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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믿음·사랑으로 불과 지혜 선물

제주한라병원 2013. 1. 29. 09:05

인간에 대한 믿음·사랑으로 불과 지혜 선물

-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의 탄생 -


 

희망찬 새해가 시작되었다. 한라병원과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께 지면으로나마 신년 인사를 올리고자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겨울에는 유난히도 매서운 추위가 자주 찾아오고 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데 이럴 때일수록 ‘불’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번 호에서는 그리스신화 속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왜 불을 훔쳐야만 했는지 알아보자.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은 진흙을 빚어 이 세상을 살아갈 유한한 생명체들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모든 형체들이 빚어지자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를 불러 각각의 형체에 알맞은 능력들을 분배하라고 명령한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티탄족인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자, 지구를 짊어진 아틀라스와는 형제 사이다. 그리스어로 프로(pro)는 ‘먼저, 이전에, 앞서’라는 뜻이고 에피(epi)는 ‘후에, 뒤에, 나중에’라는 뜻이다. 그리고 메테우스(Metheus)는 ‘아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아는 자’라는 뜻이고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야 아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로메테우스는 현명하며 선경지명이 있었지만 에피메테우스는 그와는 반대였다. 제우스의 명을 받고 작업장에 온 에피메테우스는 형인 프로메테우스에게 “이런 일은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걱정말고 돌아갔다가 나중에 확인해보고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만 말해달라”고 장담한다. 그리고는 혼자서 각각의 형체에 알맞은 능력들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몸집이 작은 것들에는 큰 것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고, 어떤 것은 물에서 살 수 있게 또 어떤 것은 하늘을 날 수 있게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나름대로 어떤 형체도 멸종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게 매우 신중하게 능력을 나누어 주었다. 빽빽한 털과 두꺼운 피부를 받은 생명도 있었고, 추위에 강하거나 더위에 강한 능력을 주기도 했다. 또 각각의 형체에게 서로 다른 음식을 주었다. 풀을 먹는 생명체, 나무열매나 뿌리를 먹는 생명체 등 다른 것의 먹이가 되는 것들에는 다산의 능력을 주었고, 다른 것을 잡아먹는 생명에는 적게 낳는 능력을 부여했다.


이러는 동안 에피메테우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우스로부터 받은 모든 능력을 다써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때 아무런 능력도 받지 못하고 작업장 한 켠에 방치된 생명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었다. 제우스에게 받은 능력을 이미 모두 써버린 에피메테우스는 과연 인간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프로메테우스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우스와 약속한 날, 인간도 다른 것들과 함께 세상에 나가야하는데, 아무런 능력도 받지 못한 인간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바로 멸종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고민하던 끝에 아테나 여신과 헤파이토스가 함께 사용하며 기술을 연마하는 작업장에 몰래 숨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불’과 함께 그 불을 다룰 수 있는 ‘지혜’를 훔쳐 인간에게 선물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이처럼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인간에게 불과 지혜를 전한 것은 그만큼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는 다른 생명체에 비해 더없이 나약한 존재였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준 불과 지혜를 통해 자연과 야생동물로부터 생존을 지켜내고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프로메테우스를 더없이 소중한 선물을 해준 신으로 존경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과 지혜를 준다는 계획은 애당초 제우스에게는 없었다. 제우스는 유한한 존재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을 나눠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불과 지혜란 너무나도 신적인 능력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이치나 질서가 달라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의 영역에까지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도둑질에 화가 난 제우스는 그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린다. 그것은 카우카소스산 위에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쇠사슬에 묵인 채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벌이었다. 독수리에게 파먹힌 간은 밤마다 재생되어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형벌은 카우카소스 지방을 지나던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화살로 쏘아 맞추고, 그를 고통에서 풀어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의 영광을 더하게 하기 위해 더 이상의 벌을 부과하지 않게 된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프로메테우스는 그 보답으로 헤라클레스가 헤라여신으로부터 받은 12가지 시험 중에서 황금사과를 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준 불과 지혜가 갖는 상징성이다. 인간은 불을 통해 추위를 녹이고, 음식을 조리하고, 어둠을 밝힘으로써 나약한 능력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불과 함께 부여받은 지혜를 통해 공동체를 만들어 안전한 잠자리와 먹거리를 찾고,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간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둠에서 불을 밝혀왔다. 새해가 밝았다. 물리적으로는 한파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세계경제 불황의 그늘이 가시지 않은 출발을 맞고 있지만, 프로메테우스가 목숨과 바꾸다시피해서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인 불로 세상을 따뜻하게 녹이고, 지혜를 통해 세상을 밝힐 방도를 찾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