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6월
이삭과 이스마엘의 화해
지난달 미국에 출장 다녀올 일이 있었다. 국제선 공항은 물론이고 국내선 공항에도 엑스레이 투시기로 짐을 검사해야 하고 혹시라도 실수로 샴푸처럼 액체로 된 물건이 실수로 짐에 들어가 있으면 공항경찰이 쓰레기통에 냅다 던져넣어도 말 한마디 못한다. 특히 국제선 공항에서는 입국심사대에서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느라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란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미국에 대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9ㆍ11테러 이후에 생겨난 보안조치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현상들이다.
한편 미국은 나라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에 작은 추모거리라도 가능하면 나라의 자랑거리와 기념거리로 만들어내려는 것 같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통합과 단결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일 것이다. 워싱턴 주요지역을 돌아보면 각종 메모리얼(기념관이나 기념공원)이 많은데, 특히 그중에도 전쟁 관련 메모리얼이 많다는 점은 미국이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성장해왔다는 것을 상기하게 해준다. 그래서 더더욱 미국은 테러의 대상으로 지목받는 지도 모른다.
뉴욕에 들렀을 때 보게 된 그라운드 제로(9.11테러로 폐허가 된 세계무역센터 자리)는 테러의 위험에 극도로 예민하게 노출된 미국의 현실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들어서 테러의 빈도는 더 잦아지고 있는 듯하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평소 이슬람에 대해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칼’이라는 잔혹한 이미지만 떠올리던 필자는 테러리즘의 연원과 변화과정이 궁금해졌다. 그것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들을 접하게 되었다.
원래 테러리즘이란 용어는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과업 완수를 위해 왕당파(王黨派)를 고문, 암살 등의 과격한 방식으로 억압했던 자코뱅당의 공포정치 행태에서 기원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나타나는 대부분의 테러는 영토나 독립문제 등 민족이나 종교간 갈등이 표출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특히 21세기까지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분쟁지역 상당수에서 이슬람 대(對) 유대교・기독교로 대별되는 서구열강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양상의 근원을 찾아올라가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영토를 인위적으로 나눠갖거나 구획하는 과정에서 이슬람권이 소외되면서 분쟁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나 코소보, 체첸, 카슈미르 지역에서의 갈등, 그리고 쿠르드족 문제 등에는 모두 이슬람이 연결되어 있다.
이들 분쟁지역의 이슬람 세력은 대부분 반군으로 불리는데 그것은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관점에서 바라본 측면이 강하다. 특히 미국은 전 이슬람권 공동의 적으로 불릴 만큼 이슬람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국의 종교적 기반인 기독교와 미국의 혈맹인 이스라엘의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은 같은 뿌리를 가진 종교라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는 영어로 번역하면 ‘신(the God)’이고, 예수를 훌륭한 선지자로 추앙하며,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는 예수의 이야기가 마호메트 이야기보다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예루살렘은 그들 공통의 성지(聖地)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의 창세기를 읽어보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구약에 따르면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생기지 않자, 아내 사라는 자신의 하녀인 이집트 여인을 첩으로 들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청한다. 그 여인에게서 아브라함의 첫 아들인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십여년 뒤 본처인 사라에게서도 이삭이라는 아들이 생긴다. 이스마엘 모자가 집을 떠나 아랍에 정착하여 그 자손들이 훗날 이슬람을 이루고, 이삭의 자손들이 훗날 기독교를 이루게 되었다고 하니 두 종교는 형제 종교나 다름없는 것이다.
한 아버지를 둔 형제로부터 기원한 두 종교권이 서로 피를 부르는 갈등에 끊임없이 얽혀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복잡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된 작금의 ‘테러 시대’를 종식시킬 해법은 결코 폭력과 복수에 있지 않다.
문명과 종교는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인식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이슬람권 모두에게 자리잡는 것만이 테러없는 세상을 이끌어 낼 최선의 해법인 것이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하루빨리 끔찍한 반목을 털어버리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서로 일방주의를 경계하고 상호 존중하며 한걸음씩 양보하려는 타협의 자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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