회가 1988년 필요성을 제기한 지 24년 만입니다. 환자는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고 공정하게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고 의료인은 분쟁에 시달리지 않고 진료에 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대부분 법정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환자는 평균 2년2개월에 달하는 소송 기간과 과다한 비용, 전문 지식의 부족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대부분 패소했습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출범 1년이 지났지만 기대한 만큼 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중재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접수된 조정신청 건수는 804건이지만 실제 조정이 시작된 것은 299건이었습니다. 전체의 39% 수준입니다. 이 중 162건(20%)이 합의되거나 조정 결정이 났습니다.


무엇보다 중재원은 의료분쟁으로 인한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을 줄이자는 취지로 탄생했습니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북대 김민중(법학) 교수는 “원칙적으로 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절차를 시작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조정 절차에 참여할 수 없는 사유를 미리 정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법무법인 세승의 현두륜 변호사는 “14일 이내에 피신청인(의료인)의 의사 표시가 없을 경우 조정 절차 시작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다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의료 사고 환자가 피해 구제를 받기 위한 소송은 힘들어 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었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