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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종료코너/제주의건강마을

아름드리 팽나무군락을 낀 선비마을

제주한라병원 2012. 2. 13. 15:37

2009년 / 1월

아름드리 팽나무군락을 낀 선비마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명월리에서는 서쪽으로 비양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제주서부의 중심지로 중산간에 위치한 명월리(明月里).

마을 이름처럼 밝고 명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사실 한 때 명월리는 상명리, 옹포리, 동명리, 금악리를 포괄해 그 판도가 매우 넓었을 뿐 아니라 제주서부지역인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일대의 행정교육 및 군사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명월리의 명성은 다소 누그러진지 오래다.

그래도 알 사람은 안다. 한림공원과 협재해수욕장이 가까이 있고, 북쪽으로는 한림 앞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고 서쪽을 향하면 비양도가 운치있게 나타나며, 동쪽 멀리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오름과 숲으로 둘러싸여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마을이라는 것을.

 

 

과거 군사요충지임을 상징하는 명월성지.


# 군사요충지의 아픔을 딛고 평화를 품은 곳


겉으로 평화롭게만 보이는 명월이지만 한 때 이곳은 군사요충지였다.

한림에서 명월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하동이 있는데 그 곳에 서면 큰 성과 성문이 보인다. 명월이 군사적 중요한 곳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새롭게 복원된 명월진성이다. 삼별초 군대가 탐라를 장악하기 위해 1270년(원종 11년)년 명월포구에 상륙하면서부터 명월은 제주방어의 요충지가 되었다. 그 후 원명 교체기에 원의 목호들이 조정의 말 진상 요구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을 때도, 최영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명월포로 상륙해 난을 진압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명월리 중동 마을 중심을 흐르는 개천 양쪽 수령 50년 이상의 팽나무 군락지는 명월리 최고의 자랑거리다.

제주지역 오래된 마을에는 정자목으로 남아 있는 팽나무들이 있긴 하지만 명월의 팽나무는 노거수 집단으로 단순 군락을 이루고 있어 고대 식물상을 추리하는 자료가 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가 높아서 제주도기념물 제19호로 지정돼 있다.

신록이 아름다운 여름은 여름대로 푸른 잎이 싱그러움을 내뿜는 기운이 느껴지고 요즘 같은 겨울에는 잎 하나 걸치지 않은 나무지만 잎에 가려있던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자태 자체만으로도 멋스러움은 더할 나위가 없다.

 

 

명월리 팽나무 군락은 선비마을 명월리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그 운치가 멋스러워 제주도기념물 제1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 수려한 자연에서 건강한 심심이 잉태한다


명월리는 예로부터 선비 마을로 알려져 있어 인근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겨 냇가의 수목들이 잘 보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계곡의 나무 그늘에서 시를 읊으며 놀았다는 명월대가 있으며, 명월대 옆에는 높이 2.3m 폭 3.6m의 반달모양의 돌다리가 있어 맑은 시냇물과 함께 멋스러움을 더해준다.

팽나무 군락을 지나노라면 풍류에 젖어있는 선비가 떠오르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도 정갈해지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니 명월리 사람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은 당연지사.

요즘 제주에서는 양배추가 많이 생산돼 양배추 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명월리 곳곳 양배추밭은 이곳 명월리의 농업형태도 대신 이야기해준다.

317세대 755명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는 축산업을 하거나 감귤농사, 양배추 등의 밭작물을 재배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감귤농사보다는 밭작물 재배하는 주민들이 더 많다.

마을을 찾아갔던 날은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유유자적할 새 없이 근면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임을 암시하듯 길거리에서 주민들을 만날 기회가 다소 없었다.

명월리 중동에서 만난 마석용씨(68)는 부지런한 명월리 사람들을 칭찬했다.

명월리에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 7년째 접어들었다는 마씨는 “제주사람들이 부지런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명월리 사람들도 근면 성실하기로 두 번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면서 “젊은 사람이나 노인들이나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 한다”고 말했다.

감귤, 양배추 수확으로 바쁜 요즘 노인복지회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운영하는 밭이 없어도 이웃 주민들의 밭에 수눌음 하러 나갔다고 그가 전해주었다.

14세기 초 마을이 들어섰다고 하니 700여년을 살아온 마을. 명월리.

장수비결의 으뜸이라고 치는 수려한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긍정적인 마음이 이곳 양반마을 명월리 마을 사람들의 장수비결임을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음고도 남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