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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와 드론, 콜센터 직원들의 스트레스

제주한라병원 2013. 2. 26. 09:39

나로호와 드론, 콜센터 직원들의 스트레스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지난 1월 30일 성공하자 한국항공우구연구원의 200여 연구원은 눈시울을 붉히며 환호했습니다. 이들은 1차, 2차 발사가 실패할 때마다 의기소침을 넘어 죄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서로 만나도 얘기도 나누지 않고 지나치며 움츠러들었다고 합니다. 죄책감과 패배감에 연구원 가운데 삼분의 일이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나머지는 대인기피증에 공황장애까지 앓기도 하는 등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두 번 실패한데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3단 로켓인 광명서 3호를 전격 발사해 성공시켜 압박감이 가중돼 연구실에서 일에 매달렸고 합니다. 나로호 발사 사업은 2002년에 시작돼 2009년 8월에 1차 발사가 실패하고 2010년 10월에 2차 발사도 실패했습니다. 발사 성공후 한 연구원은 전체 과학자들의 마음이라며 정동묵 시인의 시 ‘꼭 가야 하는 길’을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낭독해 쌓였던 자신들의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막아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혼이 되어 세월이 되어~~”


“매일 생각한다. 거리를 걸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영화나 뉴스를 볼 때도. 내가 죽인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을. 16살도 되지 않은 것 같던 그 아이를. 나는 더 이상 스스로 생각했던 예전의 ‘좋은 사람’이 아니다.”


미국 해병 대위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 티머시 구도가 지난 1월 참전용사들의 정신적 고통을 묘사한 기고문을 워싱턴포스트에 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현역 군인 349명이 자살했는데 이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229명)보다 많은 것입니다. 미국 내 자살자 5명 중 1명이 퇴역 군인일 정도로 참전 용사의 정신적 외상은 심각합니다. 현재 뉴욕대 대학원에 재학중인 티머시 구도는 기고에서 “참전 퇴역군인들은 ‘사람 죽여봤느냐’고 호기심 어린 질문에 화가 나지만 그런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 나의 경험을 설명함으로써 향후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든다면 그것으로 내 행위(살인)가 완전히 헛된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캐넌 공군기지 내에 있는 컨테이너 형태의 밀폐된 작은 방에서 두 명의 병사가 14대의 대형모니터와 복잡한 기계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버튼을 누르고 곧바로 헬파이어 미사일이 모니터에 나타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갑니다. 비디오게임처럼  눌러대는 버튼에 누군가는 죽어갑니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와의 전쟁 최일선에서 작동하는 병기가 인공지능을 갖춘 무인비행기 드론(Drone) 이야기입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최근 보도한 드론 조종 업무 담당 병사들의 이야기는 섬뜩합니다. 이들은 극도의 회의를 느끼고 죄책감에 공황장애를 겪는다고 합니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 간부 등 3,000명이 드론의 공격에 숨졌습니다. 최근 아프리카 말리 내전에도 드론이 동원됐습니다. 그러나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등 민간인이 3분의 1이 넘어 윤리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담당하는 병사들의 정신적 후유증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비용에 아군 인명 피해가 없고, 쉽게 발각되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각 국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전화 안내원들이 근무하는 콜센터 상담원 2명 중 1명이 병을 달고 산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절반 가까이가 우울증 등 질환으로 진단받은 경험이 있고, 10명 중 4명 정도는 정신적 고위험 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3.7%는 서비스업 6대 질환(우울증, 하지정맥류, 근골격계 질환, 소화장애, 생리불순,성대결절)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며 25%는 우울증 의심으로 분류됐고, 40%는 사회심리적 건강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일반 여성근로자(고위험군 비중 27%)에 비해 정신건강이 두 배 가까이 나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불량 고객’들의 각종 폭언과 욕설, 성희롱, 인격 무시, 무리한 요구 등에 무방비 상태인 것입니다. “성희롱을 당해도 전화를 끊지 말아야 한다는 회사의 방침이 있다” “폭언을 들어도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 “(고객이)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본다” “대응도 못하고 그냥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못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29년 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 한국일보-일간스포츠 취재팀의 일원으로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올림픽 폐막식을 마치고 취재진 8명은 귀국하기 전 3일간의 휴가를 얻어 그랜드캐넌 구경을 갔다오다가 승합차가 사막 하이웨이에서 전날 내린 비로 생긴 웅덩이 물에 미끄러지는 수막현상으로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척수손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으로 휠체어를 타게 됐습니다. 당시 정형외과와 재활병원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LA 란초로스아미고스병원에 입원했는데 여러 의사가 치료하면서 심리치료사와도 면담을 가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정신과-상담치료사와 만나지?”라면서 의아하게 생각했죠. 커다란 사고를 당한 사람은 정신적 외상을 입어 신체의 외상과 상관없이 지나친 걱정과 우울증 등 여러 가지 또다른 후유증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트라우마(Trauma)라는 말이 그것인데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입원하고 처음 두 달간은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을 두 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처음에 병원까지 와서 보름간 저를 돌보다가 돌아간 뒤 사흘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왔고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도 편지를 보내와 그것을 보면서 펑펑 울다가 두 달이 지나면서 아내의 편지에 힘을 내고 눈물을 그치고 맹렬하게 재활운동과 치료에 매달리며 고통을 잊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만났던 심리치료사와 상담도 상당히 도움이 됐죠.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심리치료사와 상담은 100% 치료가 된다고 보장은 할 수 없으나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과학과 경제의 발달로 발전하는 요즘 세상은 정신적 외상 환자가 우리 주변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는 사람은 늘어나고 이상한 사건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커다란 사건을 겪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빠른 시간내 정신치료, 심리치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미친 사람들, 정신병환자들이나 정신과 의사, 심리 치료사를 만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사고방식부터 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