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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하고 극적인 카타르시스 불러일으켜

제주한라병원 2012. 10. 29. 11:18

- 오이디푸스 -

가장 강력하고 극적인 카타르시스 불러일으켜

 

이번호에서는 그리스신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를 살펴보려고 한다.

 

‘카타르시스(Katharsis)’란 본래는 ‘신체적인 거북함을 외부자극을 통해 신체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일’, 줄여서 ‘영혼의 정화’로 정의되기도 한다.

 

카타르시스가 영혼의 정화란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부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는 비극과 관련된다. 비극은 공포와 연민을 통해 감정들의 카타르시스를 완수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우리는 비극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편협한 이기심과 개별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정신을 보편적인 주체성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그렇다면 그리스신화에서 가장 강력하고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주인공, 가장 가혹한 운명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바로 오이디푸스(Oedipus)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하나인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왕≫에 자세히 기록되어있지만,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에 의해서다.

 

자 그럼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좇아가 보자. 오이디푸스는 테바이(Thebai)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라이오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네 아들이 장성하면 너를 죽이고, 자신의 엄마와 결혼할 것이다’는 신탁을 받게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울부짖는 왕비로부터 아이를 빼앗아 신하에게 산에 데려가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차마 아기를 죽일 수 없었던 신하는 아이의 다리를 묶어 산위의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이를 발견한 목동으로부터 아이를 전해받은 코린토스 지방의 폴리보스왕은 상처로 발이 퉁퉁 부어있던 아이를 오이디푸스(부은 발)라 이름짓고, 양자로 삼아 지극한 사랑으로 키우게 된다. 당연히 오이디푸스도 폴리보스왕 부부를 친부모로 알고 고귀하게 성장한다.

 

한편 무자비하게 아이를 버린 라이오스는 왕비를 뒤로 하고 외도에 빠진다. 가정의 여신인 헤라가 이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괴물들 중 머리가 좋은 ‘스핑크스’를 테바이로 보내 그의 잘못된 행태를 응징한다. 얼굴은 여자고 몸은 사자인 이 괴물 때문에 난처해진 라이오스는 신탁을 받으러 또다시 델포이로 떠나야만 했다.

 

성인이 된 후 오이디푸스는 델포이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거라는 신탁’을 듣게 되고, 친부모라 알고 있는 폴리보스왕 부부로부터 멀리 떠나야만 불행한 운명을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선 테바이로 향하던 그의 마차는 어느 비좁은 갈림길에서 운명적으로 화려한 마차와 마주치게 된다. 상대 마차의 시종이 막무가내로 자신에게 길옆으로 비켜설 것을 요구하면서 시비가 붙었고 그 시종이 오이디푸스의 말 한 마리를 죽게 했다. 격분한 오이디푸스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상대 마차의 주인을 단칼에 죽였다. 그 상대 마차의 주인이 자신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왕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렇다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어머니와는 어떻게 결혼하게 되는걸까. 이 과정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그가 마침내 테바이에 도착했을 때 스핑크스는 성문 앞에 앉아 성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마다 수수께끼를 내어, 풀지 못하거나 틀리면 그 자리에서 잡아 먹어버렸다. 첫째 수수께끼는, “한때는 두발로, 한때는 세 발로, 한때는 네발로 걸으며, 발이 많아질수록 약한 존재는 무엇인가?” 였다. 답은 인간이었다. 둘째 수수께끼는 두명의 자매가 있는데 한명이 다른 한명을 낳으며, 이 한명이 다시 다른 한명을 낳는 것은? 답은 바로 낮과 밤이다.

 

오이디푸스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버리자 놀란 스핑크스는 즉시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다.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테바이를 구한 오이디푸스를 왕으로 옹립하고 미망인이 된 선왕비 이오카스테와 짝을 맺게 한다. 이로써 오이디푸스는 (스스로는 모르고 했지만) 친아버지를 죽인데다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진실이 덮여진 채 긴 세월이 흘렀다. 어느해 테바이에 원인모를 전염병과 기근이 돌자 사람들은 신탁을 청했다. 예언자는 “선왕인 라이오스의 죽음의 원인이 밝혀져야 역병이 그칠 것”이라는 신탁을 전한다. 오이디푸스는 선왕을 죽인 자에게 거침없는 저주를 내렸다. 하지만 라이오스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예전에 갈림길에서 아무 생각없이 해쳤던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친아버지이자 선왕인 라이오스였다는 엄청난 진실을 알게된다. 이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 순간 왕비 이오카스테는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오이디푸스는 그녀의 브로치로 자신의 두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그리고 선왕의 살해자에게 자신이 내린 저주대로 테바이에서 추방당해 여생을 유랑하다 변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그리스 문학에서 트로이아전쟁 만큼이나 유명하다. 이처럼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인들은 아무리 고귀함과 부유함을 타고난 사람이라도 가혹한 시련과 운명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운명은 사람마다 느끼는 무게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다른 이들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고, 또 나에게만 인생이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똑같이 가볍지 않은, 운명이라는 짐을 진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