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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와 화해, 아킬레우스의 선택

제주한라병원 2012. 8. 6. 09:39

2012년/7월

 분노와 화해, 아킬레우스의 선택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문헌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호메로스는 이 방대한 서사시의 시작을 왜 아킬레우스 이야기로 했을까. 그가 주인공의 역할을 아킬레우스에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킬레우스는 부계(父系)로는 제우스의 후손이며 어머니는 테티스 여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예언에 따라 기존의 모든 인간을 넘어서는 강력한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그래도 인간이기에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에 테티스 여신은 어린 아킬레우스를 스틱스강에 담그게 된다. 지옥 앞을 흐르는 스틱스 강에 몸을 적신 존재에게는 불사의 능력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티스 여신이 아이가 강물에 빠질까봐 발뒤꿈치를 꼭 붙잡고 담그다 보니 강물이 닿지 않은 부위가 생겼고, 그곳이 복숭아뼈 뒤쪽의 ‘유일한 약점’(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훗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에 그곳을 맞아 목숨을 잃게 된다.)

 

이런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가 트로이아 원정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에게는 신탁(神託)이 주어진다. “트로이아에 가면 큰 명예를 얻고 이름을 남기게 되겠지만 단명(短命)할 것이고, 가지 않는다면 오래는 살겠지만 아무런 명예도 얻지 못할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탁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인간이 신들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사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전장에서 인생을 마칠 것을 알면서도 주저없이 명예로운 삶을 선택한다.

 

한편 <일리아스>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어디서 온 것일까. 서사시 속에는 두 번의 큰 분노가 등장하는데 첫째 분노는 전쟁이 시작된 지 9년경,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아 성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모두 점령한 시점에 일어난다.

 

그리스군은 트로이와 동맹을 맺은 크리세섬을 약탈하면서 아폴론의 제사장인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전리품으로 잡아간다. 제사장이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첩이 된 딸을 되찾기 위해 귀한 보물을 가지고 가서 간청하지만, 아가멤논은 모욕하면서 거절한다. 제사장은 아폴론에게 그리스군의 징벌을 기원하고, 아폴론이 이를 들어주어 그리스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9일 동안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된다.

 

누구도 아가멤논에게 이러한 상황을 바로 잡도록 직언하지 못하던 때, 아킬레우스가 나서 크리세이스를 제사장에게 돌려주고 예를 갖춰 사과하라고 직언한다. 하지만 이를 불쾌히 여긴 아가멤논은 그 대가로 아킬레우스의 여인 브리세이스를 대신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는 명백히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손상시키겠다는 의미였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내주는 대신 더 이상 전투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트로이아군을 공포에 몰아넣던 아킬레우스가 빠지자 전황은 역전된다. 트로이아군은 파죽지세로 그리스군을 몰아붙여 그리스군 함선의 절반을 불태우기에 이른다. 그제서야 아가멤논은 온갖 말로 아킬레우스를 회유하려 해보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빌려입고 출전하였다가 그만 트로이아군 총사령관 헥토르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다. 친구를 잃게 한 것에 대한 분노는 자신의 명예를 손상한 것에 대한 분노보다 더 컸다.

 

아킬레우스의 두 번째 분노가 생겨난 대목이다. 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던 선언을 거둬들이고, 그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것이며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적들을 몰아붙인 아킬레우스는 결국 헥토르와 격투를 벌이게 된다. 두 사람은 성벽을 세 바퀴나 도는 추격전을 펼쳤는데, 이를 지켜보던 제우스도 운명의 저울을 들어 그들의 승부를 결정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창에 찔려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아들의 시신을 찾고자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찾아왔을 때, 그는 프리아모스를 예로써 맞이해 함께 눈물 흘리고 위로하며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보내주었을 뿐 아니라 장례를 위해 며칠간의 말미를 준다. 이는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헥토르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도 자신의 늙은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며 동료로서의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관용을 베풀고자 했던 것이다.

 

호메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명예로운 참전과 분노, 그리고 그의 죽음에 집중한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간이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란 점. 죽음이라는 운명이 다가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참전을 통해 명예로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아킬레우스. 그 이야기를 통해 죽기 때문에 신(神)조차도 하지 못할 선택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해낸다.

 

신화 속 신(神)과 같이 불사(不死)의 존재는 무엇을 통해 스스로의 정신의 힘과 크기를 증명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도리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죽음을 넘어서는 큰 정신의 크기를 보여줄 수 있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 인간이 신과 달라지는 특별한 지점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이 대서사시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