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네르바의 올빼미 -
지혜와 전쟁의 신, 지혜와 실행력에 대한 관심의 표시
길었던 동면의 뒤척임을 밀쳐내고 봄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이맘때면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의 설레임 속에 우리 주변이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바야흐로 배움의 계절이 시작되는 만큼 이번호에서는 지혜를 주관하는 여신, 아테나 이야기를 해보자.
2008년 경, 인터넷 포털인 다음 아고라(토론 게시판)에 한 인터넷 경제논객이 우리나라 경제에 관해 쓴 글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네티즌들이 그를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고까지 칭한 적이 있다. 당시 검찰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던 그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하였고, 유력 잡지사인 <신동아>의 오보사건으로 이어지며 세인들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리먼사태와 외환위기 등의 예측으로 대중들에게 높이 평가받던 그 경제논객의 아이디가 다름아닌 ‘미네르바’였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라틴어 이름이 바로 미네르바(Minerva)다.
아테나는 지혜와 정의로운 전쟁을 주재하는 여신이다. 지혜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중 하나인데, 고대인들의 지혜에 대한 통찰을 아테나의 신화에서 살펴보자.
우선 아테나의 탄생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아테나는 제우스와 그의 첫사랑이었던 지혜로운 충고의 여신 메티스 사이에서 잉태된다. 이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나타나 “메티스가 처음에는 딸을 낳고 그 다음에는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 아들이 제우스의 천상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를 듣고 제우스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메티스를 통째로 뱃속에 집어삼켜 버린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딸도 어미와 함께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탁은 이 딸이 반드시 태어나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얼마 후 제우스가 참을 수 없는 두통을 호소하자, 참모인 헤르메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온다. 그리고 산파역이 된 헤파이스토스가 정과 망치로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자 굉음과 함께 아테나가 태어났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로부터 완전무장한 성숙한 처녀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테나는 전쟁용 투구와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손에는 제우스의 방패 ‘아이기스’를 들고 있었다. 제우스는 자신이 몸소 산고까지 겪으며 낳은 이 딸을 다른 자식들보다 유독 더 사랑했다. 이후 그는 아테나의 소원을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제우스와의 이런 각별히 가까운 관계 때문에 아테나는 다른 신들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으며, 특히 지혜에 있어서는 어떤 신들보다 뛰어났다. 아테나를 상징하는 새는 올빼미(혹은 부엉이)이며 나무는 올리브이다.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로부터 탄생했다는 것은 지혜가 인간의 머리와 관련된 영혼의 기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육체는 유한하고 언젠가 소멸하지만, 지혜는 무한하며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인 동시에 불멸의 여신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아테나는 제우스로부터 처녀성을 허락받은 신이다. 영원한 처녀로서 자신의 유산과 일을 물려줄 자식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아버지가 지혜롭거나 훌륭하다고 해서 자식이 그런 것은 아니며, 아버지가 지혜롭지 않거나 훌륭하지 않다고 그 자식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라는 말로 그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즉 지혜는 혈통적으로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지혜를 다음 세대로 전수하여 영원불멸한 지혜를 남길 수 있을까. 해답은 바로 교육(배움)의 힘에 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지혜를 추구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교육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테나가 특별한 또 한 가지는 그녀가 지혜로운 여신인 동시에 ‘정의로운 전쟁’을 주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방어일 뿐, 폭력이나 유혈사태를 즐기는 전쟁신 아레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는 지혜를 통해서 옳다고 판단된 것은 실행력을 가져야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믿음은 때로 신화에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서구사상에서 지혜와 실행력에 관한 관념이 정치라고 하는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온 배경으로 작용한다.
가끔 사람들이 아테나를 도시이름 아테네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테나와 아테네의 특별한 관계에서 기인한다. 인간들이 모여 다양한 도시를 만들고 살게 되자, 신들은 각자 자신이 수호할 도시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테나는 아티카 지방의 한 곳을 두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경합을 벌이게 된다. 수호신으로 선택받기 위해 두 신은 인간에게 줄 선물로써 승부를 가리기로 한다. 아테나 여신은 올리브 나무를, 포세이돈은 말과 그 말이 마실 샘을 내놓았다. 여기서 올리브는 농경을 의미하고, 말과 샘은 유목을 상징하는 셈이다. 넓고 비옥한 토지를 가진 주민들이 선택한 것은 당연히 올리브 나무였고, 그 땅은 아테나 여신이 수호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아테나이’라고 불리다가 지금의 ‘아테네’가 되었다. 그래서 파르테논 신전의 주인 역시 아테나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테나의 지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언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이렇게 말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기 시작한다.” 그 의미는 ‘지혜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그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또는 ‘지혜는 나중에야 찾아온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혼돈의 시간을 보낸 후 사색을 통해 지혜를 연마하라”는 어느 철인(哲人)의 조언을 되새기며, 배움의 계절을 힘차게 열어가 보자.
'연재종료코너 > 안대찬세상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우스가 아끼던 헤라클레스를 향한 저주는 계속되고… (0) | 2013.05.29 |
---|---|
제우스의 연애 이야기 (0) | 2013.04.29 |
크로노스의 흐름속 ‘카이로스’ 잡아내는 한 해되길… (0) | 2013.02.26 |
인간에 대한 믿음·사랑으로 불과 지혜 선물 (0) | 2013.01.29 |
새해는 야누스의 통찰력으로 보람찬 癸巳年 만들자 (0) | 2012.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