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셨더니 필름이 끊어졌다?
<2007. 12.24>
연말연시가 다가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은 이래저래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가끔 과음으로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나서 곤혹스런 일이 생기거나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생기곤 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왜 필름이 끊어질까? 사람의 기억형성 과정에 관한 모델은 1968년 아트킨과 쉬프린이 제창하였는데 새로운 정보가 뇌에 들어오면 수 초간 기억하는 감각기억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단기기억이 형성되는데 단기기억은 수 분 정도 보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단기기억 중에서 일부는 사안의 중요성이나 반복재생 여부에 따라 장기기억으로 변환되어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게 된다. 장기기억으로 변환 여부는 당연히 학습에 의한 반복과정이 중요하지만 사안의 중요성이나 이해정도, 당시의 집중이나 의식의 각성정도 등이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술은 기억형성 과정에서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술꾼들이 술에 취해도 수 분 내에 떠들었던 내용들은 그 자리에서 기억이 가능하고 술에 취하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오랜 기억들을 재생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술에 아무리 취해도 집을 잘 찾아오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술이 점점 취해 ‘술이 사람을 마시는’ 정도가 되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술이 깨고 나서도 술취한 상태에서 했던 말이나 상황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의학적으로는 음주에 의한 단기 기억상실이라고 하고 흔히 필름이 끊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필름이 끊어지는 현상은 음주량과도 비례하며 습관적으로 필름이 자주 끊어지는 경우는 술에 의한 뇌손상이 심각해지게 되어 퇴행성 변화가 촉진되고 치매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애주가들은 이번 연말부터라도 사람들 만나 즐겁게 한 잔 하되 필름 끊어지지 않도록 가볍게 마셔 봄이 어떠할까!
<이상평 신경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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